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곤도 마코토 지음, 이근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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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2~3년 전부터 갑상선에 작은 혹이 있다고 하더니, 작년에는 의심스러우니 자세한 진단을 받아보라 하더군요. 하루가 갈수록 피곤해 그래볼까 싶다가도, 귀찮기도 하고, 다른 자각 증상도 없는데 설마 그러겠어 싶다가도, 설마 하다가 큰일 날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쑥날쑥이었습니다.
그러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이란 책을 읽고 검사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책은, 심하지 않은 통증이나 질환은 ‘내버려두면 낫는다’라는 생각으로 방치하고, 일상생활에 지장 줄 정도의 증상이 있는 경우에만 병원에 가보라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제 의사인데요, 의사가 되기 전과 후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답니다. 의사가 되기 전에는 의학에 대한 신뢰가 많았는데, 지금은 의학보다 자연치유력을 더 믿는다는군요.
이렇게 생각이 바뀐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의료행위로 사람을 구하는 수가 너무 적다.
2  암, 신장병, 간염의 경우 낫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도 낫지 않는다.
3. 약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심하고 오히려 목숨이 단축되는 경우가 많다.
4. 의학계 입장에서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찾는 사람만 진찰하다가는 환자 수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병을 찾아내고 치료함으로써 업계의 번영을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질병에 미리 대처해서 막는 의학이 아니라 ‘환자를 끌어들이는 의학’인 것이다.
5. 큰 병원일수록 실험적인 부분에 주력하도록 되어 있다.

이 뿐 아니라,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고혈압은,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뇌나 손발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잘 전달하기 위해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랍니다. 이것을 고혈압이라고 판정받아 약을 쓰면 수치는 개선되어도 심장에는 좋지 않다는군요. 그리고 당뇨인 경우에도 약을 먹는 것보다 운동으로 조절하라 권합니다.

어떤 증상에 대해 쉽게 약을 사용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증상만 개선할 뿐 본질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군요. 게다가 증상에 대한 기준치를 올리고 낮추는 것은 제약 업계의 이해와 깊게 연관될 뿐이라는 일침을 놓아요.

특히 “암이 발견되었지만 조기여서 수술로 깨끗이 잘라냈다. 덕분에 5년이 지난 지금도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난 정말 운이 좋았다!” 라며 안도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는데, 이 경우는 쓸데없는 수술로 손해본 것이랍니다.
이 문구를 보니 최근에 본 신문기사가 생각나더군요.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5/2014032502870.html

현재 우리나라의 갑상선암 환자는 인구 10만명당 81명인데, 이는 세계 평균의 10배가 넘는 수치라는군요. 실제 갑상선암의 95%는 진행속도가 느려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증상이 악화되지 않는 유두암·여포암(정상세포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암 종류)이며, 5년 동안 림프절에 전이되는 비율은 1.4%, 10년 동안은 3.4% 라니...
저자의 말이 실감납니다. 친정어머니도 6~7년 전에 갑상선암수술을 받으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괜한 수술이었던거 같아요.

병원의 의료행위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되지만, 과신하여 비합리적인 판단을 해서도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치료라는게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일거에요.
그래도 우리가 자세한 검사를 위해 받는 CT 피폭량이 일반 X선의 200~300배로 그 자체로 발암 사망성이 있다는 아이러니를 기억해야 할거 같습니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5/2014032502870.html

저자는 약의 부작용으로 많은 뇌장애나 사망 사건이 헤아릴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수치나 자료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저자의 의견을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져요.

치료를 받다가 비참하게 죽느니, 암을 방치하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바가 크고, 자연치유력을 믿어서 그럴까요?
이런 저와 달리 병원의존도가 큰 제 직장동료는 이 책을 읽더니, 너무 근거없는 주장같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더라구요.

병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스스로가 결정할 일입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처한 모든 이가 성급하게 결정하기보다 충분히 알아보고 도움되는 결정을 내리길 빌어 봅니다.

 

 

 

 

 

 

읽은 날  2013. 12. 2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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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VivaVivo (비바비보) 14
쿠로노 신이치 지음, 장은선 옮김 / 뜨인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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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어느 순간부터 '중학생'과 '사춘기'는 제 일상을 지배하는 키워드입니다. '중학생'이란 단어로 검색되는 책만 읽고 있는데요,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란 책은 제목만으로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어쩌다'는 의도치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도착해버린 좌표가 느껴졌고, '같은 걸'은 중학생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져 궁금했어요. 중학생이란 인식을 역할과 분리시킨 어감도 좋았습니다.
정말 어쩌다 중학생 역할 따위를 하게 됐는지, 해 본 소감이 어떠한지...궁금하더군요.

