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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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내가 짜증으로 응수했다.

   '말썽이 질색이라고!' 조르바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

 

말썽이 생기는 건 딱 질색인 사람과 산다는 게 곧 말썽이라고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

그래, 조르바는 '삶의 신비'를 즐기는 자다.

 

그의 삶의 신비 - 자유를 한번 보자.

"하지만 나는 도둑질도 해봤고 사람도 죽여 봤고 거짓말도 해봤고 계집질도 무더기로 데리고

자 본 사람. 계명이라는 계명은 깡그리 어긴 인간이랍니다.  계명이 몇 개더라? 10개? 20개?

40개, 100개? 백 개가 되어 봐야 내가 다 깨뜨렸을걸!"

 

실존인물 이야기인, 나름 유명한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2009년에 처음 읽었다.

그냥 그랬다. 왜 유명할까.

 

조르바, 그는 그리스인이랜다. 아마도 그리스, 라는 점이 중요한 거 같다. <프라하의 소녀시대>

의 리차가 그리워한 '깨질만큼 푸른 하늘'을 가진 그리스는 견딜 수 없는 햇살이 가득하다.

어쩔 수 없게 만드는 화창한 날씨의 연속, 그러다보니 그곳 사람들은 아등바등할 일이 적었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생을 바칠 필요 없는, 먹고 즐기기 위한 삶, 바로 지중해 사람들이다.

그런 환경이 조르바를 만든 게 아닐까.

 

깨질듯 푸른 하늘과 풍부한 먹을 거리, 조르바는 팔짱 끼지 않고 인생의 강물에 풍덩 뛰어들어

삶을 즐겼다.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다.    그러니

소위 우리네의 '신비'따위인  펜대를 운전할 시간이 없었노라 말한다.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그러면서 말한다.

"펜대를 운전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조르바가 '두목'이라 부르는 자에 내 모습이 투영된다.

말썽을 질색하고 펜대를 굴리느라 인생을 '살아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그리고 종내에는 조르바의 마음이 되기를 갈망한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마

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지입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

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나는 이렇게 생각합

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 자 속에도 하느님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환경이 바뀌면 달라질까?

그리스의 쨍한 햇살도 어린시절을 지중해로 옮기는 것도 모두 어렵다.

내, 가 변해야 하지!

가능, 할까?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

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에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

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배우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아는 조르바가, 처음 만났을 때 그냥 그랬던 그가 말한다.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묶은 줄을 더 붙잡아 맬 지도 모른다고.

오우, 직관적으로 아는 그의 말, 이다.

오우, 어떻게 해야 하나!

 

 

읽은 날  2009.12.1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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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법 - 성공으로 이끄는 책읽기의 즐거움
최진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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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법, 최진>

 

책을 읽는데에도 '법'이 필요...하겠지만, 그 동안 외면해 왔다.

어휴, 취미는 취미일 뿐인데 어휴, 머리 아파. 그것 말고도 내가 알아야 할 '법'이 너무 많다구.

그러다  이 책 <대통령의 독서법>을 펼친 건,  책 읽고  밑줄 긋고  정리하고  독후감을 쓰면서

세삼 놀랐기 때문이다. 취미는 취미라지만, 밑줄에서 독후감까지 그 놀라운 위력에 절로 관심

이 생겼다.

 

우선 제목이 확 당긴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대통령, 그들만의 독서법이라니!

잔뜩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펼쳤지만...

 

"우리나라 대통령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다섯 가지 심리 요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초반부터 급 실망이다. 대통령 전체 수도 얼마 안되는데 그 중에서 발견했다는 다섯 가지 심리

요인, 내가 보기엔 섣부른 일반화다.

"우리나라 대통령만큼  다사다난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도 없다."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쉽게도 링컨이 겪었던 극심한 우울증마저 영향을 받았는지..." 처럼 본인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어설픈 근거를 대고 있어 불편했다.

 

저자의 경력을 보니, '대통령 리더십연구소 소장,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등' 화려하다.

