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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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492쪽> 

 

흥미진진한 책,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입니다. 이 책, 꽤 유명하지요. 오늘은 이 책 유명세 

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빅 픽처>의 주인공 벤은 변호사의 안정된 생활에도 사진작가에 대한 식지않는 열정으로 인생의 

비상을 꿈꿉니다.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자기 자신 탓임을 잘 알고 있어요. 

경력, 집, 가족, 빚....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발판이자 안정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날 이유 

를 제공하니까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또한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라는 것, 자신이 자기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된다 

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여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그의 아내와 다투면서요. 

 

그의 아내 베스는 현실감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소설은 철저히 벤의 관점이 

라서요. 베스는 작가 지망생인데, 결혼과 출산, 육아가 그녀의 꿈을 앗아가버렸고, 이 모든 건 달 

콤하게 유혹한 벤의 잘못이 크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벤이 내민 손을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잡았다는 자각은 별로 없어요. 

그러고보니 원래 아내들이 남편에 대해 화나는 포인트가 이것인 것 같군요.   '내 잘못은 알지만, 

당신이 이렇게 나오면 안되는거 아니야?' 하는. 

 

이 책 시각이 이런데다가, 둘의 대화가 워낙 현실감이 강해서 독자는 차츰 벤의 편에 서게 됩니다. 

아, 게다가 아내가 바람 피운 이야기도 있군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유명세의 포인트입니다. 

독자 자신도 모르게 벤 입장에 서게 하는 몰입도, 게다가 벤은 우리처럼 인생의 비상을 꿈꾸는 사 

이니까요. 이후 이야기는 절로 굴러갑니다. 적당한 긴장은 제법 유지되고 있구요.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어요. 

인생의 비상을 잘못된 방식으로 이뤄내면 안된다는 것을요. 

그리고 우리가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는 잘못된 방식으로 꿈을 이루어내면 망한다거나, 뼛 속 깊이 

후회한다거나 그랬거든요. 

그런데, 벤은 결국 성공합니다. 

가장 참아내기 어려웠던 아이들과 이별하고, 끔찍한 발각에 대한 두려움도 참아내면서 말이지요. 

게다가 마음의 부담을 덜어서인지, 하루만에 일약 유명한 사진작가로 성공까지 해요.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앤도 만나구요. 

더 이상 바랄게 없지요. 마음 속 지울수 없는 죄책감만 뺀다면요. 

이것이 이 책 유명세의 또 다른 포인트입니다. 성공하면 안되는 도덕적 기준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염원을 가득 담아 (벤이 성공하길 간절히 희망하게 되죠), 기존 이야기와 다르게 성공한다는 점 

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잘나가는 성공이 부담스러운지 작가는 벤에게서 사진작가 성공을 회수합니다. 

그래서 그는 무명 사진작가, 사랑하는 앤, 그리고 태어난 아이 잭. 

이렇게 소박하게 생활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제가 벤의 성공에서 본 건 인생의 비상과 새로운 삶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비루한 현실 탈출이나 간절한 꿈을 이루려 해도 쉬 이룰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 사는 우리네 모습 

말이지요. 

그 모습이 답답한 나머지, 잘못된 방식을 통해서라도 비상하고픈 우리네 모습 말입니다. 

하여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은 비상이 힘든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여,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나봅니다. 

물론, 이 글로 설명되지 않는 '재미'가 우선하겠지만 말입니다. 

 

 

 

읽은 날  2012. 10. 1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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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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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270쪽> 

 

제가 호시노 미치오를 알게 된 건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였습니다. 

 

"이른바 모험가 중에는 제 행적을 남에게 팔기 위해 모험을 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을 시험하는 

모험이 아니라, 상업모험가 혹은 모함꾼이라고 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산꼭대기나 요트 안에 

셀프타이머 카메라를 설치하고, 의기양양한 제 얼굴을 매스컴에 판다. 진짜 모험이란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비상용 무전기 같은 것도 들지 않고, 남에게 알리지 않은 채 길을 떠나는 

고독한 세계의 어떤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저는 진정한 모험가로서 호시노를 발견해야만 하는 의무감 

에 사로잡혔어요.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사진, 그의 글 곳곳에 삶의 여행가 

로서 호시노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의 여행은 어느 날 우연히 본 헌책방의 사진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진에 매혹된 호시노는 주소도 모른채 무작정 편지를 써 보냅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편지에 

알래스카 쉬스마레프 마을의 부부가 답장을 해오고, 이렇게 그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저도 이 사진을 보고 매혹, 당했습니다. 진짜 쉬스마레프 마을이 어떨지 몰라도, 이 사진의 고즈 

넉한 빛과 표표히 있는 마을사진은 제게도 울림을 주더군요. 