이 책은 스미레라는 중2 소녀의 성장기입니다.
훌륭하고 멋진 아빠가 그냥 맘에 안들고, 엄마의 상냥한 미소도 탐탁치 않아요. 학교는 어떤가요. 초등학생 때 '우리 친구하자~' 란 말만 하면 친구가 됐는데, 중학생은 친구맺기도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이 중학생보다 더 어른스럽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구요.
익숙했던 것이 낯설고 확실했던 게 불확실해진 사춘기 한복판에서,
스미레는 결국 한단계 성장을 합니다.
하, 이렇게 쓰니 매우 단순하네요.
사실, 성장기란게 다 그렇잖아요!

그럼에도 이 책에 상당히 주목하게 됐습니다.
커다란 줄기의 내용은 해피엔딩이지만, 주인공 입장에선 꼭 그렇지 않거든요. 소위 열린 결말인데, 이게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스미레가 겪는 에피소드는 중학생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었어요.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부모는 '공부'란 측면에서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 기대치를 잔뜩 올리기만 할 뿐, 아이 마음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아이는 6년 넘게 학생이었고, 지금도 학생이니까. 학생이란 입장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컸으니, 염려보다 바라는게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스미레의 마음을 가만가만 읽어가니, '공부'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더군요. 어른이 되고 싶은지, 되기 싫은지 몰라하는 마음, 다른 아이들과 엮이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 친구, 이성, 외모....이런 단어가 중학생 세계에 가득 차 있습니다. 어쩌면 친구, 외모, 이성이 공부보다 중요한 영역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는 이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공부’만 바라보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쾌, 발랄하고 재밌는 성장기는 고리타분한 교훈을 부담없이 받아들이게 합니다.
중2 소녀, 스미레의 말을 볼까요.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에 휘둘리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포자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노력해 봤자 소용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니까.
노력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2 때의 나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잘 안 될 때는 지나치게 고민하면 안 된다. 좋아하는 간식이나 따뜻한 차라도 들면서 푹풍이 지나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폭풍우는 금방 지나갈 테니까, 절대로 리스크 컷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인상깊게 읽어서, 제 아이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했습니다. 처음으로 읽어보라고 책을 건넸는데 엄마가 읽으라니 무조건 싫어할지, 읽었는데 재미없다고 할까봐 걱정되더군요.
‘엄마가 읽어보라고 해서 억지로 읽었는데, 정~말 재미없쟎아! 앞으로 다신 읽지 않을거야!’
하면 안되니까요.

휴우.
다행히 아이 기호에도 맞았나 봅니다.
예전에는 억지로(?) 읽었는데, 재미있어서 읽게 된다는 소리도 하고, 엄마의 추천력을 믿어보겠다는 흐뭇한 말을 합니다.

제목에만 이끌려 읽어보게 됐는데, 참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1.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쿠로노 신이치

2. <10대들의 시계는엄마의 시계보다 느리다> 손동우

3.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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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 - 30년 현장 교사가 전하는, 부모가 알아야 할 중학생의 모든 것
박미자 지음 / 들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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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고 싶어하는 글로 세상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의치 않아 소소한 기록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제가 부모라는 사실을 너무 잊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지나고 나면 소중할 아이의 사춘기를 맞이하여,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는 잊고 있었던 10여년 전 초보 부모의 마음을 일깨워 줬습니다.

10여년 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글자로만 알던 생명과 탄생의 신비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으로 '놀랍고도 새롭게' 인식되었습니다. 뒤집고, 기고, 걷는...아주 단순한 변화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매 순간이 특별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아이가 클수록 성장에 익숙해졌고, 둔감해졌습니다.

급기야 아이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가 놀아줘야만 하는, 귀찮을수도 있는 존재가 됐습니다. 엄마가 아닌 '나'를 찾으면 찾을수록 아이는 내 시간과 여력을 소진시키는 존재로 느껴졌어요.

이렇다 보니 이 책에서 말하는 '중학생 성장'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사춘기 아이는 생애 마지막 큰 성장기를 겪고 있는, 아이조차도 어려운 시기라 합니다. 

아기였을 때는 그저 먹고 자는 기초적인 생존과 누군가와 '애착'을 맺으면 됐지만, 사춘기 아이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어렸을 때처럼 '사랑 받는 존재'에 대한 욕구는 여전하지만, 아이는 예전의 아기가 아닙니다. 아기 때 받았던 사랑의 표현으로 채울 수 없는 커다란 영역이 그새 자란 것이죠. 게다가 아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답까지 찾아야 하니...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아이의 사춘기를 어려운 시기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시기로 받아들일 것이냐....는 설득이 매우 강하게 읽혀졌습니다.

