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미술관에 가다 - 미술 속 패션 이야기
김홍기 지음 / 미술문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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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패션, 제게 참 낯섭니다. 낯선 두 분야가 <샤넬 미술관에 가다>란 책으로 만나 소근소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삶을 이야기하되, 옷의 관점에서 말이지요. 옷의 관점이라, 궁금증이 확 생깁니다. 

 

왜 하필 옷일까요? 

옷은 개인의 명예와 유혹을 드러내고 감춤과 드러냄을 통해 은밀한 욕망을 표현하기도, 허위와 과장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랍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 중 옷이라....저자 김홍기 소개를 보니 당연해 보이네요. 

 

"그림을 보며 읽는 일이 제2의 습관이 된 남자. 원래는 앙드레김 같은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의상학과에 두 번 낙방한 후, 안 되는 얼굴이지만 배우가 되어보잔 심산으로 연극영화과가 있는 동국대 경영학과에 꼴찌로 입학. 최소 학점만 이수하며 과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함. 졸업 후 '10년 후에도 여전히 튀고 싶다'는 (주)신세계의 모집공고문 속 시크(chic)한 남자 모델이 나의 모습이 될 거라 믿으며 입사에 도전, '다행히' 합격하여 아동복 상품기획과 구매업무를 담당했다. 이 시절 패션 공부를 하며 복식사에 재미를 붙였고, 이 경험은 뒷날 한국 최초로 미술사와 복식사를 결합한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 집필로 이어짐. 

입사 초기 꿈꾼 시크(chic)는 온데간데없고 시크(sick)해진 건강과 문학적 감수성을 되찾기 위해 퇴사를 감행, 뉴질랜드로 무작정 1년 코스 여행을 떠남. 그곳에서 빙하를 세 번 타고 번지점프를 열두 번 함. 새벽에는 발레학교를 다니며 둔감해진 신체 감각을 찾고, 저녁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에 담음. 

다음 포털에 [김홍기의 문화적 제국]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미술과 패션을 테마로 한 글들을 씀. 세계 민속복식을 테마로 각 나라의 문화적 코드를 '캐발려' 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film-art "

 

이 책의 주인공은 빅토리아 시대(1837~1901) 그림에 등장한 패션이에요. 기존 미술사에 복식사 시각을 더해 생생하게 잘 풀어냈습니다. 

'나를 완성한 패션' 에선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마거릿 대처가 나와요.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 집을 지어가듯 꾸준하게 한 길을 가는 그가 보이지 않나요? 만약 이 그림의 옷이 집시풍이나 힙합풍, 하늘하늘 드레스풍이었다면 영 어색했을 거에요. 이렇듯 패션은 나를 완성하는 방점입니다. 

 

 

로드리고 모이니한 <마거릿 대처 수상> 1983

 

 '시대를 움직인 패션' 에선 터키풍 유행으로 유럽여성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된 것, 중국취향의 시노와즈리, 일본풍의 자포니즘 등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유혹하는 패션', 은 제목답게 절 유혹합니다. 

부채 언어로 읽는 작업의 정석, 로코코시대의 꽃단장기술 얘기에 눈이 커지고,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복식 얘기는 시선을 잡아 끌더군요. 

여성의 신체는 감추면서도 드러내는 것이래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육체의 부분을 가림으로써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드러냄을 통해 자기 현시의 욕구를 충족한다니.....(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없는 저는 어찌해야 할지요) 

 

'주제가 있는 패션'에서는 무수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거울인 '모자', 현대 남성의 군복인 정장, 사회의 아웃사이더를 표시하는 삼색 줄무늬 얘기가 나오고, 마지막 '화가가 사랑한 패션' 으로 그림과 옷의 이야기인 이 책이 끝납니다. 

 

재미있는 두 부분을 소개할께요. 

처음 톱 해트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합니다. 길거리를 지나던 여자들이 기절하고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고......하여 톱 해트를 만든 사람이 법정에 끌려가 벌금을 물었다고 하네요. 

 

 

존 싱어 서전트 <리브스데일 경의 초상> 1902년

 

그리고 우리가 주위에서 흔하게 봤던 삼색 줄무늬는 바탕과 무늬를 구별하기 어렵다고 정직하지 못한 무늬, 즉 사탄의 무늬라 불려졌다네요. 이러한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져 죄수복에 줄무늬가 들어가게 되었다 합니다. 

 

루카스 크라나흐 <성 캐서린의 순교> 1508년경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던 저자는 인생이 뜻한대로(?) 풀리진 않았으나, 생업을 통해 경력을 쌓아 미술과 패션이라는 신선한 접목을 해낸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다소 생소한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가 됐다지요. 

가끔은 지겨운 밥벌이지만, 생업에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살리려는 생각은 여러모로 기특할 겁니다. 당장....저는 어떨까 생각해보지만, 어휴, 난감합니다. 

