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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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코인' 이라는 게 있어요.

 

 

운영자 없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미국, 독일 등 전세계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는 가상화폐이다. <출처 (cc) zcopley at flickr.com>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고안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상화폐'인데, 수학 문제를 풀면 돈(비트코인)이 발행(이를 '채굴'이라고 한대요) 된다고 합니다. 최대 2,100만 비트코인이 매장(?)되 있는데, 2013년 8월까지 약 1,200만 비트코인(한화로 약 1조 5천 450억원)이 채굴됐다네요.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중개서비스가 오픈되고, 일부 싸이트에선 결제 수단으로 인정되는 등 새로운 화폐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한데, 각국.학자마다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답니다.

 

자세한 내용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2&contents_id=35725

 

 

이 내용을 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가 떠오르더군요.

박사는 비트코인 마이너(miner, 비트코인 발행을 위해 문제를 푸는 사람을 광부라 합니다)처럼 수학잡지에 실린 문제를 풀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만, 그들과 다르게 상금(비트코인?)엔 전혀 관심없는 사람입니다.

박사는 '수학'이란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요, 그 창이 매우 따뜻하고 애정이 담뿍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친구에게 놀림받기 싫어 늘 모자를 쓰고 있는 가정부 아들에게 '무한한 숫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있다는 이유로 √ (루트)란 이름을 지어 주고,

박사의 시계에 새겨진 숫자와 가정부의 생일이 '우애수'라며,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한 쌍밖에 발견하지 못한 우애수인만큼 '특별한 인연임'을 발견해 냅니다.

어떤 식에든, 어떤 숫자에든 의미가 있으니 이면지 같은 곳에 아무렇게 계산하면 가.엾.지.않.냐.....는 박사의 말에, 저는 가만히 밑줄 긋고 먼 곳을 바라봤습니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박사의 따뜻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듯해, 절로 훈훈해 지더군요.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교통사고로 17년 전 기억만 갖고 있는 박사의 집에 '나'가 가정부로 들어가면서 셋(박사, 가정부, 가정부의 아들)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박사는 숫자 못지않게 가정부의 아들 루트를 아껴주는데요, 그 속에서 루트는 '내'가 깜짝 놀랄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내용을 극화시켜주는 장치로 80분만 유지되는 박사의 기억력이 나옵니다. 즉, 박사의 기억력이 80분만 유지되고 그 전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박사가 걸을 때마다 옷 속에 붙어있는 수많은 메모지(기억력을 대체하죠)로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수식 앞에서 박사가 내쉬는 감탄의 한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언어와 빛나는 눈동자는...80분 기억력 덕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80분마다 기억회로가 리셋되니, 언제나 새롭게 경탄하고 감탄할 수 있는거 같았어요.

그렇지 않다해도, 박사는 여전할테지만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는 그동안 봐왔던 소설 속 수학자와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봐야 <용의자 X의 헌신>, 버트런트 러셀, <로지코믹스>...만 떠오르네요)

박사는 수학을 통해 무언가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구하려는 거창한 목표도 없어요.

그저...숫자와 수식을 사랑하고 쓰다듬어 줄 뿐입니다.

심지어 박사와 루트를 떼어놓으려 하는 미망인 앞에 백마디 말 대신 공식 한 줄을 써요.

 

  

 

이것을 본 미망인은 박사가 루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바로 알아챕니다. 이 공식은 '오일러의 공식'으로 박사가 가장 사랑하는 공식이거든요.

이 공식에 대한 표현을 볼까요?

 

"다른 공식에 비하면 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다. 큰 덩치를 마지막 0 이 받치고 있고...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π가 e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한 줄기 유성의 빛,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

 

이 책에 담긴 수식을 향한 박사의 애정 어린 마음을 보니, 박사처럼 무언가를 그 자체로 애정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80분만 유지되는 기억력이 있어도, 안될거 같아요.

 

비트코인을 고안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를 섞어 써서 두 명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었을거 같아, 자꾸 이 책이 연상되네요.

