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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법, 최진>
책을 읽는데에도 '법'이 필요...하겠지만, 그 동안 외면해 왔다.
어휴, 취미는 취미일 뿐인데 어휴, 머리 아파. 그것 말고도 내가 알아야 할 '법'이 너무 많다구.
그러다 이 책 <대통령의 독서법>을 펼친 건, 책 읽고 밑줄 긋고 정리하고 독후감을 쓰면서
세삼 놀랐기 때문이다. 취미는 취미라지만, 밑줄에서 독후감까지 그 놀라운 위력에 절로 관심
이 생겼다.
우선 제목이 확 당긴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대통령, 그들만의 독서법이라니!
잔뜩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펼쳤지만...
"우리나라 대통령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다섯 가지 심리 요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초반부터 급 실망이다. 대통령 전체 수도 얼마 안되는데 그 중에서 발견했다는 다섯 가지 심리
요인, 내가 보기엔 섣부른 일반화다.
"우리나라 대통령만큼 다사다난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도 없다."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쉽게도 링컨이 겪었던 극심한 우울증마저 영향을 받았는지..." 처럼 본인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어설픈 근거를 대고 있어 불편했다.
저자의 경력을 보니, '대통령 리더십연구소 소장,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등' 화려하다.
차라리 본인이 대통령 리더십 분야 전문가라 솔직히 말했다면, 좋은 장면만 잘 편집한 상업영화
느낌이 덜 했을까?
사람을 매혹시키는 제목,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을 한 가지 주제로 잘 엮은 솜씨 덕에 매끈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게 전부인 느낌 말이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은 어렸을 때부터 필요한 책만 골라 읽는 이른바 실용 독서법을 실천했다. 찢어지게 가난
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이상이나 꿈처럼 추상적인 가치보다 빵이나 밥과 같은 구체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 부분을 보니, 내가 읽은 책은 나의 어떤 이력을 말해주고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책 리스트가 어떤 이력을 말해주고 있을까...설핏 얼핏 잡힐듯한 이력...환하게 드러날
까봐 얼른 다음 문장을 잡는다.
이명박, 우리 예상대로 비즈니스 마인드로 속독을 해왔다. 그에게 인문학적 혹은 철학의 독서가
부족한데, 이러한 독서 바탕 위에 펼친 행정은 우리에게 매우 아주 엄청 심각한 폐해를 주고 있다.
인문학과 철학에 통달해 있어도 행정은 별개의 문제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민 없는 행정은
문제가 크다. 실용독서만 하는 자는 꼭 참고를 해야할 거 같다.
그는 퇴임 후 어떤 책을 읽을까? 행여나 인문과 문학책을 읽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을까?
돌아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 시절, "無來無去赤無住 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듯이 머물 곳 역시 없다' 라는 뜻으로 권력과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 했다지만, 글쎄...공감하기
어렵다.
노태우 대통령, 저자의 말이다.
"노태우는 어릴 때부터 친척집에서 눈치를 살피며 밥을 먹고, 책을 읽는 데 이골이 났다. 어찌 보면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훗날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리저리 살피며 돌다리도
몇 번씩 두들기며 건너가는 우유부단함을 보인 요인도 지난 시절의 눈칫밥 생활에서 비롯되었으리
라. 눈칫밥 독서가 노태우로 하여금 신중한 처세술을 길러주었고 최고 권좌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눈칫밥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음...눈에 거슬린다. 눈칫밥 독서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어이없다.
가장 거슬렸던 부분은 이승만 대통령 편이다.
"이승만은 김대중보다 독서하기에 훨씬 더 불리한 여건 속에 놓여 있었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열정
적으로 책과 더불어 생활했다."
이 책이 가진 한계다. 평생 책을 읽었지만 대통령이라는 큰 자리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얘기
가 없다. 물론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독서로 개인 삶만
풍요롭기만 하면 무엇한가. 사회적 역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대통령'이라는 크고
중요한 자리에서 말이다.
갈수록 관계의 미학이 중요해지는 싯점에 독서가 개인적 삶에만 도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다독, 정독, 숙독, 속독, 난독의 장단점을 알고 내게 부족하거나 참고로 할 것을 챙겨
야 했는데, 이 책이 마케팅에 숨은 상술로만 읽혀져 자꾸, 계속 삐딱하게 봤다.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 가택연금 상태에서 매일 양복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고 안방 → 응접실 →
서재 → 안방으로 이어지는 단순 일과를 되풀이한 자세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역시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얘기는 삐딱하기만 한 시선이 절로 무장해제 된다.
이 책은 매끈하게 잘 빠진 쇼윈도 상품, 소박한 멋보다 번,쩍! 이는 애나멜 구두, 제법 홍보비를
들인 한 철 상업영화다.
마지막 독서법 10계명, 옳은 말이지만 하릴없이 영화관 바닥에 쌓이는 전단지 같,다.

읽은 날 2012. 1. 3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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