 

이 책을 읽어도 지금 우리 시대를 움직이는 패션, 유혹하는 패션...을 말할 재간이 없지만, 나를 완성하는 패션에 대해선 한마디 할 수 있을 듯 싶어요. 

집에 가족 나들이한 사진이 쌓여 있어요. 배경도 다르고, 아이들 얼굴과 키도 다르지요. 근데, 사진 속 제 옷은 매년 똑같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계절마다 전 제복을 입고 있군요! 

이것이 '나를 완성하는 패션'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일상성이 엿보이는 '책과의 일상', 블로그명처럼요? 

 

 

 

 

다시 읽은 날  2012. 6. 1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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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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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책은 도올이 낙산에서 산보할 때 만난 젊은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어려운 고전번역 말고 젊은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달라는 간청에 의해 씌여졌다 합니다. 

저는 도올에게 감사드려야할지, 이름 모를 그 젊은이에게 인사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이 책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우주와 천지' 라는 두 사상결구에서 '청춘, 역사, 조국, 대선,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분야로 풀어쓴 것으로, 선생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 민족 철학의 자존심'이라 여겨졌습니다. 부족한 제 눈을 번쩍 뜨게한 사상과 철학이 빛났으며, 우리에게 이러한 사상가, 철학가가 있다는 게 여간 자랑스럽지 않더군요. 

 

이 책 제목이 <사랑하지 말자> 입니다. 

사랑....하지 말자니요. 인류 역사상 웬만한 사람들이 모두 들고 나온 '사랑'을 하지 말자니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은 출판 마케팅에서 지어진 이름일겁니다. (사랑에 관해 나오긴 하지만, 이 제목이 책을 대표하진 않습니다) 

제가 한번 지어볼까요? 

<도올, 시대에게 고함> <동서 철학의 통섭> <진리의 항변> <도올철학의 집대성> <도올이 청춘에게 고함>.... 어흑, 전 네이밍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안 그대로 도올선생이 '시중의 무슨 흔해빠진 힐링서적만큼' 팔리지 않는다 그러시는데 말입니다. 

 

도올선생이 '사랑하지 말자' 라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개념에 플라톤의 에로스, 기독교의 아가페나 필리아, 그리고 영어의 'to make love'와 같은 표현에 담긴 남녀간의 성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형이상학적.형이하학적 의미를 포괄하는 지극히 외연이 넓은 말이어서, 우리말 개념지도를 크게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외래어로 들어온 사랑이란 단어로 우리의 일상적 가치를 왜곡하지 말자는군요. 사랑이라는 일반명사의 외연을 축소시키자 합니다. 사랑은 '몸의 꼴림인 화학작용'에 국한시키고 그 외 사랑의 범주에 속한 일체의 행위는 일반도덕 범주에 환원시켜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이 담당하는 사랑 영역 외에는 우리말인 '괸다' '아낀다'를 쓰고, 그 외 일반도덕 범주로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즉 인.의.예.지의 단초를 얘기하고 있어요. 

 

이 책은 '대선' 도 겨냥하고 있습니다. 좌파.우파 개념이 아닌 철학가로서 얘기하고 있지요. 민감한 시기, 노골적인 대선이야기지만, 한번쯤 철학가가 말하는 대선얘기를 들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것은 우주종교 부분이었어요. 

이 부분을 통해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머리가 환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먼저 '우주' 편 입니다. 

'우주'편에서 서양과 동양 철학을 비교하며 동양철학의 우수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습은 시공의 인과성 지배속에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 배후에 그 현상을 지배하는 본체가 반드시 따로 있다 생각하는 게 한계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플라톤적인 사유가 서양역사 2천여 년동안 확고한 틀로 자리잡았는데, 도올선생은 한마디로 해괴한 것이라 하더군요. 

영혼과 인간이라는 존재가 분리되며, 불멸하다 보는 생각은 '불멸에 대한 동경'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서양철학의 최대 오류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동양철학의 인간은 몸 Mom을 빼놓고 존재할 수 없다 합니다.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제약때문에 동양철학은 변화를 동경할 수 밖에 없다는군요. 이러한 시공간적인 제약과 인과필연성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인간이지만, 인과필연성을 넘어 보편적이고 초월적 시점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도덕주체 또한 될 수 있는게 사람이라 합니다. 

 

이러한 도올선생의 생각은 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로 읽혀졌습니다. 

신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서양철학과 신이라는 개념 대신 천지 즉, 연기론적 총상 속에서 우연과 필연을 해소시켜 나가는 과정(ing)을 중시 여긴 동양철학으로요. 

