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5-11-18

[중앙일보 손민호] 자랑은 못 되고 고백 정도 되겠다. 문학터치는 해리 포터 매니어다. 해리가 영국에서 태어난 1997년부터 한국에 첫 번역본이 나온 99년 11월 사이 어쩔 수 없이 세 권을 영어로 읽었다. 이후로 지난달 번역된 시리즈 6번째 '혼혈왕자'를 제외하곤 영어로 읽었다.

그동안 해리를 둘러싼 고민 몇 가지가 있었다. 맨 먼저 궁금했던 건, 왜 첫 번역에 3년이나 걸렸나이다. 알고 보니 당시 국내 출판계는 흥행을 확신하지 못했다. 서양 마녀 이야기는 우리네 애나 어른 모두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단다. 문학수첩이란 출판사가 도박하듯 뛰어들었고, 된통 돈벼락을 맞았단다. 또 다른 궁금점은 해리 신드롬을 분석하는 글 한 편 못 봤다는 것이다. 국내 평단은 해리를 싸구려 기성복처럼 취급했다. 사실 언론도 머쓱했다. 국내에서 이미 1000만 부 가까이 팔린 소설을 소개하는 것도 겸연쩍은 일이었다. 이 와중에 창비 겨울호를 만났다. 영국 아동문학을 전공한 손향숙씨가 '해리 포터는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란 글을 실었다. 발표 지면이 창비라는 사실에 더 반가웠다.


 

 

 


국내 평단과의 첫 조우란 사실에 의의를 둔다. 그 이상은 아니란 뜻이다. 왜냐면 이미 해리 매니어는, 머글(Muggle.마법을 못 부리는 사람) 세상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은, 그런 견해를 진작에 섭렵했기 때문이다. 영화 판권을 소유한 언론 재벌의 마케팅 전략, 종교계의 반발, 여성주의적 비판, 소비주의 양산 등의 지적은 이미 알고 있던 터다. 소설의 교훈을 스토아 철학에서 찾는 해석도 있다. 시리즈 마지막 한 권을 남긴 지금 국내 평단이 밝혀야 할 건, 출판계의 애초 예상과 달리 서양 마녀 이야기에 열광하는 우리네 정서고, 국내 독자의 절반이 성인이란 점이고, 최소 50만 부의 영어 소설이 팔린 이유다. 영어 공부 때문이라면 토익 문제집을 사야 맞다.

호그와츠(Hogwarts.마법학교)는 해리가 고전이라고 가르친 적 없다. 딱히 고전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손에서 놓지 못하니까 읽는 거다. 예전 어느 비평에서 읽은 구절이다. 정확하진 않고 대략 이렇다. "해리 포터는 전 세계 '왕따' 어린이의 아이콘이다. 요즘 아이들은 들판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골방에서 오락기 두드리다 큰다. 따라서 모든 어린이는 왕따다. 그들이 그대로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됐다. 하여 해리 포터는 전 세계 어른의 아이콘이다."

아직도 어떠한 당위나 의의에서 문학을 찾는 머글이 있다면, 주문을 건다. 오블리비아테(Obliviate.기억을 지워라)!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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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00만부가 넘었다고 한다.  국내평단에서는 로맨스나 판타지를 낮게 보는 것 같다. 액션 영화에 출현하는 근육질 스타들이 연기 못한다고 구박하는 영화평론가들 처럼... 독자의 사랑만큼 인정해주는 그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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