사토시 나카모토가 수학 그 자체를 좋아해 만든건지, 새로운 화폐를 만들려는 시도였는지, 그저 재미삼아 한 건지...아무도 모릅니다만,

'박사'의 마음으로 만든 것이길 빕니다.

아, 의도도 중요하지만 선한 쓰임이 더 중요하겠네요.  

 

 

 

 

 

 

다시 읽은 날 2013. 10. 23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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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문답 - 시대의 이상과 운명에 답한 조선의 자화상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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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강세황(1713~1791) 자화상

 

 

위 그림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초상화로, 대상자의 인품과 성격에 촛점을 맞춰 '기념' 목적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초상화는 어떨까요.

 

 

윤두서(1668~1715년)의 <자화상>으로, 문외한인 제가 봐도 사뭇 다릅니다.

다른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 다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어요. 게다가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라니, 언감생심이지요.

그럼에도 '화가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그림문답>을 읽게 된 것은 이종수에 대한 좋은 기억과 이웃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이종수의 <벽화로 꿈꾸다>의 좋은 기억으로, 주저없이 선택하게 됐어요.

 

다시 윤두서의 <자화상>으로 돌아가 볼까요.

윤두서는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집안의 종손으로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학문과 예술로 인정받았던 선비이며, 무려 아들 열 명을 둔 자식 복도 많은 남자랍니다. '도발'이라 할만큼 사뭇 다른 자화상을 그리기까지, 윤두서의 마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짐작되지 않아요.

 

윤두서가 살았던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은 숙종시대로 당파 간 경쟁이 도를 넘어섰던 시기입니다. 그의 셋째 형이 상소문으로 유배되었다가 옥에서 숨을 거뒀고, 임금은 사대부가의 어느 지아비도 차마 할 수 없은 일을 버젓이(왕비 민씨와 희빈 장씨) 했어요. 이런 세상에 출사한다는 게 어찌 가능하며, 어떤 의미인지....혈기 왕성한 나이의 윤두서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혔고,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그리고 그가 추구해야 하는 학문은 어떠해야할지....

수많은 고민을, 이종수는 그림 하나에서 읽어냅니다.

감탄스럽습니다.

경탄스러워요.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선비의 쓸쓸한 학문을 본 것만 해도 놀라운데, '관모' 없이 그려진 그림에서 고관대작의 빛나는 관모를 얹을 수도 없고, '나를 드러내주는 그 어떤 것도 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윤두서의 마음까지, 이종수는 읽어냅니다.

이종수가 읽어낸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화가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림 한 점으로 화가의 마음을 유추해 내는 이종수의 능력, 정말 멋집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고 꿈을 꾼 사람, 꿈에 동참한 사람, 그와 함께한 사람을 읽어내고,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를 보며 겸재 정선이 지나갔던 길을 훑으며 자신만의 그림을 찾아내고자 애쓴 김홍도를 읽어내고, <귀거래도>를 보며 시대의 끝을 함께 한 장승업을 읽어냅니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고 친근하고 새로운지, 읽어가는 내내 아쉬워하며 읽었어요.

 

우리는 대개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어떻든 '내 마음'이 닿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도 해요.

이 책에 나오는 화가 대부분은 조선시대를 풍미했기에,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하는 절절한 마음이 크지 않을 것입니다만, 저는 이종수 작가가 고맙더라구요.

당사자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아주고 이해해줘서, 200여 년을 훌쩍 뛰어넘은 독자에게 훌륭하게 전달되니 말입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지속 시간이 연장될 수도 단축될 수도 있다지요.

이종수 라는 사람을 통해 200여 년 전 화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합니다.

이렇게, 화가의 마음이 200년 넘게 지속되기도 하네요.  

 

 

 

 

 

읽은 날  2013. 9. 2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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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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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방송 생활을 돌연 접고, 1년 잠적한 후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썼던 손미나, 이것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지금 찾아보니 <스페인 너는 자유다> 가 30만부 팔렸으며,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에세이로 스페인 신문에도 보도됐었다네요.

