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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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쓰여진 다큐 형식의 소설이라길래, 호기심이 팍 생겼습니다. 가물가물하지만, '김재규'라니....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것 같았어요. 

 

이 책은 김재규를 변호한 강신옥, 안동일 등이 34년간 간직한 자료와 기억, 기족의 증언, 그와 운명을 함께한 5명의 이야기, 김재홍 교수가 어렵게 입수한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 진술>, 그 외 방대한 자료에 기초해 쓰여졌다며 그 동안 출간된 김재규 관련 책과 차원이 다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 평전'이란 타이틀이 괜히 있는게 아니더군요. 자랑하던 객관성은 어디 가고, 곳곳이 편향적이라 불편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최측근에 있었던 김재규는 유신 헌법의 의미를 간파하고 유신의 심장을 쏘기로 결정합니다. 나름 치밀한 계획(?)으로 거사를 했으나, 거사 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12.12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실패한 혁명이 되버렸다네요.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내란을 일으킬 의도가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답니다. 김재규 덕분에 우리나라 민주화가 20년 이상 앞당겨졌으니, 김재규의 행동은 공동체의 정당방위 원리와 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선뜻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유신이 잘못인 것은 분명한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이 꼭 '살인'이어야 했나....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단하고 대단한 권력을 가진 박정희를 제거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실제로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이 거의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살인'이란 방법밖에 없었다면 어쩔 수 없을거 같은데, 김재규가 얼마나 '살인'외의 방법을 찾으려 했는지에 대해서는.....여백이 많습니다. 여백을 메꾸는 것은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박정희를 죽인 거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실행할 수 있었을까? 그는 박정희에 의해 희생될 수 있었던 많은 사람을 구한 거다' 라며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거사 후에 대한 준비가 치밀하지 않은 것이 살해란 행동의 순수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살해가 옳지 않지만 전후무후 기가 막힌 타이밍에다 다시 오지 않는 찰나의 기회라면...? 

정말 살해 외 방법이 없다면 목적을 위한 살인이 정당한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유신이란 광풍의 진원지에서 김재규를 둘러싼 여론, 재판 등 모든 행정적, 사법적 처리가 부당하고 졸속이었다 해도, 박정희가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해도...  목적을 위한 살인이 정당할 수 있을까.... 

절대권력자 박정희를 죽이는 일인데, 꼼꼼한 준비없이 무작정 일만 저지른(김재규가 제대로 했다면 12.12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아, 다른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군요!) 김재규는 차라리 무능력한 게 아닐까....   

최대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전두환이 권력을 잡은 것(하늘이 도와주지 않은 거라 볼 수 있는)과, 전두환 등장을 예상조차 못한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인데...말이죠. 

 

이 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초반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유신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끝장낸 김재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이런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 결국 한계 안에 갇힌 채 끝나버리더군요. 

유신체제가 끝나야 한다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가 제대로 풀어지지 않은채 급하게 봉합되버린 느낌입니다. 제대로 파헤치면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봐 겁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 란 사실 앞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책이 제대로 쓰여졌다는 자평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김재규가 '살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정황과 공감가는 진실된 이야기가 있던가, 김재규의 한계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비판하는 부분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군, 영웅, 의인, 평전...이란 단어가 무척 낯설고 불편하더군요. 

 

10.26 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2004년 5월 1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김재규에 대한 보상 심의 활동이 착수되었는데, 결정이 유보된 채 끝나버렸다는군요. 

이래저래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러한 일에, 이 책이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습니다. 

 

 

 

 

        

 

 

 

 

읽은 날 2013. 11. 2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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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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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는 무려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하드웨어는 둘이 합쳐 달랑 100 kg!' 

재밌는 표현에 눈이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 

 

 

바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건 내가 원래 좋아하는 프레임이야~' 란 근거없는 생각이 들고, 대놓지 않고 은근히 말하는 뭔가가 있을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단 가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모자의 300일 세계 배낭여행기입니다. 

엄마의 환갑잔치를 위해 돈을 모으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우리 배낭여행 가자!' 말하고, 평소 운동조차 하지 않던 엄마는 '그래!' 하고선 가게를 정리합니다. 그리고선 둘이 훌쩍! 떠나요. 여행의 계기도, 구성원 조합도 독특한 배낭여행이 아닐 수 없어요. 

 

모자는 중국에서 출발해 오로지 육로로 동남아시아 대륙 끝까지 걷고, 중동으로 날아갑니다. 그 사이 다양한 에피소드와 모자 사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적 이야기를 재밌고 유쾌한 필치로 담고 있습니다. 

패키지 여행에 익숙한 제게 모자가 전하는 나라와 명소 이야기가 알차게 다가오더군요. 