차라리 본인이 대통령 리더십 분야 전문가라 솔직히 말했다면, 좋은 장면만 잘 편집한 상업영화

느낌이 덜 했을까?

사람을 매혹시키는 제목,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을 한 가지 주제로  잘 엮은 솜씨 덕에 매끈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게 전부인 느낌 말이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은 어렸을 때부터 필요한 책만 골라 읽는 이른바 실용 독서법을 실천했다. 찢어지게 가난

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이상이나 꿈처럼 추상적인 가치보다 빵이나 밥과 같은 구체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 부분을 보니,  내가 읽은 책은 나의 어떤 이력을 말해주고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책 리스트가 어떤 이력을 말해주고 있을까...설핏 얼핏 잡힐듯한 이력...환하게 드러날

까봐 얼른 다음 문장을 잡는다.

이명박, 우리 예상대로 비즈니스 마인드로 속독을 해왔다.   그에게 인문학적 혹은 철학의 독서가

부족한데, 이러한 독서 바탕 위에 펼친 행정은 우리에게 매우 아주 엄청 심각한 폐해를 주고 있다.

인문학과 철학에 통달해 있어도 행정은 별개의 문제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민 없는 행정은

문제가 크다. 실용독서만 하는 자는 꼭 참고를 해야할 거 같다.

그는 퇴임 후 어떤 책을 읽을까? 행여나 인문과 문학책을 읽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을까?

돌아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 시절, "無來無去赤無住 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듯이 머물 곳 역시 없다' 라는 뜻으로 권력과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 했다지만,  글쎄...공감하기

어렵다.

 

노태우 대통령, 저자의 말이다.

"노태우는 어릴 때부터 친척집에서 눈치를 살피며 밥을 먹고, 책을 읽는 데 이골이 났다. 어찌 보면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훗날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리저리 살피며 돌다리도

몇 번씩 두들기며 건너가는 우유부단함을 보인 요인도 지난 시절의 눈칫밥 생활에서 비롯되었으리

라. 눈칫밥 독서가 노태우로 하여금 신중한 처세술을 길러주었고 최고 권좌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눈칫밥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음...눈에 거슬린다. 눈칫밥 독서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어이없다.

 

가장 거슬렸던 부분은 이승만 대통령 편이다.

"이승만은 김대중보다 독서하기에 훨씬 더 불리한 여건 속에 놓여 있었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열정

적으로 책과 더불어 생활했다."

 

이 책이 가진 한계다. 평생 책을 읽었지만 대통령이라는 큰 자리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얘기

가 없다. 물론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독서로 개인 삶만

풍요롭기만 하면 무엇한가. 사회적 역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대통령'이라는 크고 

중요한 자리에서 말이다.

갈수록 관계의 미학이 중요해지는 싯점에  독서가 개인적 삶에만  도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다독, 정독, 숙독, 속독, 난독의 장단점을 알고  내게 부족하거나 참고로 할 것을 챙겨

했는데, 이 책이 마케팅에 숨은 상술로만 읽혀져 자꾸, 계속 삐딱하게 봤다.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 가택연금 상태에서 매일 양복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고 안방 → 응접실 →

서재 → 안방으로 이어지는 단순 일과를 되풀이한 자세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역시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얘기는 삐딱하기만 한 시선이 절로 무장해제 된다.

 

이 책은  매끈하게 잘 빠진 쇼윈도 상품,  소박한 멋보다 번,쩍! 이는  애나멜 구두,  제법 홍보비를

들인 한 철 상업영화다.

마지막 독서법 10계명, 옳은 말이지만 하릴없이 영화관 바닥에 쌓이는 전단지 같,다.

 

읽은 날   2012. 1. 3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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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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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국사가 세계사가 그닥 재미있지 않았던 건 변하지 않는 과거

사실만 나열해 배웠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과거의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지

못했기에 그저 암기과목으로 받아들였던 거 같다.   때로는 국가가 가르치고 싶어하는 사실만

배웠기에 주체적 역사관을 갖기도 어려웠을 테고.

