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쓰여진 다큐 형식의 소설이라길래, 호기심이 팍 생겼습니다. 가물가물하지만, '김재규'라니....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것 같았어요. 

 

이 책은 김재규를 변호한 강신옥, 안동일 등이 34년간 간직한 자료와 기억, 기족의 증언, 그와 운명을 함께한 5명의 이야기, 김재홍 교수가 어렵게 입수한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 진술>, 그 외 방대한 자료에 기초해 쓰여졌다며 그 동안 출간된 김재규 관련 책과 차원이 다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 평전'이란 타이틀이 괜히 있는게 아니더군요. 자랑하던 객관성은 어디 가고, 곳곳이 편향적이라 불편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최측근에 있었던 김재규는 유신 헌법의 의미를 간파하고 유신의 심장을 쏘기로 결정합니다. 나름 치밀한 계획(?)으로 거사를 했으나, 거사 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12.12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실패한 혁명이 되버렸다네요.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내란을 일으킬 의도가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답니다. 김재규 덕분에 우리나라 민주화가 20년 이상 앞당겨졌으니, 김재규의 행동은 공동체의 정당방위 원리와 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선뜻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유신이 잘못인 것은 분명한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이 꼭 '살인'이어야 했나....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단하고 대단한 권력을 가진 박정희를 제거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실제로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이 거의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살인'이란 방법밖에 없었다면 어쩔 수 없을거 같은데, 김재규가 얼마나 '살인'외의 방법을 찾으려 했는지에 대해서는.....여백이 많습니다. 여백을 메꾸는 것은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박정희를 죽인 거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실행할 수 있었을까? 그는 박정희에 의해 희생될 수 있었던 많은 사람을 구한 거다' 라며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거사 후에 대한 준비가 치밀하지 않은 것이 살해란 행동의 순수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살해가 옳지 않지만 전후무후 기가 막힌 타이밍에다 다시 오지 않는 찰나의 기회라면...? 

정말 살해 외 방법이 없다면 목적을 위한 살인이 정당한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유신이란 광풍의 진원지에서 김재규를 둘러싼 여론, 재판 등 모든 행정적, 사법적 처리가 부당하고 졸속이었다 해도, 박정희가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해도...  목적을 위한 살인이 정당할 수 있을까.... 

절대권력자 박정희를 죽이는 일인데, 꼼꼼한 준비없이 무작정 일만 저지른(김재규가 제대로 했다면 12.12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아, 다른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군요!) 김재규는 차라리 무능력한 게 아닐까....   

최대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전두환이 권력을 잡은 것(하늘이 도와주지 않은 거라 볼 수 있는)과, 전두환 등장을 예상조차 못한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인데...말이죠. 

 

이 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초반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유신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끝장낸 김재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이런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 결국 한계 안에 갇힌 채 끝나버리더군요. 

유신체제가 끝나야 한다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가 제대로 풀어지지 않은채 급하게 봉합되버린 느낌입니다. 제대로 파헤치면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봐 겁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 란 사실 앞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책이 제대로 쓰여졌다는 자평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김재규가 '살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정황과 공감가는 진실된 이야기가 있던가, 김재규의 한계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비판하는 부분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군, 영웅, 의인, 평전...이란 단어가 무척 낯설고 불편하더군요. 

 

10.26 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2004년 5월 1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김재규에 대한 보상 심의 활동이 착수되었는데, 결정이 유보된 채 끝나버렸다는군요. 

이래저래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러한 일에, 이 책이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습니다. 

 

 

 

 

        

 

 

 

 

읽은 날 2013. 11. 26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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