그렇다해도 모두 그곳을 찾아갈 수 없을텐데, 호시노는 어떤 마음으로 머나먼 그 곳을 향해 떠났 

을까요. 

 

그가 이 사진을 본 나이는 19살, 그리고 그 전에 16살 나이로 2개월간 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을 

홀로 여행한 이력이 있더군요. 그러기에 가능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렇다해도, 19살 청년을 무작정 떠나게 한 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구수한 밥 짓는 냄새, 따스 

한 석양이 내려앉는 지붕, 넉넉한 품을 가진 가족.....이 없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26년이나 지속된 여행에서 그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더는 물러설 데가 없 

는, 발견 당하는 측에서 풍겨나는 아우라요. 이래저래 변화가 진행 중인 알래스카에서 저항하지도 

영합하지도 않고 늘 표표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 말입니다. 

그 표표한 모습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며, 그 종착점은 자기 생명, 살아 있다는 것의 신비, 이지 않았 

을까요. 

 

게다가 호시노는 1996년 45세 나이로 야영중인 텐트에서 불곰의 습격을 받아 죽어요. 

바람 같은 삶, 그리고 그의 글. 사진과 같은 죽음입니다. 

불곰의 습격을 받아 죽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불행을 느끼지 않았을거라면, 저의 착각일까 싶지만, 그래도 그는 바람 같은 여행이었던 그의 삶을 

이렇게 느꼈을 거 같아요. 

"이만 하면 됐다~" 하구요. 

 

그가 찍었을 사진과 글을 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저도 바람같았던 그의 삶을 표표히 바라보고 싶네요. 

제 인생도. 

그리고 제 자신도 늘 표표히 서 있고 싶습니다. 

저항하지도, 영합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이지요. 

 

 

 

읽은 날 2012. 5.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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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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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430쪽> 

 

독서와 글쓰기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는 회의감에 푸욱 빠진 최근이었습니다. 김용옥 선생의 

<중용, 인간의 맛>이 절 기다리고 있지만, 당췌 읽고 싶지가 않더군요. 

투시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책 제목만 보면 내용이 연상되면서 제 자신이 자꾸 지식백과가 되 

간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날들이었어요. 

그러던 차, 잊고 있었던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빈곤한 제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들 '문학'이 말이지요. 문학을 두루 읽고 전문서적을 읽으면 이 

해력이 훨씬 빨라진다지요.  인간을 도서관에 비유한다면 문학작품은 대들보에 해당한다는 멋진  

말도 있어요.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소설의 장점은 가독성과 재미 아닐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만. 

 

제가 쓸 서평은 조정래 선생의 <외면하는 벽> 입니다. 

사전정보 없이 선택한 이 책은 조정래 선생이 32살 때 쓰신 글로서,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 

렀더군요. 

그 세월에도 작가의 글솜씨는 진행형으로 빛나는 수작이었고, 글을 채우고 있는 내용은 40년 전 

과 달리 변한게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과거 한때 '이상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수집했던 적이 있어요. 

매년 발간되는 이 책을 한권 한권씩 책장에 꽂으면서 흐뭇했던 기억이 새롭군요. 그러나, 언제부 

터인가 수집에 흥미를 잃어버린 건 제가 갖고 있는 단편에 대한 낯섬때문이었지요. 

제게 소설 단편은 얇은 커튼이에요. 바람에 날려 잡혀지지 않고, 잡아도 그립감이 없어 언제나 허 

전했지요. 무슨 얘기를 하려나 하고 읽다보면 소설을 금방 끝나기 마련이고, 이런 얘기인가 싶다 

보면 막연해 잘 모르겠더라구요. 

하여 언제부터인가 단편을 잘 안 읽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책이, 단편을 엮은 책이더군요. 

 

아, 그런데, 역시 대가는 大家인가 봅니다. 

짧은 글 속 메시지는 생각보다 강했고 완독 후에도 잔상이 계속 남더군요. 그리고 40여 년전, 32 

살 나이가 무색할만큼 책 읽는 내내 밑줄 긋게 하는 문장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정래 선생은 역사인식이 확고한, 우리 시대 빛나는 양심가 중 한 분이시지요. 