 

학교 밖, 책을 통해 만나는 역사는 역사가에 따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기에 읽을수록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이 책 <밖에서 본 한국사>는 역사 에세이란 부제로 '밖에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가보다

'민족'차원에서 서술했다는데, 솔직히 그 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

고 있는 우리의 화이부동 和而不同 전통은 매우 인상깊었다.

 

그가 말하는 한민족은   '한반도에 농업국가를 이루고 살아오면서 형성된 민족' 이다.    원류는

만주의 선진문명을  수백 년 시차를 두고  받아들이는  후진지역으로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만주와 한반도에  알타이어계 언어를 가진  수많은 종족집단 중  대부분은   중국문명에 흡수된

반면, 한민족은 궁극적 정체성을 지켜왔는데  그 정체성의 바탕이  바로 화이부동이라 한다.

즉,  중국문명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또한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던 것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라 한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고구려.  학교에서 배운대로  고구려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  통일신라로 이어지는

흐름에 있는 우리의 고대국가로 다른 나라가 설 틈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를 계승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란다.  신라는 당시 제 코가 석자였기에  고구려의

작은 영토와 백성의 일부만 넘겨받았던 반면,  중국 (당시 당나라)은 고구려의 핵심요소를 계승

받았다.  그러나, 신라는 작게 계승받은 고구려를  반도국가 (고려)로  크게 발전시켰고,    크게

계승받은 만주지역은 뒤쳐져 야만의 땅으로 전락했다.

 

그 후 고려시대.   몽골이 유라시아를 휩쓸던 때   고려처럼 작은 나라가 30년 동안이나 버티고,

그 후 100 여년 간 몽골 지배를 받았지만,   한편으로 문명수준을 높여  적응력  강한  정체성을

만든 기회로 삼은 것 역시 화이부동의 전통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조선 건국자들이 문명수준이 높은 중국과의 관계를 풀기 위한 답으로 '사대'를 내놓았다. 이는

힘에 눌려 억지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천하질서에 능동적으로 공헌한다는 명분으로 약자

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강자는 약자의 태도가 일시적 득실에 따라 바뀌지 않으리라 신뢰할

수 있는 길이었다.

우리가 하대했던 '사대주의'는  19세기 말 일본이 조선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청나라와의 관계

까지 폄하하려는 그네들의 나쁜 관념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동화를 열심히 한 우리는  독립국으로 남아 있지만  거부한 지역들은  정복당했는데,

이런 모순된 상황이 바로 '화이부동'의 원리 탓이다.

중국문명에  동화되지  않은  곳은 '정복'의  대상이었고, 동화수준이  높은 곳은 안정된 관계를

자발적으로 추구해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동화란 단어는 불편하다.  우리가  가장 높은  문명국이  아니었다는 세삼스런 자각,  단지

살기 위해 같아지려 노력했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대신  동화란  단어를 '변화'로  치환하면

훨씬 수용이 쉬울 것 같다.

거대흐름의 변화를 외면한 채  자신의 고고함만을 지키려 하면  부러지거나 꺽히기 쉽다.  변화

흐름 속에 자신의 것을 추구해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이  어느날 갑자기  해방을 맞아,  그동안  부끄러움의  대상 속에  같이 묶여

있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전통을 찾아야 할 때다.

새로운  흐름이  겹쳐지고 있다.  시장  만능의  경제통합이  대다수  인류에게  바람직한 상황을

가져다 줄 것인지  의심되는 거대한 변화 속에  매몰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우리의 정체성 -

화이부동을 찾아야 할 때다.

남을 깔보지  않으면서도  우리 뿌리에서  아낄만한 미덕을 찾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떳떳함을 잃지 않는 '교양'의 정신, 서로간의 경쟁보다 '협력'을 해간다면 온전히 찾아지리라.

