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 적, 있을 것이다. 잠자는 아이의 얼굴, 한 잎씩 떨어지는 낙엽, 만개를
준비하는 꽃봉오리, 일출 혹은 일몰....이 아니어도 바라본 적, 있었던가....한참 생각해봐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스마트폰,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거대흐름을 휩쓸기 전
눈과 귀는 퇴근길 창밖을 향했다. 오래된 습관으로 애용한 버스창 밖,거리풍경의 변화를 느끼기도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버스에 올라서도 언제 어디서나 눈과 귀는 스마트폰을
향해 있다.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잠자는 아기의 고운 얼굴이나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 좋아하는 벗의 모습이나 망망한 바다의 아득한 수평선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거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우리
내면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시에 그 대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자란다."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이란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그림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커간다.
그러고보니, 아무 생각없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적이 언제던가! 언제고 나는 그림을 알고자
하기만 했다. 최근 미술관行은 아이들 교육적 차원에서 간 것이었기에 눈과 마음보다는 입이
바빴다. 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또한 옛그림을 느끼기보다 '알고자'해 선택한 것이니.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수묵화의 매력이다. 옛사람들이 점차 눈에 보이는 형태와 색채에 대한 집착
을 놓고 채색화의 숲을 지나 원숙기에 이르러서야 '수묵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채색, 모든
유채색이 색을 잃음으로써 남겨지는 색이니 이렇듯 모든 색은 언젠가 바래고 없어진다는 관념
또한 전형적인 동양적 사고의 하나다.
이러한 수묵화의 감상, 녹록하지 않은 일이나 저자 오주석의 설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
들고 만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그냥 봤을 때와 설명을 듣고 난 후의 감상은 사뭇 다르다.
"사람이 한세상 태어나 명예와 이득에 골몰해서 분주히 힘쓰다 지쳤어도 늙어 죽도록 그치지
않는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함인가? 비록 벼슬을 떠나 속세의 때를 벗어버리고 아주 자연 속에서
지낼 수는 없다고 해도, 공무를 마친 겨를에나마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그윽한 연꼿향 속에서
...옷깃을 열어 오가면서 시를 읊고 배회할 것이니, 몸은 비록 명리의 굴레에 매였어도 정신만은
족히 물질의 바깥에 노닐어 마음의 회포를 펼 수 있으리라." (강희안의 글 중)
처음엔 그냥 그랬을 뿐인데, 강희안의 글을 보니 그가 그림에 있었다. 공무를 마친 뒤 바위에
기대어 바람이 수면을 가볍게 건드리는 풍경 속에서 유유자적한 선비, 그가 강희안이었다.
이렇듯 우리 옛분들은 '예술작품은 곧 작가 그 사람' 이라는 명제에 조그마한 의심도 두지 않았다.
작가의 정신, 한 인격체의 독특한 빛깔로 물들여진 것이기에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분의 그리운
옛 조상과 만날 수 있다.
이인상의 <설송도>
아직 안목이 미천하여 이 그림의 진가를 모르지만, 이 그림은 '담박함'이 추구한 경지를 잘 드러
내고 있다한다.
담박함은 진하고 자극적이며 무언가 교묘한 효과를 보려는 생각의 반대 개념이다. 이인상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담담한 의취를 화면 위에 은은하게 띄워본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난 그만 와락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설송도>의 담담한 의취를 알아볼 안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저자의 설명에만 만족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옛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 당시 작가의 세계와 인격이 고스란이 배여 있다. 수묵의
농담과 여백의 미로 표현된 옛 그림 속 자연은 그저 객관적 사물, 관찰 대상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성품이나 덕성과 연관해 새롭게 해석된다.
한 작품안에 아래에서 위로, 엇비슷한 높이에서, 높은 곳에서 위로 조망한 시각을 모두 담고 있어
카메라 사진과 견줄수 없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임금이 어려워해도 옳은 일이라면 힘써 행하도록 질책'하기 위한 올곧은 선비의 정신,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추사 김정희와 변치 않는 제자의 고맙고도 애틋한 이야기가 담긴 <세한도>는 또 어떠한가.
수묵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또 다양한 인생
의 체험을 겪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 한다. 또한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하니.
비록 풍부한 인생의 경험이 적어도, 오랫동안 수묵화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주말, 아이들 체험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봄의 소리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퇴근길, 스마트폰에서 해방되어 버스 창 밖이라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순수한 마음과 관심, 여유, 사랑이 소록소록 생기...리라.
읽은 날 2012. 4. 18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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