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람
고은 지음, 백낙청 외 엮음 / 창비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다음과 같은 글을 봤습니다.

 

'예술이란,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을 잉태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낯선 시선이야말로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과 렌즈를 가지는 것... 그것이 예술이며 예술적인 것이다."

출처 : 청장서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jdwjd9096/130180532858

 

이 글을 보는 순간, 고은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고은 선생의 대표 시선집인 <어느 바람>은, 어느 시(詩) 하나 전형적이지 않고 페이지마다 새로운 시선이 가득한 예술작품으로 읽혀졌거든요.

詩는 문장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만큼, 가장 호흡이 짧습니다. 제대로 된 시라면, 아무리 짧아도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모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되고 개별적인 작품이 모여 '시집'을 구성할 수도 있지만, 한 편 한 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충분히 빛납니다.

이러한 詩다 보니 어느 문학작품보다 쉽게 '전형성'이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데, 고은 선생의 시는 전형적인 예상을 보기좋게 걷어찹니다.

 

<어느 바람>은 고은 선생의 고희를 기념으로 출간된 시선집입니다. 김승희, 안도현, 고형렬, 이시영 시인이 시기별로 1차 수록작을 뽑아 평론가 백낙청이 최종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 수록됐습니다.

첫 시집인 <피안감성> (1960년) ~ <두고 온 시> (2002년) 까지의 단행본 시집에서 150편이 선별됐어요.

선생의 작품활동이 길 뿐 아니라 각기 다른 시인이 선정해서인지, 시 하나하나 반짝이는 별이 되어 아름다운 별무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별은 장부의 외로움과 절개가 가득합니다.

시대의 시인이 진실 외마디를 만들지만 그 마음이 다른 마음에 맞아죽기도 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에 묻혀 있어오 의연합니다.

간간히 자손만 찾아오는 무덤에서, 다시 태어나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깨물어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결국, 성장하는 기상을 볼 수 있어요.

 

따뜻한 마음이 넘치는 별도 있습니다.

고향이 있어 축복이라 말하면서, 그 마음이 미안해 닭과 중병아리에게 모이를 줍니다. 바람에 잔털 이는 중병아리들이 추울까봐 구구구 소리도 주었다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또, 익살 넘치는 별은 어떤가요.

 

 

청개구리

 

청개구리 한마리

네가 울어

하늘 가득히 비구름 모여든다

 

과연 천하장사로구나

요놈

 

 

 

단지 두 글자인 결구로 완벽한 호흡을 마무리 짓습니다. 얼핏보면 평범한 시가 결구로 빼어남을 갖추네요.

 

발상의 전환이 가득한 별, 아름다운 문장이 넘치는 별, 성석제 작가가 떠오르는 구수한 입담의 별...... 중 섬뜩한 칼이 연상되는 별도 있습니다.

삼천 번, 일만 번, 십만 번 허리를 굽히고 생사도 내치겠다는 성철 대종사를 향해 '저 아래 범부들을 아시냐' 는 싯구는 외마디 할 겨를 없이 칼날이 목에 온 느낌입니다.

개마고원에서 '무어라고 지껄이는 자 극형에 처함이여' 또한 수천 장의 기와가 눈앞에서 깨지는 듯한 느낌이구요.

 

부분 부분뿐 아니라, 한편으로 온전함이 빛나는 시도 기억에 남습니다. <愛馬 한쓰와 함께> <북청 사자춤> <순간의 꽃>....중 짧은 한 편을 인용합니다.

 

 

휴전선 언저리에서

 

북한여인아 내가 콜레라로

그대의 살 속에 들어가

그대와 함께 죽어서

무덤 하나로 우리나라의 흙을 이루리라

 

 

 

 

시선집  마지막에 다다르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런 책들의 뚜껑을 덮고,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등 혼자 면목없다 말하며, 여전히 젊디 젊은 시선으로 세상을 향하는 고은 선생이 느껴집니다.

이를 두고 백낙청은 '현역 시인'이란 표현을 했어요. 서정주의 경우, 여든 살이 넘도록 현역시인으로 남았으나 일부를 빼면 환갑 뒤의 창작은 대부분 긴장이 풀린 '관광객'의 기록이나 객담에 가까운 것들이라며, 고은 선생이 칠십을 맞아서도 여전히 젊다는 사실이 못내 고맙고 든든하다 말합니다.

독자로서 고은 선생의 '젊음'은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잉크> 나 <음유시인>을 통해 볼 수 있는 창작의 고충....앞에, 감동이 황송하기도 해요.

 

시인의 젊음을 빕니다.

젊음이 아니라 해도 건강을,

독자는 언제나 감사합니다.

    

 

 

 

읽은 날 2013. 10.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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