 

신영복 선생님의 작품

 

읽은 날  2011. 11. 3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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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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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 적, 있을 것이다.  잠자는 아이의 얼굴, 한 잎씩 떨어지는 낙엽, 만개를

준비하는 꽃봉오리, 일출 혹은 일몰....이 아니어도 바라본 적, 있었던가....한참 생각해봐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스마트폰,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거대흐름을 휩쓸기 전

눈과 귀는 퇴근길 창밖을 향했다. 오래된 습관으로 애용한 버스창 밖,거리풍경의 변화를 느끼기도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버스에 올라서도 언제 어디서나 눈과 귀는 스마트폰을

향해 있다.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잠자는  아기의  고운 얼굴이나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  좋아하는 벗의 모습이나  망망한 바다의 아득한 수평선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거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우리

 내면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시에 그 대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자란다."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이란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그림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커간다.

그러고보니, 아무 생각없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적이 언제던가! 언제고 나는 그림을 알고자

하기만 했다.   최근 미술관行은   아이들 교육적 차원에서  간 것이었기에   눈과 마음보다는  입이

바빴다. 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또한 옛그림을 느끼기보다 '알고자'해 선택한 것이니.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수묵화의 매력이다.  옛사람들이 점차 눈에 보이는 형태와  색채에 대한 집착

을 놓고   채색화의 숲을 지나   원숙기에 이르러서야  '수묵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채색,  모든

유채색이 색을 잃음으로써  남겨지는 색이니   이렇듯 모든 색은  언젠가 바래고  없어진다는 관념

또한 전형적인 동양적 사고의 하나다.

이러한 수묵화의 감상,  녹록하지 않은 일이나  저자 오주석의 설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

들고 만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그냥 봤을 때와 설명을 듣고 난 후의 감상은 사뭇 다르다.

 

 

 

 

"사람이 한세상 태어나   명예와 이득에 골몰해서   분주히 힘쓰다 지쳤어도   늙어 죽도록 그치지

 않는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함인가?    비록 벼슬을 떠나 속세의 때를 벗어버리고 아주 자연 속에서

 지낼 수는 없다고 해도,   공무를 마친 겨를에나마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그윽한 연꼿향 속에서

 ...옷깃을 열어 오가면서 시를 읊고 배회할 것이니,  몸은 비록 명리의 굴레에 매였어도 정신만은

 족히 물질의 바깥에 노닐어 마음의 회포를 펼 수 있으리라." (강희안의 글 중)

 

처음엔  그냥  그랬을  뿐인데,  강희안의  글을 보니  그가 그림에 있었다.  공무를 마친 뒤 바위에

기대어 바람이 수면을 가볍게 건드리는 풍경 속에서 유유자적한 선비, 그가 강희안이었다.

이렇듯 우리 옛분들은 '예술작품은 곧 작가 그 사람' 이라는 명제에 조그마한 의심도 두지 않았다.

작가의 정신,  한 인격체의 독특한 빛깔로 물들여진 것이기에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분의 그리운

옛 조상과 만날 수 있다.

 

 이인상의 <설송도>

 

아직 안목이 미천하여  이 그림의 진가를 모르지만,  이 그림은 '담박함'이 추구한 경지를 잘 드러

내고 있다한다.

담박함은  진하고  자극적이며  무언가 교묘한  효과를 보려는  생각의 반대 개념이다.   이인상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담담한 의취를 화면 위에 은은하게 띄워본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난 그만 와락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설송도>의 담담한 의취를 알아볼 안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저자의 설명에만 만족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옛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 당시 작가의 세계와 인격이 고스란이 배여 있다. 수묵의

농담과 여백의 미로 표현된 옛 그림 속 자연은 그저 객관적 사물, 관찰 대상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성품이나 덕성과 연관해 새롭게 해석된다.

한 작품안에 아래에서 위로, 엇비슷한 높이에서, 높은 곳에서 위로 조망한 시각을  모두 담고 있어

카메라 사진과 견줄수 없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임금이 어려워해도 옳은 일이라면 힘써 행하도록 질책'하기 위한 올곧은 선비의 정신,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추사 김정희와 변치 않는 제자의 고맙고도 애틋한 이야기가 담긴 <세한도>는 또 어떠한가.

