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트 코인' 이라는 게 있어요.

 

 

운영자 없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미국, 독일 등 전세계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는 가상화폐이다. <출처 (cc) zcopley at flickr.com>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고안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상화폐'인데, 수학 문제를 풀면 돈(비트코인)이 발행(이를 '채굴'이라고 한대요) 된다고 합니다. 최대 2,100만 비트코인이 매장(?)되 있는데, 2013년 8월까지 약 1,200만 비트코인(한화로 약 1조 5천 450억원)이 채굴됐다네요.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중개서비스가 오픈되고, 일부 싸이트에선 결제 수단으로 인정되는 등 새로운 화폐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한데, 각국.학자마다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답니다.

 

자세한 내용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2&contents_id=35725

 

 

이 내용을 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가 떠오르더군요.

박사는 비트코인 마이너(miner, 비트코인 발행을 위해 문제를 푸는 사람을 광부라 합니다)처럼 수학잡지에 실린 문제를 풀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만, 그들과 다르게 상금(비트코인?)엔 전혀 관심없는 사람입니다.

박사는 '수학'이란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요, 그 창이 매우 따뜻하고 애정이 담뿍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친구에게 놀림받기 싫어 늘 모자를 쓰고 있는 가정부 아들에게 '무한한 숫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있다는 이유로 √ (루트)란 이름을 지어 주고,

박사의 시계에 새겨진 숫자와 가정부의 생일이 '우애수'라며,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한 쌍밖에 발견하지 못한 우애수인만큼 '특별한 인연임'을 발견해 냅니다.

어떤 식에든, 어떤 숫자에든 의미가 있으니 이면지 같은 곳에 아무렇게 계산하면 가.엾.지.않.냐.....는 박사의 말에, 저는 가만히 밑줄 긋고 먼 곳을 바라봤습니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박사의 따뜻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듯해, 절로 훈훈해 지더군요.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교통사고로 17년 전 기억만 갖고 있는 박사의 집에 '나'가 가정부로 들어가면서 셋(박사, 가정부, 가정부의 아들)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박사는 숫자 못지않게 가정부의 아들 루트를 아껴주는데요, 그 속에서 루트는 '내'가 깜짝 놀랄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내용을 극화시켜주는 장치로 80분만 유지되는 박사의 기억력이 나옵니다. 즉, 박사의 기억력이 80분만 유지되고 그 전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박사가 걸을 때마다 옷 속에 붙어있는 수많은 메모지(기억력을 대체하죠)로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수식 앞에서 박사가 내쉬는 감탄의 한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언어와 빛나는 눈동자는...80분 기억력 덕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80분마다 기억회로가 리셋되니, 언제나 새롭게 경탄하고 감탄할 수 있는거 같았어요.

그렇지 않다해도, 박사는 여전할테지만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는 그동안 봐왔던 소설 속 수학자와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봐야 <용의자 X의 헌신>, 버트런트 러셀, <로지코믹스>...만 떠오르네요)

박사는 수학을 통해 무언가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구하려는 거창한 목표도 없어요.

그저...숫자와 수식을 사랑하고 쓰다듬어 줄 뿐입니다.

심지어 박사와 루트를 떼어놓으려 하는 미망인 앞에 백마디 말 대신 공식 한 줄을 써요.

 

  

 

이것을 본 미망인은 박사가 루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바로 알아챕니다. 이 공식은 '오일러의 공식'으로 박사가 가장 사랑하는 공식이거든요.

이 공식에 대한 표현을 볼까요?

 

"다른 공식에 비하면 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다. 큰 덩치를 마지막 0 이 받치고 있고...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π가 e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한 줄기 유성의 빛,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

 

이 책에 담긴 수식을 향한 박사의 애정 어린 마음을 보니, 박사처럼 무언가를 그 자체로 애정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80분만 유지되는 기억력이 있어도, 안될거 같아요.

 

비트코인을 고안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를 섞어 써서 두 명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었을거 같아, 자꾸 이 책이 연상되네요.

사토시 나카모토가 수학 그 자체를 좋아해 만든건지, 새로운 화폐를 만들려는 시도였는지, 그저 재미삼아 한 건지...아무도 모릅니다만,

'박사'의 마음으로 만든 것이길 빕니다.

아, 의도도 중요하지만 선한 쓰임이 더 중요하겠네요.  

 

 

 

 

 

 

다시 읽은 날 2013. 10. 2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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