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005-12-29 [BOOKS OF 2005] 올해의 책|해외 출판시장
팩트와 픽션이 결합한 팩션류의 역사추리물 강세... 앤 라이스의 ‘구세주 그리스도’도 주목
비소설 분야는 `목적이 이끄는 삶` `긍정의 힘` `괴짜경제학` `블링크` 등 꾸준한 관심 끌어
2005년 한 해 동안 나라 밖 출판가에서는 어떤 책들이 주목 받았을까? 가장 화제가 됐던 책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점검은 한 해 동안 세계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어떤 것이었으며, 독자들은 또 어떤 정보를 책을 통해 얻으려 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 출판시장의 중심인 미국 출판시장을 중심으로 올 한 해의 해외 출판시장을 되돌아보고자 하며, 크게 소설과 비소설 분야로 나누어 살피고자 한다.
소설 분야는 크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올해의 최대 화제작이라고 이렇다하게 내세울 만한 소설이 없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소설이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이런 가운데 댄 브라운 소설에 대한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은 채 거의 3년째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팩션(팩트+픽션·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것)류의 소설이 강세를 띠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례로, 과거 10여년 간에 걸쳐 줄곧 뱀파이어에 대한 소설을 써오고 있던 베스트셀러작가 앤 라이스(Ann Rice)가 이번엔 전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분위기를 바꿔 팩션소설을 선보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셋째로 2003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역사추리소설 분야에 대한 관심이 계속 강세로 이어졌으며 이런 흐름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몇몇 주요 소설을 미루어볼 때 내년까지도 이어질 전망을 낳게 한다. 

출판전문 주간지인 ‘퍼블리셔스 위클리’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2005년 11월 말 현재 138주째, 그리고 그의 또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는 135주째 각각 베스트셀러 10위권 안팎에 머물며 그 위력을 3년째 과시해오고 있다. 그러나 댄 브라운의 소설이 이처럼 지속적인 강세를 이어오고 있는 반면 다른 소설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5주에서 10주 정도 베스트셀러에 머물다가 뒷심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올해 주목 받은 소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출간되어 올 3분기까지 강세를 보인 소설로, 수 몽크 키드(Sue Monk Kidd)의 ‘머메이드 체어(The Mermaid Chair)’를 들 수 있다. 제시 셜리반이라는 한 중년 여인의 억눌린 꿈과 욕망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는 가운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는 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9월 말까지 24주간 소설 부문 상위에 랭크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까지 18주에 걸쳐 소설 부문 1위에서 15위권을 오르내리며 판매순위 상위권에 머물렀던 엘리자베스 코스토바(Elizabeth Kostova)의 ‘히스토리언(The Historian)’ 역시 올 한 해 동안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소설로 분류된다. 이 소설 역시 팩션류의 역사소설로 현재의 소설 트렌드를 반영한 소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분야에 속한 작품으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앞서 잠시 언급한 앤 라이스가 쓴 ‘구세주 그리스도(Christ the Lord)’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미국은 물론 특히 그 밖의 여러 나라 출판사 및 독자들로부터 더욱 주목 받은 이유는 이 소설을 쓴 작가인 앤 라이스가 오랜 세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뱀파이어 소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숨겨진 유년시절을 소설적 구성으로 새롭게 끌어올려 흥미롭게 조명한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속에서 치유자로서의 예수, 선지자로서의 예수를 신비로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장치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11월에 출간된 이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12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라있다. 각국 출판 관계자들은 앤 라이스의 외도가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시도가 그의 작품세계의 영역 확장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 소설이 아무래도 분수령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주위의 일반적인 평이다.