조정래 선생이 이 글을 썼던 1974년과 지금을 비교해볼 때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인간답게 살 

고 있는가란 질문에 작가로서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더군요. 

이 대답에 심히 공감하는 마음으로 두 편을 소개합니다. 

 

<우리들의 흔적>에서는 혼자 셋방살이 하다 자살한 익명의 미스 김이 등장합니다. 1년 반 책상 옆 

구리 맞대고 일한 동료 중 그녀가 혼자 산다는 것과 자살에 이르기까지 흔들렸을 수많은 시간을 눈 

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미스 김의 빈자리는 아무렇지 않게 미스 강으로 대체되지요. 

조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미스 김은 그저 미스 강으로 대체되는 존재일 뿐이에 

요. 이 교체는 비단 미스 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되는 일이구요. 

 

<외면하는 벽>에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웃의 죽음 얘기가 나옵니다. 

아파트 이웃들은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는 관심이 없고 이렇게 얘기해요. 

"이거 참 큰 야단났네. 시체를 이고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밥을 먹나 그래. 재수가 없을래니까 

별일이 다 생기네." 

그리고 급기야 통장을 앞세워 조문와서 한다는 소리가 '곡소리를 그만해달라' 라는 말이지 뭐에요. 

이거 참. 

가족의 죽음에 비통한 유족들은 울컥 화를 내보지만, 결국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애도합니다. 

 

이러한 소설 속 내용이 40년 전과 비교할 때,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지요. 

변화는 보이지 않게 서서히 우리가 만들어가고 찾아야 할 대상,이겠지요. 

 

소개한 두 작품 외 모두 뛰어납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감동이 덜하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책은 절로 빛나는 대가의 면모로 낯선 

단편에 대한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버리게 한, 그렇게 제게 기억되는 책입니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내가 해득할 수 있는 역사, 내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 속의 삶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라 말씀하시는 조정래 선생과 같이 저 또한 그렇게 살려고 노 

력할 것임을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이렇게 모았던 책도 몇년 전 도서대방출 때 사라졌지요. 

 

읽은 날  2012. 7. 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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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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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너무나도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부분은, 

어렵다, 왜 어려울까, 이 방법밖에 없었나, 그럼에도 불구 이 책이 제게 주는 의미, 이렇게 입니다. 

 

보통 글쓴이마다 문체가 다르지요. 익숙하고 좋아하는 문체일수록 내용을 덜 따지게 됩니다. 

마치 드라마가 재미있다면 다소 과한 설정을 용서해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의 문체는 매우 시크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첫 번째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하는 부분은  '내가 말하지 않을 부분을 가 

지고 따지지 마~!' 하는 것 같았고, 

'초기의 자기 복제자를 살아 있다고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생명의 조상이며, 우리의 선조'라 하는 

부분은 진실 여부를 떠나 매우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과 교차가 있어 유전자가 있다면서, 갑자기 무성생식은 성과 교차가 없다는 말이 나와 생뚱맞게 

들렸고,  ESS, 매파, 비둘기파, 보복자와 불량배 등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 부분은 논리의 비약으 

로만 여겨졌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방대한 설명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유전자가 이기적이 

라는 것과 우리는 유전자가 만들어 낸 생존기계라는 것이지요. 

그 명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인터넷 책 소개에는 '대담하고도 섬세한 이론을 무리 없이 전개함으로 

써 완벽한 이론가의 면모를 보인 그는 완전무결한 슈퍼스타' 라 나와 있어요.  하지만 제게는 '내가 

설명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며 따라올 것, 독자의 이해도와 수준은 내 알 바 아니니까' 로 보이더군 

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가 주장하는 '생존기계' 개념이 너무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워 그랬던 거 

같습니다. 

비록 시대와 경험이 주는 한계 속에 꽁꽁 묶여 살고 있지만, 가끔 제법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유전자가 조종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니, 거부반응이 일지 않나요? 

게다가 팔짱 끼고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말이에요, 오우. 

 

좀 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하던 차에 <다윈주의 좌파>를 번역한 최정규님의 글을 읽으니 이거다 

싶더군요. 