400년 동안 석굴에 14만 개의 불상을 새겼다는 용문석굴, 많은 여행자 사이에서 스타급 반열에 올라섰다는 리장의 축복과 같은 하루하루, 오아시스와 사막, 단언컨대 혼돈 그 자체인 악명의 도시 카이로, 보통 100% 기대했다면 아무리 못해도 10% 정도는 실망하기 마련인데, 100%의 기대를 300% 이상의 놀라움과 만족으로 화답해 준 페트라... 

다양하고 넘칩니다. 

그 중 스리랑카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며 이 포즈 저 포즈 취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달려와 과일을 건네면, 그를 질투하는 또 다른 사람이 바로 달려와 우리의 팔을 잡고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바닥에 앉아 채소를 손질하던 상인들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 달라 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주변의 모든 상인들이 몰려와 구경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심지어 팔이 부러진 아저씨까지 뛰어와 깁스를 한 손으로 엄마를 툭툭 치며 사진을 찍자고 옆에 선다. 이거 뭐 시장이 우리로 인해 완전 마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 차장은 올라타는 승객들에게 차비 받을 생각도 않고 내 옆에 앉아 노트북에 저장된 지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뿐이다. 아 참, 근데 엄마는 어디 갔지? 버스 앞자리에 앉은 엄마가 차장 대신 사람들에게 차비를 받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도 적고 문명화가 덜 되어 그런지 스리랑카 사람들이 참 소박합니다. 해변에서 저자의 엄마 옆에 수줍게 다가와 소라와 조개껍데기를 살포시 올려놓으며 미소짓던 청년....이야기에 당장 스리랑카로 달려가고 싶더군요. 

 

이 책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에 이은 후속편이 있습니다. 유럽 여행기가 담긴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인데요, 후속편까지 읽어보고 싶진 않더라구요. 

저자는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세계여행을 떠나다>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행 내내 실시간(?)으로 사진과 글을 올리고, 모자는 블로거들의 반응을 감지해요.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보이기 위한 여행이 아닐까...싶더군요. (아.. 300일이나 되는 여행이라면 어쩔수 없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거, 잘 압니다. 저 또한 그러니까요. 그러나.... 그게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있다는 건.... 적어도 제겐 피하고 싶은 일이에요. 

 

다음에는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가릴 필요없는, 그런 차원을 떠난 여행기와 만나고 싶네요.     

 

 

 

 

 

 

 

읽은 날  2013. 11.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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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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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험버트란 소아성애자가 궁리에 몰린 어린 소녀를 1년 넘게 데리고 다니며 아이 영혼에 상처를 주고, 훗날 소녀가 좋아했던 남자를 질투에 눈이 멀어 살해한다는, 매우 불쾌한 내용입니다. 

소아성애자가 좋아하는 소녀는 '님펫'으로 불리는데, 님펫이란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녀 중에서 마성을 보이는, 종잡을 수 없고 변화무쌍하며 영혼을 파괴할 만큼 사악한 매력과 야릇한 기품을 갖고 있는, 선택된 소녀라 합니다. 

님펫에 매력당하는 남자와 소녀와의 나이 차이는 필수인데, 일반적으로 30~40년 나야 한다는군요. 

불쾌한 설정이지만, 마성을 지닌 어린 소녀....라, 뭔가 있을 것 같고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대로 '불쾌하다'라는 말이 '독특하다'란 뜻일지도 몰라 읽어보게 됐습니다. 

 

소설의 줄거리(소아성애자의 님펫에 대한 사랑...이란.....)에 비해 쓸데없이(?) 두꺼운 500쪽을 읽어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완독했는데요, 그만한 매력이 있었어요. 

우선, 문장이 괜찮습니다. 

'심장 대신 푸르스름한 얼음 한 덩어리를 품고' 와 같은 문장이나 등장인물이 계단 내려오는 것을 '샌들, 밤색 슬랙스, 노란색 실크 블라우스, 각진 얼굴의 순서로 계단을 내려오면서' 라 표현한다든지...하는 것들이 좋았어요. 

또한 문장이 한 편의 시처럼 읽힙니다. '따다다다 따따, 또르르 똑똑' 하는 리듬감이 귀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그리고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너스레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신화 속 인물이 은유의 제물이 되는 건 당연하고, 언어의 어감이나 발음, 뜻을 뒤틀려 사용하는 게 200쪽은 되지 않을까.....(과장입니다~)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프로이트를 활용한 우스갯 소리였어요. 

'그는 빈의 도움을 빌려 거시기가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다가'란 표현은 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던 프로이트가 거세불안 언급한 것을 놀리기 위한 것이고, '지그문트 2세 전하께서'란 표현도 그를 조롱하기 위해 쓴 표현입니다. 