 

수묵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또 다양한 인생

의 체험을 겪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 한다.   또한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하니.

 

비록 풍부한 인생의 경험이 적어도, 오랫동안 수묵화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주말, 아이들 체험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봄의 소리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퇴근길, 스마트폰에서 해방되어 버스 창 밖이라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순수한 마음과 관심, 여유, 사랑이 소록소록 생기...리라.

 

 

 

읽은 날  2012. 4. 1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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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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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말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해 간다.

 

 나는 얼굴엔 온통 파란 물감을 칠하고, 머리엔 다이너마이트를 칭칭 감은 미친 피에로가 된다.

 성냥불을 그어대고 싶은 충동이 순식간에 구름결처럼 나를 스쳐간다.

 

 나는 그저 내가 몸은 마비되고 말도 못하는데다가 아무런 기쁨도 느낄수 없이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귀양살이를 하는 보잘 것 없는 처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몰골까지

 이렇게 끔찍할 줄이야."

 

이렇게 끔찍한 상황 속 그는 이야기한다.

 

"나도 그 즐거운 북새통에 한몫 끼고 싶지만, 나의 한 개밖에 없는 눈이 그들에게로 향하는 순간

 청년이며 할머니, 그리고 떠돌이 절름발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천장에 부착된 화재 경보기만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뜨내기 관광객'들은 아마도 불이 날까봐 무척 겁이 나는 모양이다.

 

 내가 만일 나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의 지적 능력보다 월등하게 우수함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그는 끔찍함에 함몰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자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뇌졸증을 겪고 온 몸이

마비되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로 15개월동안 20만 번 이상의 깜빡임으로 이 책

<잠수복과 나비>를 썼다.

 

잠수복, 그의 온 몸이 잠수복마냥 조여온다. 갑갑함이 덜할 때 비로소 그의 정신은 나비처럼 날아

다닌다. 소설 한 권 집필, 몇 차례의 여행, 희곡 한 편, 시판할 각종 과일주 칵테일 등 수천 가지

계획을 세운다. 그래도 칵테일 제조법에 대해 묻지 말아달란다. 이미 잊어버렸다고.

 

말이, 글이 슬금슬금 나를 피해 간다.

 

상주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닌, 보스의 눈치 보느라 왕복 6시간의 평일 문상길,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나섰다.

그 보스, 만취해 나를 붙잡고 무한 반복한다.

"최선을 다해라!"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무수한 말, 글이 되지 못.한.다.

 

"할머니, 내가 짐 들어줄께. 이래뵈도 나 남자야!"

미안하다 손도 먼저 내밀줄 아는 따뜻한 아이.

그 아이가 어제, 동생과 싸우다 할머니께 대들었다.

버릇과 예의없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이해받을 수 없는 일이기에, 아이는 어제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14개월 차이 나는 동생한테 갈수록 적대감을 가지는 아이.

한편으로 이해가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엔 너무 일찍 태어난 동생탓에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한 미안함이 자리잡아야

한다.

 

보스와 아들.

잠수복처럼 갑갑하게 조여 온다.

잠수복을 벗을 수 없다.

벗으면 내가 위태롭다.

이 책 작가처럼 나비가 되어 나들이길 나서볼까?

 

고작 수필 한편 써 놓고 밑천이 떨어져버렸다.

수필내용이 뭐냐고 제발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 짧은 사이, 너무 민망해져 버렸으니까.

 

보스가 술 취해 외치는 '최선'.

최선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 술 기운으로 얻지 못한다.

그래도 아랫사람인 나,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했다.

보스와 상관없이, 있는 자리 그대로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느라 정말 늦은 점심을 땀 흘리며 먹는다.

 

얼마 전 이메일 계정을 만든 아들에게 메일 한 통 보냈다.

아픈 마음, 눈물 참으며 썼다.

 

잠시 조여온 잠수복, 어느 사이엔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걸까?

 

읽은 날  2012.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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