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문답 - 시대의 이상과 운명에 답한 조선의 자화상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7월
평점 :
표암 강세황(1713~1791) 자화상
위 그림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초상화로, 대상자의 인품과 성격에 촛점을 맞춰 '기념' 목적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초상화는 어떨까요.

윤두서(1668~1715년)의 <자화상>으로, 문외한인 제가 봐도 사뭇 다릅니다.
다른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 다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어요. 게다가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라니, 언감생심이지요.
그럼에도 '화가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그림문답>을 읽게 된 것은 이종수에 대한 좋은 기억과 이웃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이종수의 <벽화로 꿈꾸다>의 좋은 기억으로, 주저없이 선택하게 됐어요.
다시 윤두서의 <자화상>으로 돌아가 볼까요.
윤두서는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집안의 종손으로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학문과 예술로 인정받았던 선비이며, 무려 아들 열 명을 둔 자식 복도 많은 남자랍니다. '도발'이라 할만큼 사뭇 다른 자화상을 그리기까지, 윤두서의 마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짐작되지 않아요.
윤두서가 살았던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은 숙종시대로 당파 간 경쟁이 도를 넘어섰던 시기입니다. 그의 셋째 형이 상소문으로 유배되었다가 옥에서 숨을 거뒀고, 임금은 사대부가의 어느 지아비도 차마 할 수 없은 일을 버젓이(왕비 민씨와 희빈 장씨) 했어요. 이런 세상에 출사한다는 게 어찌 가능하며, 어떤 의미인지....혈기 왕성한 나이의 윤두서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혔고,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그리고 그가 추구해야 하는 학문은 어떠해야할지....
수많은 고민을, 이종수는 그림 하나에서 읽어냅니다.
감탄스럽습니다.
경탄스러워요.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선비의 쓸쓸한 학문을 본 것만 해도 놀라운데, '관모' 없이 그려진 그림에서 고관대작의 빛나는 관모를 얹을 수도 없고, '나를 드러내주는 그 어떤 것도 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윤두서의 마음까지, 이종수는 읽어냅니다.
이종수가 읽어낸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화가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림 한 점으로 화가의 마음을 유추해 내는 이종수의 능력, 정말 멋집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고 꿈을 꾼 사람, 꿈에 동참한 사람, 그와 함께한 사람을 읽어내고,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를 보며 겸재 정선이 지나갔던 길을 훑으며 자신만의 그림을 찾아내고자 애쓴 김홍도를 읽어내고, <귀거래도>를 보며 시대의 끝을 함께 한 장승업을 읽어냅니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고 친근하고 새로운지, 읽어가는 내내 아쉬워하며 읽었어요.
우리는 대개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어떻든 '내 마음'이 닿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도 해요.
이 책에 나오는 화가 대부분은 조선시대를 풍미했기에,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하는 절절한 마음이 크지 않을 것입니다만, 저는 이종수 작가가 고맙더라구요.
당사자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아주고 이해해줘서, 200여 년을 훌쩍 뛰어넘은 독자에게 훌륭하게 전달되니 말입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지속 시간이 연장될 수도 단축될 수도 있다지요.
이종수 라는 사람을 통해 200여 년 전 화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합니다.
이렇게, 화가의 마음이 200년 넘게 지속되기도 하네요.
읽은 날 2013. 9. 2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