게다가 '미나공주' 란 별명으로 진행했던 TV프로 <도전! 골든벨>은 평균 시청률 35% 이상이었고, 아시아 최고 프로그램으로 뉴욕 에이미상 후보에도 선정됐었다니, 정말 잘 나가긴 했습니다.

 

2006년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후 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명성(?)이 진짜.....일까? 거품이 아닐까....?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도 그 시절에 기생해 사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어려운 것은 정점을 찍고 추락한 후 다시 오르는 것인데, 대개 과거에 묶이곤 하지요.

좀 악의적이지만, 그가 과거에 묶여 있는지, 나비가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연예인 프리미엄을 뗀 그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아나운서, 미나공주' 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손미나를.

 

빼어난 글은 아니나, 읽어갈수록 글에 담긴 솔직한 마음은 절로 무장해제 하게 하더군요. 초반은 매우 평범했지만 (그가 겉멋을 위해 파리로 간게 아닌가 의심스러웠어요), '자신만의 파리'를 말할 때부터 모든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습니다.

 

"사람들이 파리를 왜 낭만적이라고 하는지 아니?"

"왜 그런 거지? 사실 여기 와서 살아보니까 정말 이곳이 그렇게 낭만적인 도시인지 잘 모르겠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늘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날씨도 우울한 데다 사람을 너무 고독하게 만들어. 이 도시는..."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낭만적인 거야. 동화처럼 해피엔딩이거나 놀이동산처럼 모든 게 예쁘고 완벽하게 짜여 있다면 그 안에 어떤 낭만이 존재할 수 있겠니? 보이지 않는 슬픔이 녹아 있기 때문에 이 도시가 낭만적인 거야. 그게 바로 파리의 매력이지."

 

삶의 비극적 요소들을 인정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능력, 외모 등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파리에서, 그는 파리와 닮은 자신(자신을 인정하고 능력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을 발견합니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어요. 너무나, 미치도록!

쓰고 싶은 만큼 내가 할 수 있을까, 란 의문에 갇히기도 하구요.

게다가 파리에서 만난 프로(?) 소설가들의 조언에 기가 막힙니다.

 

"장편의 경우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중에 실제로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열 명도 채 안 되고, 실제로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또 열 명이 안 되지요. 그 적은 수에 낀다고 해도 그 작품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가능성은 아주 적어요.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장편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을 간절히 원하는가. 그런 열정을 정말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답을 먼저 듣고 시작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거든요."

 

이 말은 신경숙 작가가 그에게 한 말입니다.

아..... 소설 쓰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미처 몰랐네요. 고통과 괴로움, 할 수 있을까 강박증 사이에서 태어난 소설을, 너무 쉽게 읽고 평한 거 같아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기 충분한 그를 버티게 해준건 '파리의 열정'입니다. 

프랑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권리가 있듯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네요.

'타인을 위한 시간'이란 미용실 같지 않은 이름을 갖고 있는 미용실의 미용사는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합니다. 시집을 발간했냐는 질문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집을 발간하는 사람이란 뜻은 아니잖아요."라 답하는 곳, 그곳이 바로 창작 열정 가득한 파리입니다.

 

복잡한 프랑스어 속에서, 법적으로 따지길 좋아해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동네 거지조차 당연히 챙기는 패션 문화, 모든 일에 불평불만이 많고, 전기.가스.전화.인터넷.케이블....업무처리를 편지로 해야 하는....프랑스도 사람사는 곳인 만큼.... 손미나는 결국 적응합니다.

삶의 비극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프랑스 답게

"소설 쓰기란 험하디 험한 진흙밭은 뒹구는 일임과 동시에, 티끌만큼의 때도 묻지 않은 자신의 영혼을 마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를 자신의 삶에서 건져내지요.

 

이 책을 읽고 "좋은 책, 인연을 건지다"의 포스팅(http://blog.naver.com/cjiim/195795782)을 쓰기도 했습니다.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글을 건져낸 그가 무척 장하고 이뻤습니다. 글 쓰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그가, 여전히 밤에 글 쓰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한 시간 이상 걷고, 술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쓰기 위해 정한 자신의 규칙을 지키며, 대중에게 꾸준히 읽혀지는 작가로 남길 응원합니다.    