유전자는 원래 이기적이랍니다.  유전자가 이기적이지 않으면  즉, 자신을 더 빨리 복제해내지 않으 

면 소멸될 운명이기 때문이죠. 유전자의 관점에서 그 담지자를 이기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유전 

자가 있을 때에도 그 유전자는 이기적 유전자이며, 반대로 그 담지자를 이타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드 

는 유전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유전자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것이죠. 

이 당연한(?) 사실을 발견해서 리처드 도킨스가 유명한 게 아니라, 유전자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 

고, 그것을 세상에 해석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네요. 

아.... 이기적인 유전자가 말을 해서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보였나!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정규님이 생존기계란 단어를 쓰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인 걸 보면,  그 단어 

가 싫어도 참 싫은가 봅니다. 

 

사실 리처드 도킨스와 최정규님의 말은 같습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뇌는 (혹은 유전자가 담겨져 있는 담지체로서의 인간) 이기 

적 유전자에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정도로까지 진화했다. 

이러한 원리가 넓~게 작용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인데, 독자에게 어필되는 정도가 무척 다릅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왜 이기적인가를 540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는 게 피 

곤한 나머지 결론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최정규님은 <다윈주의 좌파> 130쪽 안에서 그것도 '옮긴 

해제' 몇 쪽을 통해 결론을 말하고 있어, 훨씬 간결합니다. 

어쩌면 진실에 다가가는 지리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쉽게 결과를 얻고자 하는 얄팍한 독자의 한 

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를 놓고 볼 때, 인간의 행동 중 어디까지가 유전자의 조종인지, 어디서부터가 유전자 

를 배반하는 능력인지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어려워 보이고, 심지어 유전자 숫 

자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니, 이 책의 주제가 어려워도 참 어려운 것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 책이 제게 주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독자를 감안하면 좋겠다 라는 것이죠. 

이 책이 나온 시기나 생물학계의 여러 이슈를 감안하고, 진화생물학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독자를 감안하는 눈높이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부분 말이에요. 

이해도가 부족한 제 탓도 있습니다만, 이 책이 많이들 어렵다 하더라구요. 

 

하여, 별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제 글이 앞으로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노력 해야겠다~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야 어려운 걸 설명하자니 그랬다지만, 전 그래야 할 이유가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 

거든요. 

 

마지막으로 제 글, 정리합니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문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존기계 개념, 그리고 쉽지 않는 주제에 관한 이 책 

은 유명세와 저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제게 쉬운 글이 좋은 것이여~ 라는 상당히 엉뚱한 결론 

을 준 책입니다. 

 

정말 마지막, 저자에게 한마디 해봅니다. 

유전자의 조종과 유전자를 배반하는 능력을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구분할 수 있는지요?  

그 방법은 어떻게 되나요?  

궁금, 합니다...만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읽은 날  2012. 5. 2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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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꿈꾸다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
이종수 지음 / 하늘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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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꿈꾸다, 이종수, 293쪽> 

 

책읽기와 글쓰기 시간이 쌓여갈수록 '괴로움'의 시간이 늘어가는 건 제대로 하고 있어서, 라 생각 

하고 싶다.  앎과 실천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청객인데,  매번 변변한  

대접을 못하곤 한다. 불청객은 주인이 되고 싶은지 갈수록 강도를 높여 찾아온다. 

활자와 불청객 사이에 갇혀 옴싹달싹 못하느라 책읽기도 쉬어버린 어느 날, 독서 대신 운동을 하면 

좋으련만, 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습관을 탓할 새도 없이 푹 빠져버린 이 책 <벽화로 꿈꾸다>의 재미는 '괴로움'을 밀쳐내고 순수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하니, 짐짓 모른채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당신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해 얼마나 친분이 있나요?' 하며 편안하게 운을 띄는 이 책은 고구려  

벽화를 이렇게 안내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나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면,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 

지요, 혹시, 우리 집 앞 그 카페에서 만나요, 이 정도로 친한 사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생애와 아름다움에 대해 혹은 옛글과 풀이에 기대어, 혹은 즐거운 상상으로. 이 

제 간단한 인사는 나누었으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다. 고 

구려 시대의 벽화라니,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는 길이다." 

 

저자의 친근한 소개와 문장은 1500년 전 고구려 고분벽화를 지금의 시간으로 옮겨놔준다. 과거에 

존재했던 사실이 아니라, 2012년 지금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니, 도올 김용옥 선 

생이 말씀하신 '역사는 고중근(고대.중대.근대)이 아니다'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 < 

벽화로 꿈꾸다>를 통해, 박제된 고구려 벽화가 아닌 벽화의 생애를 통해 지금을 돌아볼 수 있다. 

