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사는 세상에서, 어느날 누군가가 다같이 잘 사는 공동체를 꿈꾸며 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난한 사람, 힘이 약한 사람,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신이 누구든지간에 굳이 알 필요없고) 바람결에 떠다니는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자연스럽게 모입니다. 사람이 모일수록 공동체는 힘이 커져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됩니다.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되자, 초기 지도자들이 가졌던 순수한 이상과 열정은 사라지고 탐욕이 자리를 꿰차게 되지요. 

그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초기 지도자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 누구에게 정통성이 있나....누가 공동체의 이상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는가 혹은 지킬 수 있나.... 여러가지를 둘러싼 내분이 끊이지 않습니다. 

끊이지 않는 내분에도 그들의 위대한 공동체 이상은 그럭저럭 유지되어 고유한 내러티브는 문제와 희망 사이에서 공전합니다. 그러기를 천여 년, 어느날 부터인가 소리없이 침투하는 외부세력에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누가 옳은지 그른지 내팽개치고 외부세력을 따라하려는 무리가 생기고, 한편에선 오랜 세월 이어온 이상과 순수를 되찾고 싶어합니다. 누구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며 현실을 깔끔하게 재단하고 싶어하구요. 

한때 드넓은 평원을 평정했는데 갑자기 인식된 현실이 초라하고, 그래도 나의 기개는 여전히 굳고 곧다면....어떨까요.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라진 것에 대한 담뿍한 애정의 시선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만(오스만 제국이 연상됩니다)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가득한 열정에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납니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여정 끝에 '책'을 필사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메흐메트를 죽여요. 메흐메트는 죽었으나, 문제의 '책'을 베끼면서 영원한 시간의 균형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정지한 시간 속에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알듯 모를듯한 표현이 나옵니다. 

 

메흐메트와 달리 '책'과 전쟁을 벌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책'이 외국 문명과 서구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물이기 때문에 대항해야 한다며 조직적으로 맞섭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책을 누가 썼나면, 기가 막힙니다. 

철도 잡지에 글을 쓰는 광신적인 철도원 늙은이가 자신이 썼던 어린이용 만화책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에요! 어처구니 없이 단순한 의도로 쓰여진 이 책을 보고 어떤 젊은이들은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믿고 인생의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죠. 

이런 상황을 보고 누구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세계를 원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저자를 죽였던 거야."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새로운 인생을 글 밖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어.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망친 거야." 

 

그렇다면 이 '책'의 존재는 무엇이며, '새로운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요....?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이 소설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인데요, 이 소설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랍니다. 터키에선 단지 '재미'를 위해 책 읽는 것을 사치라 생각한대요. 

가장 많이 팔렸다는 말이 수긍갈만큼 <새로운 인생>은 충분히 난해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는 터키 근대사 중 가장 다이나믹한 시대입니다. 오래된 이슬람 문화권을 유지하다 근대에 들어서 두 문화 사이에 낀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게다가 터키는 마지막 술탄(이슬람 세계의 공동 지배자)을 폐위시켰고, 공식적으로 정치와 종교를 최초로 분리한 무슬림 다수인의 나라입니다. 

소설과 인생을 동일시하는 파묵답게 이 작품에선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로 터키 사회의 주요 문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터키 역사를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오래된 그들의 역사를 몰랐다면....정말 읽기 힘든 책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파묵은 새로운 인생을 '비유할 데 없는 순간(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며, '서양 문명이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장난감'으로 자신이 말하려는 것은 오직 이 세계가 잔인한 곳이라는 겁니다. 

글쎄요. 

독자인 제가 보기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요. 

'새로운 인생'은 어쩔수 없이 맞닥뜨린 외부 문명과 조화를 이뤄가고픈, 이뤄가야만 하는 그들 문화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한 것은, 시대 변화에 맞게 사라져야만 하는 일부 고유한 터키 문화의 운명이며, 자신도 모르게 전파된(이 소설에서 '책'이 우연히 쓰여졌고, 의도치 않게 전파된 것처럼) 외부문명과의 조화로 새롭게 만들어야 할 터키의 미래가 '새로운 인생'이 아닐까 싶네요. 

 

소설이 난해해 보이지만, 파묵의 말대로 내용은 새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기 드문 정체성을 갖고 있는 터키를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상하고 야릇한 힘이 소설을 꽉 잡고 있어요. 알듯 모를 듯....매력적이고, 오랜 역사만큼 묵직한 뭔가로 꽉 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패배했지. 서양은 우리를 삼켰어. 짓밟고 지나갔지. 그러나 어느 날, 천년 후의 어느 날, 반드시 이 음모를 끝장내고, 우리의 수프, 검, 영혼 속에서 그들을 몰아냄으로써 복수를 하고 말거야." 

 

이러한 복수의 다짐은 곧 죽음으로 가득찬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오르한 파묵은 말하지만.... 그는 분명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거라 여겨집니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자난이란 여인의 소식이 소설 마지막에 등장해요. 

그녀의 남편은 메흐메트나 오스만과 달리 '그 책'을 읽고도 건강한 방법으로 책을 소화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자난과 그녀의 남편...에서 오르한 파묵의 희망을 읽습니다. 

 

한때 드넓은 평원을 평정했으나 

지금의 현실이 초라하더라도 

여전히 굳고 곧은 기개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모두 찾아가길 

소원합니다. 

오스만(터키)도 그러하겠지요. 

 

           

 

 

 

읽은 날  2013. 10. 9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