 

작가가 유난히 프로이트를 조롱한 것은 문학에 대한 생각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작가는 상징과 비유를 싫어합니다. 교훈적인 소설은 쓰지도, 읽지도 않는다는군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게(이 책의 작가죠)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 예술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답니다. 어떤 국가나 사회계층 또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며, 작품은 집을 감싸는 안개 낀 여름날이나 안개 너머에 빛나고 있을 태양처럼 즐거움을 주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힘써 말합니다. 

 

시처럼 음율감 가득한 문장과 비호감 내용에도 불구 끝까지 읽게 하는 <롤리타>를 읽고 나니 얼떨결에 작가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다소 유쾌하지 않은 소설의 내용에도 불구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하는 힘은 작가가 말한 심미적 희열 덕이며, 그것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거 같아요. 

아름다운 언어의 행렬은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언어의 잔치를 관통하는 여운이면 족하지 않을까(그런 내용에도 불구).....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작품의 여운이 가시니...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이 책의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출신입니다.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1919년에 서유럽으로 망명했어요. 그 후 20년간 독일.프랑스 등지에 살면서 러시아어와 영어로 작품을 썼습니다. 그러다 1945년에 미국으로 귀화했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탓에 작가는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답니다.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로 문학작품을 쓰면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을 거에요.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속속들이 친근한 어감이 아니다보니, 함축적인 연상이나 효율적인 도구가 아니라 느꼈을 겁니다.  

작가의 이력이 이렇다보니, 님펫을 어린 소녀가 아닌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 10대란 나이에 많은 유산을 받았으나, 혁명으로 모든 걸 잃어버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웬지 '잃어버린 시간'이 느껴집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 작가는 발끈하겠죠. '나는 비유와 은유를 싫어하고, 소설은 심미적 희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듯 하네요. 

그의 말대로 소설이 심미적 희열의 결정체지만, 문학작품은 국가, 사회, 시대, 작가와 동떨어질 수 없다 생각합니다. 이 말은 문학이 시대와 사회를 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학에는 그 작품을 써야 했던, 혹은 썼던 작가의 개인적인 처지와 시대 사회적 상황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즉, 심미적 희열을 추구하는 작가의 성향에는 그(시대를 포함한)만의 고유 이력이 있을거 같아요. 

 

참, 그런데요.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둔 작가가 제 몸같지 않은 영어로 작품을 쓰고, 저는 김진준이란 분이 번역한 것으로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작가가 러시아어로 쓴 다른 작품도, 이 책의 영어 원작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시적인 산문, 산문같은 시'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김진준 씨는 20년 동안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숙제라 했는데요, 모든 문장이 가진 고유의 진폭을 원작대로 살려준(충분히 그런 것 같아요) 역자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읽은 날  2013.  11.  2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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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permint 2019-08-1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이얼게 정성스럽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후기라니 님의 글을 읽고나니 롤리타가 절로 읽고싶어집니다.좋은글감사합니다.
 
얘들아 숲에서 놀자 - 숲 체험 교육의 모든 것, 109가지 숲 체험놀이 완전 수록
남효창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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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하면 몇 년 전 어느 수목원에 갔다온 게 생각납니다. 

아담한 어느 수목원 초입 언덕진 곳에 벤치와 그네식 의자가 곳곳에 있었어요. 아이들은 그네식 의자를 타고, 부부는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간간히 들어오는 햇살을 즐기던..... 저절로 '그때 참 좋았지!' 하게 하는 기억이 떠오르네요. 

미화된 기억이라도 갖고 있는 저와 달리, 아이들은 '숲'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나무일 뿐이고 풀, 그리고 꽃일 뿐이니까요.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얘들아 숲에서 놀자>를 읽게 됐습니다. 

 

이 책은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대학원 산림학 박사를 취득한 남효창씨가 자연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높이기 위해 쓴 책입니다. 

자연에 대한 본질적 이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학교와 책을 통해 배우게 되는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감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대상에 대한 지식은 나와 다른 세계인 자연에만 한정된 것인데, 그 지식을 내가 있는 세계와 연결시켜야 진정한 이해가 됩니다. 

연결하는 방법 중에 숲에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했고 무언가를 느꼈다는 구체적인 기억은 자연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과 감성을 갖게 해줍니다. 즉, 자연에서 신나게 놀아본 구체적 기억이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인식을 깨워줄 겁니다. 

 

이 책은 생태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분야별로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숲 교육 필요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아이들 연령별 특성에 따른 구체적인 숲 놀이 방법과 함께 숲 교육자가 되려는 이들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내용이 실려 있어요. 