아, 이 얼마나 멋진가! 벽화의 생애라, 벽화에게 말을 걸어가며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일 말이다. 

 

무덤 입구, 느닷없이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의 황당함을 배려해 방으로 만들어진 길, '연도 羨道'를 

따라 현실(玄室 - 어두우면서도 깊고도 그윽한 공간, 탄성이라 해도 좋을 한숨이 흐른다)로 들어가 

처음 만난 벽화는 초상화다. 

초상화가 주인공이었던 고분에 이어 408년 덕흥리 벽화고분 앞에서 말을 건다. 너는 왜 이전까지 

벽화가 보여준 초상화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냐고. 너는 왜 새로운 형식의 벽화를 보여주고 있냐 

고. 

상상으로 얻은 벽화의 답이다. 

"초상화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어. 주인공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그에게 어울리는 줄거리를 만들 

어 조연을 투입하면 어떨까 생각했지." 

 

 

 <덕흥리 고분벽화>

 

5세기 말 각저총 앞에서 말을 건다. 너는 왜 영원성을 위해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기로 했던 

초상의 약속을 어겼냐고.  그러자 각저총 주인공이 오히려 되묻는다.  우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 

냐고. 부부 초상 대열에 서겠다고 자청한 기억이 없다고. 

이 대답에 저자는 난처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음....그렇다면, 이런 상황이니? 길 떠나는 남자를 배웅하는 여자 이야기 같은? 

일상이되, 일상이 아닌 이별들. 때론 짧은 헤어짐 후에 재회의 기쁨을, 하지만 때로는 그 자리가 영 

원한 작별의 순간이 되기도 한? 그 순간에 빗대어 묘주 부부의 초상을 그린...거니? 

 

 

<각저총, 전별도>

 

그 다음 많은 상징을 가진 연꽃으로 장식한 고분의 이야기를 듣는다. 

"연꽃은 말이야, 이야기를 모두 생략하면서도 '벽화'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낸 새로운 방법이야. 

 지금까지 얘기해 온 직설법이 부담, 아니 낯간지러워서 이미지로 대체한 거라고." 

아, 그래? 그런데도 여전히 궁금해. 그 책임을 왜 콕집어 연꽃에게 맡긴, 걸까? 

 

 

 

 

"그 '아름다움'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엿보이지 않니? 아름다움의 힘을 너무 가벼 

이 여겨서는 안 되. 아무리 의미와 상징이 중요한 세계라 해도 그렇지, 묘실을 온통 '불상'으로 채 

웠다고 상상해 봐. 너라면 그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 

  

벽화의 마지막 이야기는 '사신도'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앞 시대의 인물들을 위해 짐짓 무심한 척 약간의 자리를 용인했던 수렵총에 

서, 사실 모두는 서로의 갈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 

운 시작임을. 

앞 시대 선배들과 달리 자기 안에서 은밀하게 몸부림치고 고민하며 조연에 머무르다가, 화려하게 

주인공으로 부상한 사신도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배경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모든 평가를 견딘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단순함'이 어떻게 아름 

다움까지 얻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묘실에 사신을 그려 넣는 일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미 4세기 초에 중국 무덤에서는 그 형식 

을 완전히 갖춘 사신도가 그려졌다. 그런데 유독 고구려에서, 묘실 전체의 주연으로 사신의 지위가 

격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고구려만이 자신의 독자적인 길로 들어선 배경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고구려가 이웃 문화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자신만의 회화를 찾았다는 점이 

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고구려의 벽화가 이 시대, 이처럼 찬란한 사신도 벽화에서 최후를 맞이한 

다는 사실이다. 절정에서 산화한다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결말은 아닐 터, 아름다운 그에게 맞 

춤한, 그런 마지막이다." 

 

중국, 일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자신만의 회화를 찾고, 찬란한 아름다운 절정에서 산화했다니,  

'그리고....안녕....'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아련함, 그리움, 안도감이 밀려온다. 

언제고 고구려 벽화앞에 서게 되면, 벽화가 탄식처럼 내뱉는 '그리고....안녕....'을 듣게 되겠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들, 아쉬움의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강서대묘의 사신도>

 

읽은 날  2012. 9. 14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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