또한,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아이와 쌓아왔던 관계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13년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부모 - 자식 관계를 사회적 반경으로 넓혀야 한다는 말은 부모 - 자식의 공동 성장이란 다른 표현이라 여겨지더군요.

아이는 한층 성장하려하고, 해야만 하는데 부모가 아기였을 때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와 가정을 넘어 성장한다면 아이도 자연스레 그럴테고, 부모가 성장한 만큼 관계의 완충지대가 생겨 충돌도 줄어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하루가 갈수록 낯설어지는 아이 행동이 당황스럽다면, 이 책이 도움될 거 같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시각으로 아이를 대한다면, 내 태도를 변화시켜 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위기는 기회, 사춘기도 그러할 거라 여겨집니다.

1. <10대들의 시계는 엄마의 시계보다 느리다> 손동우

2. <99% 학부모가 헛고생하고 있다> 최영석

3. <대치동 엄마들의 입학사정관제 전략 김은실

4.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강금주

5. <수학사용설명서> 조안호

6. <중학 영어 내신 1등급의 비밀> 강순애

7.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 박미자

8. <진로교육, 아이의 미래를 멘토링하다> 조진표

9. <쫄지마, 중학생> 윤문원

10. <첫아이가 중학교에 갑니다> 엠베스트

11. <초등수학 개념사전 62> 조안호

12.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조벽

13.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쿠로노 신이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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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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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워낙 히트친 책이라 읽어보려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뻔한 책에서도 배움의 문장을 발견하는 이웃의 능력을 보고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명언 가득한 책에서 문장을 건져내 자신을 되돌아 보려는 야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였어요.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그닥 없었습니다. 대신, 이런 책이 엄청 잘 팔릴만큼 우리 사회가 지쳐 있구나, 이런 짧은 메시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를 느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별로였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012년부터 어마어마하게 읽힌 책입니다. 하여 의문이 생기더군요. 

왜 나는 이 책이 별로일까.....? 

이 책에 나오는대로 지혜롭지 못한 것일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나는 그 정도는 안다'에서 시작하니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이 없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더 큰 지혜가 쌓인다죠. 

이 문장을 보며... 며칠을 생각했습니다. 

수긍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반성을 잠깐 했다가, 꼭 그건 아닌거 같고... 결국 인정해야 하는게 아닌가...자꾸 궁지에 몰려, 이렇게 결론을 내버렸습니다.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 하자고. 

 

이 책은 혜민스님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모은 거라 글의 호흡이 짧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사람이 혜민스님의 글에서 위로와 응원을 발견했고 그것이 폭발적인 호응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짧은 글과 명언보다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 저러한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으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발견'했는지 듣는게 더 좋습니다. 그런 글이 더 진정성있게 느껴집니다. 

 

작년, 혜민스님이 TV 예능프로에 나온걸 본 적이 있어요. 

생각지 않게 시쳇말로 '대박' 친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안티도 제법 있었나 봅니다. 위로와 힐링만 얘기한다고 사회가 달라지냐, 어처구니없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더 중요한게 아니냐며 공격하는 무리에 적쟎이 놀라고 상처받았나 보더라구요. TV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봤는데...무언가 모를 아쉬움 한가닥을 느꼈습니다. 

안타까워 해야 했는데, 아쉬움을 느꼈다.... 또 반복되는군요.
(혜민스님의 상처가 작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상처와 공격에도 좀 더 흔들림없이 굳건하고 포용력 넓은...스님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어요)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 유명세와 개인적 감상의 괴리를 현격히 느끼게 해줬습니다. 괴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란 숙제를 받았지만, 낙제점이네요. 

그저,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우리를 다시 한번 발견한 것에 의미를 둡니다. 

그래도 나아지기를, 또 소원해 봅니다.           

 

 

 

 

 

 

읽은 날 2013. 12. 2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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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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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사는 세상에서, 어느날 누군가가 다같이 잘 사는 공동체를 꿈꾸며 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난한 사람, 힘이 약한 사람,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신이 누구든지간에 굳이 알 필요없고) 바람결에 떠다니는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자연스럽게 모입니다. 사람이 모일수록 공동체는 힘이 커져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됩니다.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되자, 초기 지도자들이 가졌던 순수한 이상과 열정은 사라지고 탐욕이 자리를 꿰차게 되지요. 

그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초기 지도자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 누구에게 정통성이 있나....누가 공동체의 이상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는가 혹은 지킬 수 있나.... 여러가지를 둘러싼 내분이 끊이지 않습니다. 

