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음란서생>에서는 명망 높은 사대부 집안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주인공 김윤서(한석규)가 추월색이란 필명으로 음란소설 '흑곡비사'를 집필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그가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 인봉거사를 누를 수 있는 건 작품의 '진맛'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꿈꾸는 것, 꿈에서 본 것 같은 것, 꿈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진맛'은 요즘으로 말하면 판타지이면서 역사적 사실인 팩트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이 결합된 팩션이다.
지금 우리 문화계에는 팩션 열풍이 거세게 불고있다. 영화 <왕의 남자>는 1200만이란 전인미답의 관객동원을 이뤄냈다. 역사서 『조선왕독살사건』(이덕일, 다산초당)은 인문서 시장이 침체했는데도 12만 부나 판매됐다. 2004년에 출간돼 국내에서만 265만부가 팔린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 베텔스만코리아)를 비롯한 소설의 인기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여름 출판시장에서 팩션의 인기는 다시 한번 돌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댄 브라운의 신작 『솔로몬 키』를 비롯해 『단테클럽』의 작가 매튜 펄의 『애드가 앨런 포의 그림자』, 앤 라이스의 『구세주 그리스도』, 제드 루벤펠드의 『살인의 해석』, 마르틴 카파로스의 『모나리자 도난사건』, 후안 타프로의 『막달라 마리아의 수난』 등 외국에서 '검증'된 작가의 신작 팩션이 줄줄이 국내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국내 작가의 팩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정약용 살인사건』(랜덤하우스중앙)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은 다산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가설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다산은 57세이던 1818년에 유배에서 풀려나고도 18년을 더 살았다. 그는 유배기간 18년과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에 수많은 책을 펴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정적에 의해 살해됐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의 저작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며 세상도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 김상현은 『흠흠신서』에서 다산이 강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다산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있을 것이란 팩트를 만들어낸 다음 상상력을 펼쳐 흥미진진한 소설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팩션이 왜 이렇게 인기인가? '음란서생'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이 곧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이 나날이 벌어지는 지금 대중은 현란한 지식을 자랑하며 '젠체'하는 글쓰기의 팩션을 통해 지적 유희를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기사게재 : <헤럴드경제> 책마을통신 2006.3.20
출처: 한국 출판 마케팅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