 

 

 

 

 

 

읽은 날  2013. 8. 13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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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람
고은 지음, 백낙청 외 엮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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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다음과 같은 글을 봤습니다.

 

'예술이란,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을 잉태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낯선 시선이야말로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과 렌즈를 가지는 것... 그것이 예술이며 예술적인 것이다."

출처 : 청장서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jdwjd9096/130180532858

 

이 글을 보는 순간, 고은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고은 선생의 대표 시선집인 <어느 바람>은, 어느 시(詩) 하나 전형적이지 않고 페이지마다 새로운 시선이 가득한 예술작품으로 읽혀졌거든요.

詩는 문장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만큼, 가장 호흡이 짧습니다. 제대로 된 시라면, 아무리 짧아도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모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되고 개별적인 작품이 모여 '시집'을 구성할 수도 있지만, 한 편 한 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충분히 빛납니다.

이러한 詩다 보니 어느 문학작품보다 쉽게 '전형성'이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데, 고은 선생의 시는 전형적인 예상을 보기좋게 걷어찹니다.

 

<어느 바람>은 고은 선생의 고희를 기념으로 출간된 시선집입니다. 김승희, 안도현, 고형렬, 이시영 시인이 시기별로 1차 수록작을 뽑아 평론가 백낙청이 최종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 수록됐습니다.

첫 시집인 <피안감성> (1960년) ~ <두고 온 시> (2002년) 까지의 단행본 시집에서 150편이 선별됐어요.

선생의 작품활동이 길 뿐 아니라 각기 다른 시인이 선정해서인지, 시 하나하나 반짝이는 별이 되어 아름다운 별무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별은 장부의 외로움과 절개가 가득합니다.

시대의 시인이 진실 외마디를 만들지만 그 마음이 다른 마음에 맞아죽기도 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에 묻혀 있어오 의연합니다.

간간히 자손만 찾아오는 무덤에서, 다시 태어나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깨물어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결국, 성장하는 기상을 볼 수 있어요.

 

따뜻한 마음이 넘치는 별도 있습니다.

고향이 있어 축복이라 말하면서, 그 마음이 미안해 닭과 중병아리에게 모이를 줍니다. 바람에 잔털 이는 중병아리들이 추울까봐 구구구 소리도 주었다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또, 익살 넘치는 별은 어떤가요.

 

 

청개구리

 

청개구리 한마리

네가 울어

하늘 가득히 비구름 모여든다

 

과연 천하장사로구나

요놈

 

 

 

단지 두 글자인 결구로 완벽한 호흡을 마무리 짓습니다. 얼핏보면 평범한 시가 결구로 빼어남을 갖추네요.

 

발상의 전환이 가득한 별, 아름다운 문장이 넘치는 별, 성석제 작가가 떠오르는 구수한 입담의 별...... 중 섬뜩한 칼이 연상되는 별도 있습니다.

삼천 번, 일만 번, 십만 번 허리를 굽히고 생사도 내치겠다는 성철 대종사를 향해 '저 아래 범부들을 아시냐' 는 싯구는 외마디 할 겨를 없이 칼날이 목에 온 느낌입니다.

개마고원에서 '무어라고 지껄이는 자 극형에 처함이여' 또한 수천 장의 기와가 눈앞에서 깨지는 듯한 느낌이구요.

 

부분 부분뿐 아니라, 한편으로 온전함이 빛나는 시도 기억에 남습니다. <愛馬 한쓰와 함께> <북청 사자춤> <순간의 꽃>....중 짧은 한 편을 인용합니다.

 

 

휴전선 언저리에서

 

북한여인아 내가 콜레라로

그대의 살 속에 들어가

그대와 함께 죽어서

무덤 하나로 우리나라의 흙을 이루리라

 

 

 

 

시선집  마지막에 다다르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런 책들의 뚜껑을 덮고,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등 혼자 면목없다 말하며, 여전히 젊디 젊은 시선으로 세상을 향하는 고은 선생이 느껴집니다.