 

전 도올선생의 말씀에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러한가를 묻는 건 제 소관이 아니라 여겨졌어요. (감히 전적으로 공감한다 말해도 될런지요) 서양.동양 철학이 진정 그러하다면, 전 동양철학 편에 서야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종교'편에서는 기독교가 수용되던 조선시대 상황과 초기 유학자들의 생각, 그 후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유학자인 안정복의 천주교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정확하고 유효한 논리이며,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보다 더 포괄적인 측면을 섭렵하고 있다는 도올선생의 말씀에, 저도 격하게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책 초반, 빛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네 마음이 사라진 것이라며, 어진仁 본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자포自暴도, 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 생각하여 의로운 길을 걸어가지 않는 자기自棄도 하지말고, 반성하며, 우리 몸에 구현되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달으라는 도올선생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렵니다. 

(이 책을 읽고 제 서평문체가 바뀌었지요. 자포자기하지 않고 늘 반성하렵니다) 

 

이 책 저 책을 순례하며 주워들은 지식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소중한 느낌을 받은 인연에 감사하면서 말이지요. 

 

 

읽은 날 2012. 9. 2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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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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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이덕일, 310쪽>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비장미가 담긴 문구가 담박에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른 새벽, 시원한 칼바람처럼 신선한 이 문장은 저를 사춘기로 잡아끌더군요.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던 그 시절, "자유란 무엇인가" 란 질문도 저를 채우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교과서에서 알려주는 자유말고, 내가 답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이청준 선생의 어

느 소설을 보고 깨달음을 얻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그 소설에서 '자유'는 모진 고초가 뻔한데도 안전한 곳에서 의연히 걸어나와 나를 잡아가든 말든,

초라하고 궁색한 '안전'을 선택하지 않겠다....던 어느 주인공 이미지였어요. 수용할 수 없는 환경

이든, 자신이 수용되지 않는 환경이든 자신의 신념 그대로 당당하던 이미지, 그것이 저의  자유였

습니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는 바로 그 연장선에 있는 문장이었지요. 

 

고민하지 않고 고른 이 책의 서문 또한 근사합니다.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은 사마천,  '사초'를 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김일손, 상식을 뒤엎었

던 신채호!  이 세 역사가의 공통점을 그 시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와 대화한 데 있다. 그 시대의  논

리를 뛰어넘는 역사 인식이 세 역사가에게는 있었다. 역사의 진정한 몫은 이렇게 다음 시대와 대화

하는 것이리라. 과거를 가지고  미래와 대화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그렇게 필자는 그 시대와는 불화했던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로 걸어 오라고 작은 오솔길을 놓았다.

그러자,  주자와 달리 경전을 해석했다고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 주자학에 반대해 양명학자임

을 선언했던 정제두, 여성 차별과 지역 차별에 맞섰던 허난설헌과 홍경래, 인조반정을 쿠데타라고

꾸짖었던 유몽인,  서얼 출신으로 새 세상을 지향했던 유득공과 박제가,  정약용 형제보다 더 오랜

귀양 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죽어간 이광사 형제,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던   동학의 영수

김개남 등 스물다섯 명이  그 시대를 넘어  우리 시대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했던 삶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나의 시대와는 다른가'" 

 

책 처음이 마음에 들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좋은 걸 읽고 있다는 기쁨에요. 

아, 그런데......이 책을 읽어갈수록..... 

저자의 의도와 선택한 꼭지는 매우 훌륭했으나  꼭지마다 2% 부족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시대와

불화했으나 자신과 시대에 당당했던 그들의 모습이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대분위기와 주인

공의 행적이란 씨줄과 날줄만 보일 뿐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한 느낌이 들고 구멍이 얼기설기 난, 기

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책이 꼭 '작품'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투박하면 투박한대로 거칠면 거친대로...빛나는

가치가  있습니다만, 

가치와 울림, 감동....저는 찾지 못했네요. 

 

하여 이덕일이란 저자는  제 기억에서 흐릿해져가는 분이었는데,  단 한권의 책으로 평가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 싶습니다. 

아직까지 소설에 빠져있다보니, 역사소설에 일가견 있는 이 분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다시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이 괜찮은 <근대를 말하다>로 만나볼까 합니다. 

역사평설....이라, 본격적인 역사를 말하는 이 책은 어떨까 기대되는군요. 

 

 

 

  읽은 날  2011. 2. 1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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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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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391쪽> 

 

 오늘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수많은 대중소설을 쓴 최인호 작가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글감으로 선택했어요. 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일상이 낯설어지기 시작한 K는 자신과 똑같은 K1을 만나 도플갱어(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 경험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미리 프로그램대로 이뤄지는게 아닌가

의문을 갖지요. 

그러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로 뛰어들고, 그 순간 K1과 K2가 합쳐진 온전한 '나'를

경험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Big Brother' 개념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최인호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작가가 1963년 등단한이래 지금까지 써온 수많은 작품은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었는데,

이 소설은 작가가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라 합니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해 쓴 수제품이라 하네요. 