여러 대상을 포괄적으로 다룬 이 책을 보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생태교육 분야가 척박한데 이렇게 전문적인 내용의 책이 있다니.... 실제와 이론의 괴리가 크게 느껴졌어요. 유치원생 아이에게 대학생 내용을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는 모두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남효창 씨의 바람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이 책을 읽고 남효창 씨의 숲 연구소 싸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http://www.ecoedu.net/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목표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저자를 보니, 고작 아이의 체험활동이나 해보려는 얄팍한 마음이 부끄러웠어요. 돈만 내고 체험한다고 해서 자연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되지 않는데 말이죠. 그리고, 체험 교육을 받겠다는 마음 속엔 돈만 내면 자연이 계획대로 따라준다는 근거 없는 무의식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됐어요. 미리 예약해도 계절이나 시간, 날씨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생태교육 특성 상  '어차피 계획대로 되기 힘드니 예약하지 말아야겠다...' 란 마음이 들었거든요. 

 

이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숲 체험 놀이를 안내합니다. 

 





 

 

 

비록 생태교육이 현장교육의 수많은 어려움과 우선순위에 부딪혀 쉽게 후선으로 밀려나는 분야지만,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에 저자의 노력은 척박한 우리나라 처지에 빛과 같은 존재라 생각합니다. 

자연과 조화롭게 공생하는 것은 과학으로 풀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현재 당면한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과학이 담아낼 수 없는 감성을 향상시키는 교육과 절묘한 조화를 찾는 것일 겁니다. 이러한 점에서 생태계를 직접 체험하는 환경 체험교육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얘들아 숲에서 놀자> 인가 봅니다. 

얄팍한 의도든 순수한 의도든 지금보다 아이들이 숲과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숲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갖게 된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생태교육이 아닌가 싶네요.  

 

      

 

 

 

 

 

읽은 날 2013. 7. 2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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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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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읽게 된 것은, 사회변화가 절감되기 때문입니다. 통계와 실제 생활에서 '1인 가구' 증가는 누가 봐도 명확한 일이니까요.

 

이 책은 다양한 1인 가구 중 '싱글'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자는 혼자 사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종족으로 묶을 수 있는 이념이나 철학 따위는 없다며 이 책의 한계를 정직하게 말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가기도 합니다. 미혼, 비혼, 만혼, 이혼에다 로(老)까지 더해 '독거'란 단어까지 나오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1인 가구'란 한 개의 단어로 묶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저자가 촛점을 맞춘 '싱글'이란 단어를 볼까요.

독신이나 자취 그리고 혼자 산다는 표현까지 혼자 산다는 정체성은 동일하지만, '싱글'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순간 마법이 펼쳐집니다. 궁상맞고 찌질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신사의 품격>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둔갑하게 되지요.

'싱글'이란 단어가 '화려한'이란 형용사를 만나게 되면, 보호받지 못한 채 홀로 버려진 사람들이 깔끔하게 생략되기까지 합니다.

 

화려한 싱글부터 독거노인에 이르기까지 혼자 잘 살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균형'입니다. 저자는 균형 이루기에 성공한 사람을 '단독인'이라 표현하는데요, 이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각종 역할(부모, 자식, 직업인 등)에 함몰되 자아를 상실하거나, 각자 내면을 향해 파고드는 바람에 사회적 역할을 방기하지도 않는 적절한 균형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균형을 말하는데요, 이게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선 자기만의 공간과 최소한의 소득이 보편적으로 보장되야 한답니다. 이 말은 '독거노인'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잘 사는 모습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돌려 말해주는 것인데, 그닥 새로운 사실은 아닙니다.

 

이처럼,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새롭거나 예리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어려운 말로 장황하게 말하는 단점까지 있어요.

그러나, 한참 진행되고 있는 1인 가구에 대해 나름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찰했다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편견을 생각해볼 때,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1인 가구 비율은 상당히 높은데(의도치 않게 또 인용됩니다만, 이 책에 나오더라구요), 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1인 가구 증가는 '표준 가족의 안정성 상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존 사회가 전체를 위해 개인(혹은 가정)이 희생하곤 했었는데, 이젠 동등하게 win-win 해야 한다는 거죠. 사회적 책임을 가정이 떠안는 것이 개인(가정) 입장에서 부당한 일임에도, 전통적 사고방식에 익숙하다보니 당연한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지만, 이제 그 한계에 달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결코 '개인주의 = 이기주의'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미 통계 상, 변화는 현실입니다.

 

 

 

제게 익숙한 핵가족(부부+자녀) 형태가 앞으로 20여 년만 지나면 가장 소수인 가족 형태가 된다니, 낯섭니다.

낯섬은 대개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오는데,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몫이겠죠.

혼자 살아도 불편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체를 위해 '나'가 희생하는 건, 싫거든요. (네, 시대는 확실히 개인을 침투합니다.)

 

저자가 제안한 '새로운 개인주의' (단독인의 삶)은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과 개인의 네트워크를 필요로 합니다.

각자만의 공간과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고 네트워크가 있다 하더라도, 혼자 살 수 있는 심리적 힘(즉, 균형을 이루는 감각)은 각자가 길러야겠지요.

 

아, 앞으로 20여 년 후라....

 

 

  

 

 

읽은 날 2013. 12. 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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