이를 두고 백낙청은 '현역 시인'이란 표현을 했어요. 서정주의 경우, 여든 살이 넘도록 현역시인으로 남았으나 일부를 빼면 환갑 뒤의 창작은 대부분 긴장이 풀린 '관광객'의 기록이나 객담에 가까운 것들이라며, 고은 선생이 칠십을 맞아서도 여전히 젊다는 사실이 못내 고맙고 든든하다 말합니다.

독자로서 고은 선생의 '젊음'은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잉크> 나 <음유시인>을 통해 볼 수 있는 창작의 고충....앞에, 감동이 황송하기도 해요.

 

시인의 젊음을 빕니다.

젊음이 아니라 해도 건강을,

독자는 언제나 감사합니다.

    

 

 

 

읽은 날 2013. 10.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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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전쟁 - 세계 경제 위기의 진실, 누가 이 빚을 갚을 것인가?
홍석만.송명관 지음 / 나름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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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전쟁>이라는 제목을 보니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쑹훙빈의 <화폐전쟁> (어려울 거 같아 읽지 않았던 기억이...)과 이제는 감각조차 무뎌진 가계부채 입니다. 2008년만 해도 6,60억조라며 엄청 많다 했는데, 이제는 1,000조가 넘었다네요. 여전히 많은 숫자지만, 실감나지 않습니다. 

 

이 책 <부채전쟁>은, 생산이 곧 이익창출이었던 시절을 지나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 우리의 현재 좌표가 어떠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9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절에는 생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수요부족에 봉착하게 되자 성장엔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자 이자와 부채 즉 신용창조를 통한 금융시장으로 엔진을 갈아타게 되지요. 실물경제 뒷받침 없는 금융시장 팽창은 지구촌 곳곳에 금융 거품을 만들었고, 거품이 꺼지면서 곳곳에 생채기가 났습니다. 

 

금융시장이 팽창하는 핵심은 '이자'입니다. 

금리가 수요자와 공급자의 밀고 당기는 과정으로 결정된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권력이랍니다. 왜냐면 기준금리를 정부가 결정하고, '신용등급'에 따라 차별적용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관계는 국제사회에도 동일합니다. 국채를 발행할 경우 그 나라의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집니다. 

 

한 국가의 돈이 부족할 경우 가장 간편한 방법은 자국의 중앙은행에서 빌리는 것입니다. 같은 국가이기 때문에 이자도 필요없는 매우 편한 방법이나,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해야만 한다네요. 국채 발행 이율은 신용평가사가 매기는 등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신용평가시스템은 미국에 의해 발전된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듯 잘못된 평가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초법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외채이자 둘 중 어느 게 더 나쁜지 모르겠으나, 경기가 침체되어 이자나 원금상환 압박에 시달리게 되면 외채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됩니다. 

즉,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되면 IMF는 돈을 빌려주고 고율의 이자를 내라며, 긴축재정을 하라 압박합니다. 이런 상황에 몰리게 되면 가장 피해보는 사람은 여지없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긴축의 또 다른 말은 세금 증세, 복지의 대폭 축소, 임금 삭감이거든요. 세금을 늘리거나 복지를 줄여야만 일반적이지 않은 고율의 외채 이자를 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디폴트를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요? 

IMF가 발표한 <국가 부도의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채무불이행 선언 후 1년 정도는 힘들지만, 2년 이후부터는 큰 영향이 없었다 합니다. 

그러나 디폴트 선언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디폴트 선언은 채무국 정부의 정치적 이미지에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절반 이상이 선언 이후 1년 이내에 정권이 교체되거나 경제장관이 경질됐다네요. 

 

그리고 금융자본 세력의 관심사는 국채 시장 유지에 있을 뿐이며, 위기 국가 지원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채무국이 디폴트를 하면 이자를 받을 수 없으니, 이자낼 수 있을 정도로만 지원한다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닌듯 해요) 이러한 모습은 돈을 빌려주고 채무자의 위기를 노리고 있다가 빨대 꽂아 쪽쪽 빨아먹는 양심불량 고리대금 사채업자와 다를 바 없어요. 

