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잘 나가던 방송 생활을 돌연 접고, 1년 잠적한 후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썼던 손미나, 이것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지금 찾아보니 <스페인 너는 자유다> 가 30만부 팔렸으며,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에세이로 스페인 신문에도 보도됐었다네요.

게다가 '미나공주' 란 별명으로 진행했던 TV프로 <도전! 골든벨>은 평균 시청률 35% 이상이었고, 아시아 최고 프로그램으로 뉴욕 에이미상 후보에도 선정됐었다니, 정말 잘 나가긴 했습니다.

 

2006년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후 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명성(?)이 진짜.....일까? 거품이 아닐까....?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도 그 시절에 기생해 사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어려운 것은 정점을 찍고 추락한 후 다시 오르는 것인데, 대개 과거에 묶이곤 하지요.

좀 악의적이지만, 그가 과거에 묶여 있는지, 나비가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연예인 프리미엄을 뗀 그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아나운서, 미나공주' 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손미나를.

 

빼어난 글은 아니나, 읽어갈수록 글에 담긴 솔직한 마음은 절로 무장해제 하게 하더군요. 초반은 매우 평범했지만 (그가 겉멋을 위해 파리로 간게 아닌가 의심스러웠어요), '자신만의 파리'를 말할 때부터 모든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습니다.

 

"사람들이 파리를 왜 낭만적이라고 하는지 아니?"

"왜 그런 거지? 사실 여기 와서 살아보니까 정말 이곳이 그렇게 낭만적인 도시인지 잘 모르겠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늘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날씨도 우울한 데다 사람을 너무 고독하게 만들어. 이 도시는..."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낭만적인 거야. 동화처럼 해피엔딩이거나 놀이동산처럼 모든 게 예쁘고 완벽하게 짜여 있다면 그 안에 어떤 낭만이 존재할 수 있겠니? 보이지 않는 슬픔이 녹아 있기 때문에 이 도시가 낭만적인 거야. 그게 바로 파리의 매력이지."

 

삶의 비극적 요소들을 인정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능력, 외모 등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파리에서, 그는 파리와 닮은 자신(자신을 인정하고 능력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을 발견합니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어요. 너무나, 미치도록!

쓰고 싶은 만큼 내가 할 수 있을까, 란 의문에 갇히기도 하구요.

게다가 파리에서 만난 프로(?) 소설가들의 조언에 기가 막힙니다.

 

"장편의 경우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중에 실제로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열 명도 채 안 되고, 실제로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또 열 명이 안 되지요. 그 적은 수에 낀다고 해도 그 작품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가능성은 아주 적어요.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장편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을 간절히 원하는가. 그런 열정을 정말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답을 먼저 듣고 시작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거든요."

 

이 말은 신경숙 작가가 그에게 한 말입니다.

아..... 소설 쓰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미처 몰랐네요. 고통과 괴로움, 할 수 있을까 강박증 사이에서 태어난 소설을, 너무 쉽게 읽고 평한 거 같아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기 충분한 그를 버티게 해준건 '파리의 열정'입니다. 

프랑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권리가 있듯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네요.

'타인을 위한 시간'이란 미용실 같지 않은 이름을 갖고 있는 미용실의 미용사는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합니다. 시집을 발간했냐는 질문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집을 발간하는 사람이란 뜻은 아니잖아요."라 답하는 곳, 그곳이 바로 창작 열정 가득한 파리입니다.

 

복잡한 프랑스어 속에서, 법적으로 따지길 좋아해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동네 거지조차 당연히 챙기는 패션 문화, 모든 일에 불평불만이 많고, 전기.가스.전화.인터넷.케이블....업무처리를 편지로 해야 하는....프랑스도 사람사는 곳인 만큼.... 손미나는 결국 적응합니다.

삶의 비극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프랑스 답게

"소설 쓰기란 험하디 험한 진흙밭은 뒹구는 일임과 동시에, 티끌만큼의 때도 묻지 않은 자신의 영혼을 마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를 자신의 삶에서 건져내지요.

 

이 책을 읽고 "좋은 책, 인연을 건지다"의 포스팅(http://blog.naver.com/cjiim/195795782)을 쓰기도 했습니다.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글을 건져낸 그가 무척 장하고 이뻤습니다. 글 쓰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그가, 여전히 밤에 글 쓰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한 시간 이상 걷고, 술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쓰기 위해 정한 자신의 규칙을 지키며, 대중에게 꾸준히 읽혀지는 작가로 남길 응원합니다.    

 

 

 

 

 

 

읽은 날  2013. 8. 1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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