한편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인 지식과 정보의 기반에 소설적 구성을 덧입힌 형식의 소설에 대한 반응은 내년에도 계속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내년에 선보일 소설들이 현재 원고만 준비된 상황에서도 세계 각국의 수십여 개 출판사가 치열한 판권확보 경쟁을 벌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년 가을 미국의 헨리 홀트 사가 출간할 예정인 제드 루벤펠드(Jed Rubenfeld)의 ‘네임 오브 액션(The Name of Action)’은 벌써부터 한국을 포함하여 11월 말 현재 22개국에 해외번역판권이 팔린 상황이다. 이 소설은 1909년 프로이트와 융이 실제로 미국을 처음 방문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뉴욕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을 두고 두 학자가 서로 다른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사건에 적용하여 풀어간다는 내용으로 일련의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두 학자의 고도의 이론이 허구와 맞물려 전개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설은 레이먼드 커리(Raymond Khoury)의 ‘최후의 템플 기사단(The Last Templar)’이다. 이 소설은 지난 7월 영국에서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보였으며 미국과 기타 수많은 나라의 출판인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 소설의 해외 판권 역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치열한 판권경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1월 말 현재 33개국에 판권이 팔린 상태이고 미국에서는 내년 1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바티칸 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한 박물관에 기사단 복장을 한 네 명의 사내가 난데없이 나타나 거침없이 경비요원의 목을 베는 한편, 또 다른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 전시된 물품들을 약탈해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템플 기사단은 적잖은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로 어떤 이유에서 그것도 꽤나 낯선 방식으로 여러 사람을 살상하고 또 거기에다 값도 나가지도 않는 공예품들을 약탈해 갔을까? 이 사건을 고고학자인 테스와 FBI(미국 연방수사국) 요원인 숀 라일리가 그들의 비밀을 벗겨간다. 이것이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미 출판계, 기독교 관련서 강세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소설 부문에서 역사추리물이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해외출판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다면 비소설 부문에서는 종교적인 메시지가 기반이 된 자기계발서와 인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경제·경영서가 두각을 드러냈다.
먼저 기독교 분야의 책으로 비소설 전체시장에서 ‘다빈치 코드’처럼 출간 이후 3년에 걸쳐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책이 있다. 릭 워렌(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이 그것이다. 이 책은 11월 말 현재 무려 145주 동안 베스트셀러 15위권을 고수하고 있는 책으로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타인을 섬기는 이들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 다음으로 올해 최장수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는 미국의 신예 목사인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의 책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이다. 워너북스의 판권담당자인 레베카 올리버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해 10월 말에 출간된 이래 지난 11월 말까지 13개 나라에 해외판권이 팔렸으며 11월 말 현재 57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팔린 부수만 360만부에 달한다. 오스틴 목사는 이 책을 통해서 크게 일곱 가지의 가르침을 전한다. 비전을 키우고, 건강한 자아상을 키우고,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고,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역경을 통해서 강점을 찾으며, 베푸는 삶을 살고, 끝으로 행복하기를 선택하라는 것이 그의 일곱 가지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미국 출판계에서 기독교 분야의 도서가 일반 도서시장에서 크게 어필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 책 속에 담긴 메시지가 일반 독자에게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과 일상의 상황이 호소력 있게 진행되고 있어 치열하고 숨가쁜 현대 독자에게 편안한 안식과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비소설 분야에서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한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책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이 두 권의 책을 꼽을 것이다. 하나는 출간시점부터 11월 말 현재까지 줄곧 32주 연속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스티븐 레빗이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다. 또 하나는 말콤 글래드웰이 쓴 ‘블링크(Blink)’다. 블링크가 히트친 덕분에 그가 5년 전에 써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다시 한번 동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미국, 영국, 캐나다, 한국 등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판매순위 정상에 오른 ‘괴짜경제학’은 2003년
포춘지가 선정한 ‘40세 미만의 혁신가 10’으로 꼽히기도 했던 젊은 천재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의 명저(名著)다. 이 책은 일반 상식과 통념을 깨는 기발한 문답을 제공하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레빗은 이 책을 통해 일상에 숨겨진 사실들을 기초로 구체적이고 치밀한 논증을 통해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파헤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끌어내고 있어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오던 고정관념을 일거에 허물어버린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레빗의 사냥감은 이국적이고 신비한 장소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속에 들어 있다. 그의 천재성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숫자들 속에서 일련의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다”라고 이 책을 평한 바 있다.
‘블링크’는 사전적인 정의로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거나 반짝임’이란 뜻이다. 저자 글래드웰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나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첫 2초 동안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뜻한다는 의미로 썼다. ‘블링크’는 11월 말 현재 41주 연속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글래드웰은 올해 ‘더 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우리의 일상은 물론 비즈니스세계에서 우리의 순간적인 통찰에서 나오는 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순간의 선택이 긴 시간의 고민 끝에 나온 선택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사례들을 이 책을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josephlee@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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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다양한 역사추리물들이 많이 쏟아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