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말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해 간다.

 

 나는 얼굴엔 온통 파란 물감을 칠하고, 머리엔 다이너마이트를 칭칭 감은 미친 피에로가 된다.

 성냥불을 그어대고 싶은 충동이 순식간에 구름결처럼 나를 스쳐간다.

 

 나는 그저 내가 몸은 마비되고 말도 못하는데다가 아무런 기쁨도 느낄수 없이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귀양살이를 하는 보잘 것 없는 처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몰골까지

 이렇게 끔찍할 줄이야."

 

이렇게 끔찍한 상황 속 그는 이야기한다.

 

"나도 그 즐거운 북새통에 한몫 끼고 싶지만, 나의 한 개밖에 없는 눈이 그들에게로 향하는 순간

 청년이며 할머니, 그리고 떠돌이 절름발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천장에 부착된 화재 경보기만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뜨내기 관광객'들은 아마도 불이 날까봐 무척 겁이 나는 모양이다.

 

 내가 만일 나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의 지적 능력보다 월등하게 우수함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그는 끔찍함에 함몰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자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뇌졸증을 겪고 온 몸이

마비되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로 15개월동안 20만 번 이상의 깜빡임으로 이 책

<잠수복과 나비>를 썼다.

 

잠수복, 그의 온 몸이 잠수복마냥 조여온다. 갑갑함이 덜할 때 비로소 그의 정신은 나비처럼 날아

다닌다. 소설 한 권 집필, 몇 차례의 여행, 희곡 한 편, 시판할 각종 과일주 칵테일 등 수천 가지

계획을 세운다. 그래도 칵테일 제조법에 대해 묻지 말아달란다. 이미 잊어버렸다고.

 

말이, 글이 슬금슬금 나를 피해 간다.

 

상주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닌, 보스의 눈치 보느라 왕복 6시간의 평일 문상길,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나섰다.

그 보스, 만취해 나를 붙잡고 무한 반복한다.

"최선을 다해라!"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무수한 말, 글이 되지 못.한.다.

 

"할머니, 내가 짐 들어줄께. 이래뵈도 나 남자야!"

미안하다 손도 먼저 내밀줄 아는 따뜻한 아이.

그 아이가 어제, 동생과 싸우다 할머니께 대들었다.

버릇과 예의없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이해받을 수 없는 일이기에, 아이는 어제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14개월 차이 나는 동생한테 갈수록 적대감을 가지는 아이.

한편으로 이해가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엔 너무 일찍 태어난 동생탓에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한 미안함이 자리잡아야

한다.

 

보스와 아들.

잠수복처럼 갑갑하게 조여 온다.

잠수복을 벗을 수 없다.

벗으면 내가 위태롭다.

이 책 작가처럼 나비가 되어 나들이길 나서볼까?

 

고작 수필 한편 써 놓고 밑천이 떨어져버렸다.

수필내용이 뭐냐고 제발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 짧은 사이, 너무 민망해져 버렸으니까.

 

보스가 술 취해 외치는 '최선'.

최선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 술 기운으로 얻지 못한다.

그래도 아랫사람인 나,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했다.

보스와 상관없이, 있는 자리 그대로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느라 정말 늦은 점심을 땀 흘리며 먹는다.

 

얼마 전 이메일 계정을 만든 아들에게 메일 한 통 보냈다.

아픈 마음, 눈물 참으며 썼다.

 

잠시 조여온 잠수복, 어느 사이엔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걸까?

 

읽은 날  2012.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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