 

채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최종 대부자는 IMF를 필두로 한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축통화국이며, 최대 수혜자는 글로벌 금융 사냥꾼(투자은행, 기관투자가, 조세 도피처)입니다. 우리가 수출로 외화를 벌면, 투기자본은 그 돈을 이자와 주주 배당, 거래 차익으로 되받아가는 구조인 거죠. 

이렇게 몰린 자금은 경제 위기 조짐이 있으면 미국 국채 등으로 빠져나가는데, 만약 빠져나가는 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신흥국은 환율 급변을 겪습니다. 

선진국은 자국의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양적 완화를 하고, 신흥국은 환율 방어하느라 돈을 풀면서 물가 고통을 받거나 이자 부담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불행히도 <부채전쟁>의 저자 홍석만.송명관은 가계 부채 악화에 재동을 걸고 안정시킬 타이밍이 지났다고 진단합니다. 최근 정부가 취하는 '부채 안정화'의 핵심은 채무불이해의 폭증에 따른 갑작스러운 금융 위기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있을 뿐, 금융 채무자의 노후와 미래를 책임지는 것에 있지 않다는군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지방공기업 대부분 부동산 경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대규모 부실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랍니다. 16개 광역 자치단체 도시 개발 공사 부채가 50조원을 넘고, 일부는 사실상 파산 상태라는군요. 부채 관리를 위한 동력이 떨어지거나 연착률할 시간을 벌지 못하면 스페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합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이 시중에 풀은 돈이 약 12조 달러(1경 3천 400조 원), 게다가 EU, 중국, 일본도 돈을 풀고 있습니다. 이렇게 풀린 돈의 이자는 누가 감당하며, 누가 빚을 상환하게 될까요. 

1경 3천 400조에 달하는 돈을 풀었으나(대부분의 돈은 글로벌 은행을 구제하는데 쓰였어요), 미국은 최근에 교사 3만 명을 해고하고 공무원의 강제 무급 휴가를 실시했습니다. 돈이 절감된다는 이유로 사형제 폐지가 발의되는가 하면, 수감자들을 조기석방하고 있다네요. 

예산 적자를 학생, 교직원, 학부모의 희생으로 메울지 아니면 수천 억 달러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보고 있는 대기업과 부자에게 부담 지을지를 놓고 미국민들은 부채 전쟁을 하고 있답니다. 이들의 저항은 2010년과 2011년으로 이어졌고, 월 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자신이 되었다는군요. 

 

이 책은 '신용창조'로 굴러가는 금융자본주의 입장이라는 단편적 한계에도 불구, 꽤 괜찮습니다. (이 분야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일수도 있겠구요) 금융세력 파악으로 전세계 경제흐름을 안다 할 수 없겠지요. 어디선가 불쑥 블랙스완이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비록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인, 은행의 국유화.사유화나 대안화폐, 새로운 국제 통화질서 확립이 크게 와닿진 않지만, 거대 흐름 속 내가 처한 좌표를 읽어내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결정되는 부채 논쟁(누가 빚과 이자를 감당할 것인가)에서, 최소한 알아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미 등록금, 기름값, 월세, 난방비.... 필수적인 재화의 공급과 서비스의 공적 기능이 악화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이 책은 앞으로 오랫동안 부채 축소에 따른 장기 불황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저금리 기조는 계속되고 기축통화국 중심으로 지속적인 양적 완화가 진행될 것이라네요. 

지금 우리는 빚을 내어 이자를 갚거나 환율방어를 하고 있답니다. 부채 원금이 줄거나 생산적인 산업활동에 쓰이는 게 아닌, 이자를 위한 빚이 증가하는 악순환인거죠. 

당장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악성 부채를 도려내지 않으면, 만만치 않은 세계 장기 불황 속에서 원치 않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축통화가 없는 우리의 뼈아픈 현실은, 새로운 돌파구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커다란 숙제와 동의어일 것입니다. 분명 길이 있을텐데요. 옛말에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는데 말이죠. 

 

 

 

 

 

 

읽은 날  2013. 10.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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