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기회 넘치는 '평평한 신세계' 열었나

중앙일보 박정호 2005-12-09

 

날아가는 일자리 보지 말고 자원 배분의 합리성을 봐야 피하려 하면 되레 빈곤의 덫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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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강자에게만 '평평한 세계'일 뿐 빈부격차.불평등의 그늘…비판적 성찰 좀 하시죠
-이해영(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독 사회주의의 몰락만을 알린 사건이 아니었다. 통제.관료주의 빗장을 굳게 걸어두었던 인도는 91년 외환위기에 직면하자 드디어 경제개방을 선택했다. 그리고 개혁 3년 만에 연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오랜 빈곤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교수로 노벨상을 수상한 인도 경제학자 아마르타 센은 "베를린 장벽은 미래를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막는 수단이었다. 장벽이 존재했을 때 우리는 세계를 글로벌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간 '세계는 평평하다'(도서출판 창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저자는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충돌을 다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로 유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토머스 L 프리드먼(사진). 그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PC 대중화에 불을 댕긴 '윈도 3.0 버전'이 90년 등장하면서 "세상이 평평해지기 시작했다"고 단언한다. 국경.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구촌 경제체제, 즉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와 자유가 주어지는 세계화를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한다.

'평평한 세계'는 국가.기업.개인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아니, 저자에 따르면 개인에게 더 절실한 단어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국가→기업→개인으로 서서히 이동 중이라는 것. 저자는 심지어 자기 자녀들에게 "중국과 인도의 아이들이 네 일자리를 가져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세계화가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일부 공감한다. 그러나 가속도가 붙은 세계화 물결을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에는 흔들림이 없다. 과연 그럴까. "미국과 유럽기업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가 끝날 것이다"는 그의 주장을 찬.반 양론으로 살펴본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 그렇다

날아가는 일자리 보지 말고 자원 배분의 합리성을 봐야 피하려 하면 되레 빈곤의 덫에

세상에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마치 자생적 질서처럼 우리들의 삶의 곳곳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화의 거센 파고'다. 이를 두고 토머스 L 프리드먼은 '세상은 평평하다'는 은유를 사용한다. 어찌할 수 없는 추세라면 우리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사고방식을 바꾸면 된다. 강력한 변화지향적인 태도와 개방적인 사고, 이 두 가지면 누구든지 흥미진진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것들이 쉽지만은 않다. 인간이란 조그만 변화라도 일단 반대해 놓고 보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적응성과 수용성 두 가지로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면하게 될 미래는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와 개방을 비난하고, 그런 변화를 주도하는 적으로 미국과 서방세계를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감정적이지 말고 냉철하게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반대에 익숙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혹한 가난과 빈곤의 나락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개인, 조직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프리드먼의 저서들은 뛰어난 필력에다 누구도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인맥으로부터 얻어낸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편의 장대한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간도 그렇다. 이 책을 통해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들이나 과거의 이론이나 이념에 젖어 여전히 꿈꾸듯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시계를 한층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세계화는 세계 전체가 자원 배분의 합리성을 더욱 높여가는 일련의 과정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협소한 시야에서 보면 날아가 버리는 일자리에 분노할 수 있지만 시장의 확대는 대다수 사람에게 전문화와 분업의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세계를 대상으로 공급체인이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 가를 보는 것만으로 세상은 부정문이 아니라 긍정문임을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자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면 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프리드먼은 개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능력을 키워가라고 말한다. 평평한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조직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며, 그 누구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자신의 일이 "아웃소싱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하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은 사람들이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 세계는 세상을 어두컴컴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암울함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변화의 흐름을 직시하고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대단히 역동적인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미래에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기회를 잡고 이용할 수 있는 데 지적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고 싶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 아니다

강자에게만 '평평한 세계'일 뿐 빈부격차.불평등의 그늘…비판적 성찰 좀 하시죠

잘 팔리는 책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리드먼이 안내하는 세계화의 꽃밭은 향기로웠다. 미국인이 쓴, 무슨 상받은 이런 유의 책을 접할 때마다 나는 미국식 글쓰기의 '힘'에 놀라곤 한다. 참 이다지도 일관되게 피상적일 수 있구나. 나는 이를 '서핑'형 글쓰기라 부른다. 현상의 표면만 긁어 모아 자신이 설계한 가상공간에다 마치 새 가구를 갖다 놓듯 나열하고, 여기에 저널리즘 특유의 갖가지 인터뷰를 엮은 다음, 괜찮은 제목을 붙인 그런 글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 스스로 말하듯 '조용한 위기', 즉 철두철미 미국의 조용한 위기에 대한 미국 와습(WASP), 그 가운데 '자유무역분파'의 세상읽기에 속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른바 '뉴요커'의 정서에 바탕하기에 부시를 '위험하고 멍청하게' 보고, 세계화의 수혜계층이기에 어떻게든 세계화로 평평해진 신세계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세일즈에 여념이 없다. 하기야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 내 상류계층의 충성도가 50%대에서 20%대로 반 토막 나고 있는 조건에서 그래도 미국적 가치에 기반해 자유무역을 계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그의 책은 미국 기준으로 볼 때 시의적절하고 또 팔릴 만하다.

이 책은 분명 엄격한 학술서도, 딱딱한 이론서도 아니다. 그래서 학자들의 '사투리'로 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터무니 없이 두꺼운 책에 널린 억설을 읽어 내자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의 논지가 갖고 있는 최대의 약점은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가치적재 곧 '세계화=절대 선' 식의 암묵적 전제이며, 이는 세계화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로막는 치명적 걸림돌이다. 과도한 전제는 언제나 논리적 비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해서 빈곤의 원인도, 전쟁의 원인도 세계화가 덜 되어서 그렇다는 강한 암시가 전개된다. 세계화로 평평해진 세계 그 자체가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은 이미 출발점에서부터 배제된 터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인터뷰 녹취를 푸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너무나 미국적인 그에게 '자유무역주의는 강자의 보호주의'라는 국제정치학자들에게는 이미 진부해진 진실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그의 말처럼 '맥도널드'뿐만 아니라 특히 '글로벌 공급사슬'이 전쟁을 억지한다면, 그 본산인 미국은 왜 전쟁을 도발할까? '그리운 식민지' 인도의 IT산업에 대한 인상비평은 이 책을 끌어가는 엔진이다. 하지만 최첨단 빌딩 숲 사이에 따개비처럼 붙어 사는 수억 명 인도의 '하루살이' 인생에도 세계는 '평평'할까?

정치학을 미래의 '성장산업'이라 부르기에 나로서는 그저 고맙다. 과도한 시장과 경제, 과소한 국가와 정치, 그래서 나는 저자에게 정치를 진지하게 고민해 주길 권장한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을 알고자 한다면 다 같이 이 책을 읽자. 단 빌려서!

이해영(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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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다" 쪽에 편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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