끊이지 않는 내분에도 그들의 위대한 공동체 이상은 그럭저럭 유지되어 고유한 내러티브는 문제와 희망 사이에서 공전합니다. 그러기를 천여 년, 어느날 부터인가 소리없이 침투하는 외부세력에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누가 옳은지 그른지 내팽개치고 외부세력을 따라하려는 무리가 생기고, 한편에선 오랜 세월 이어온 이상과 순수를 되찾고 싶어합니다. 누구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며 현실을 깔끔하게 재단하고 싶어하구요. 

한때 드넓은 평원을 평정했는데 갑자기 인식된 현실이 초라하고, 그래도 나의 기개는 여전히 굳고 곧다면....어떨까요.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라진 것에 대한 담뿍한 애정의 시선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만(오스만 제국이 연상됩니다)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가득한 열정에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납니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여정 끝에 '책'을 필사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메흐메트를 죽여요. 메흐메트는 죽었으나, 문제의 '책'을 베끼면서 영원한 시간의 균형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정지한 시간 속에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알듯 모를듯한 표현이 나옵니다. 

 

메흐메트와 달리 '책'과 전쟁을 벌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책'이 외국 문명과 서구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물이기 때문에 대항해야 한다며 조직적으로 맞섭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책을 누가 썼나면, 기가 막힙니다. 

철도 잡지에 글을 쓰는 광신적인 철도원 늙은이가 자신이 썼던 어린이용 만화책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에요! 어처구니 없이 단순한 의도로 쓰여진 이 책을 보고 어떤 젊은이들은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믿고 인생의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죠. 

이런 상황을 보고 누구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세계를 원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저자를 죽였던 거야."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새로운 인생을 글 밖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어.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망친 거야." 

 

그렇다면 이 '책'의 존재는 무엇이며, '새로운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요....?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이 소설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인데요, 이 소설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랍니다. 터키에선 단지 '재미'를 위해 책 읽는 것을 사치라 생각한대요. 

가장 많이 팔렸다는 말이 수긍갈만큼 <새로운 인생>은 충분히 난해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는 터키 근대사 중 가장 다이나믹한 시대입니다. 오래된 이슬람 문화권을 유지하다 근대에 들어서 두 문화 사이에 낀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게다가 터키는 마지막 술탄(이슬람 세계의 공동 지배자)을 폐위시켰고, 공식적으로 정치와 종교를 최초로 분리한 무슬림 다수인의 나라입니다. 

소설과 인생을 동일시하는 파묵답게 이 작품에선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로 터키 사회의 주요 문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터키 역사를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오래된 그들의 역사를 몰랐다면....정말 읽기 힘든 책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파묵은 새로운 인생을 '비유할 데 없는 순간(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며, '서양 문명이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장난감'으로 자신이 말하려는 것은 오직 이 세계가 잔인한 곳이라는 겁니다. 

글쎄요. 

독자인 제가 보기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요. 

'새로운 인생'은 어쩔수 없이 맞닥뜨린 외부 문명과 조화를 이뤄가고픈, 이뤄가야만 하는 그들 문화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한 것은, 시대 변화에 맞게 사라져야만 하는 일부 고유한 터키 문화의 운명이며, 자신도 모르게 전파된(이 소설에서 '책'이 우연히 쓰여졌고, 의도치 않게 전파된 것처럼) 외부문명과의 조화로 새롭게 만들어야 할 터키의 미래가 '새로운 인생'이 아닐까 싶네요. 

 

소설이 난해해 보이지만, 파묵의 말대로 내용은 새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기 드문 정체성을 갖고 있는 터키를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상하고 야릇한 힘이 소설을 꽉 잡고 있어요. 알듯 모를 듯....매력적이고, 오랜 역사만큼 묵직한 뭔가로 꽉 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패배했지. 서양은 우리를 삼켰어. 짓밟고 지나갔지. 그러나 어느 날, 천년 후의 어느 날, 반드시 이 음모를 끝장내고, 우리의 수프, 검, 영혼 속에서 그들을 몰아냄으로써 복수를 하고 말거야." 

 

이러한 복수의 다짐은 곧 죽음으로 가득찬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오르한 파묵은 말하지만.... 그는 분명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거라 여겨집니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자난이란 여인의 소식이 소설 마지막에 등장해요. 

그녀의 남편은 메흐메트나 오스만과 달리 '그 책'을 읽고도 건강한 방법으로 책을 소화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자난과 그녀의 남편...에서 오르한 파묵의 희망을 읽습니다. 

 

한때 드넓은 평원을 평정했으나 

지금의 현실이 초라하더라도 

여전히 굳고 곧은 기개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모두 찾아가길 

소원합니다. 

오스만(터키)도 그러하겠지요. 

 

           

 

 

 

읽은 날  2013. 10. 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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