 

이 작품에서 작가 일상에 갑자기 뛰어든 '암'이라는 존재를 느꼈습니다. 최인호 선생은 3여년 전부터

침샘암 투병중인데, '암'은 작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지식, 사물, 소리, 진리, 학문이 모두 거짓이며

우상, 환상이자 존재하지 않는 헛꽃임을 깨우쳐주었다 합니다. 

마치 이 작품의 K가 갑자기 낯설어한 모든 일상처럼요. 

지금까지 쌓아온 반석이 무너지는 참담한 일이지요. 

참담한 순간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전 이 작품이 작가의 반응이라 느꼈습니다. K1, K2가 합체된 온전한 K가 절대자, 천지창조 전의 태초,

카오스의 신세계, 오메가 천국...을 찾는게 말이지요. 

수긍가는 반응입니다. 

만약 저라면 어떨까 자못 궁금합니다. 저는 절대자를 찾지 않고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고통스럽지만

끝.내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절대적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자신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작품과 작가는 동격이거나, 작가는 작품을 포함한 상위개념이거나 하겠지만 말입니다, 전 이 작품을

작가와 별개인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했기 때문이에요. 391쪽이나 되는 긴 이야기의 결론

은 허무하고, 스토리는 단순하고, 문장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여,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라는 평소같지 않은 결론을 내버렸습니다. 

 

최근 어느 책에서 "유명한 작가 OOO를 이명박 정권의 문화5적쯤..."이라는 걸 본 적 있습니다. 그 작

가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그 분이 그런가....? 하면서요. 그 분에게 권력이

필요했을까, 궁핍한 생활을 면하게 해 줄 자본이 필요했을까, 그 동안 쌓아온 인맥을 끊지 못해 그랬을

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봅니다만, 생활고 떄문은 아닐거란 생각을 괜스레 해봅니다. 그 분은 매우 유

명하시니까요. 

어쩌면 제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얼마전 런던올림픽에서, 이미 은퇴했던 선수가 조국에서는 아픈 딸을 치료할 병원과 병원비가 없어

국기를  바꿔달고(귀화) 다시 선수로 출전한 사연을 봤는데, 그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작가와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전, 시대정신을 철저히 외면하는 작가의 작품은 싫은거 같아요. 미당 서정주처럼, 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해도 시대정신을 망가뜨리는 작가와 작품은 읽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문학이 시대정신을 말할 수 없고, 시대정신을 말하는 것만 문학은 분.명. 아니에요. 하지만 시대

정신을 망가뜨리는 작품은, 문학의 본질과 괴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쓰다보니, 많이 지나쳤네요. 

비록 작가와 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지만, 이 작품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작가와 작품을

별개로 보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진리, 학문이 무너져내린 참담한 현실 속, 최인호 작가의 쾌유 빌면서 말이지요. 

  

 

읽은 날  2012. 10.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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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
이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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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 이지성, 303쪽> 

 

부모는 여러가지 이유로 자녀가 독서를 좋아하길 원합니다. 독서뿐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어  육아.교육 책을 들춰보며 지혜를 얻곤 하죠. 항상 실천이란 벽에 부딪히지만

말입니다. 

 

이 책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도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에요) 

이지성 작가는 '특별한' 10년을 놓치지 말라며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아이를 위한 커리큘럼을

짜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 조언은 독서, 공부습관, 대인관계, 경제 이렇게 4가지 분야로 구성되 있어요. 

이지성 작가답게 독서에 많은 조언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각 학년별 철학 추천도서, 철학고전 읽는 방법, 위인전 제대로 읽기 등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어요. 

 

제가 오늘 이야기할 것은 자녀의 독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입니다. 

(눈치채셨나요? 제가 쓸 내용은 책 내용과 무관하다는 것을요.) 

먼저 독서의 목표가 뭔지 생각해봐야겠죠. 이 책 제목처럼 성공을 위할지, 아이 인생의 풍요로

움과 행복을  위할지 말입니다. 

성공이 사회적 성공일 때 아이의 자발적 의지가 없다면 장기전이 될 수 없을 거에요. 

반면 목표가 아이 인생의 풍요로움과 행복, 이라면 좀 더 수월해질 거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문제는 아이의 자발심이 꽃피는 시기와 부모가 강력하게 원하는 시기가 종종

일치하지 않는데 있어요. 

 

한때 제 아이들 독서습관을 위해 노력했던 게 떠오릅니다. 이런 책을 읽고 책에 안내된 대로,

엄마가 항상 책을 읽고, 집 안 곳곳에 책이 있고, 책도 많이 읽어줬는데 아이는 늘 제 기대치에

미달해서, 고민하곤 했죠. 

뭐가 문제인가? 

 

어제 돌무렵의 아이를 가진 후배가 제게 질문을 했어요. 

"선배,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줘야 할까요? 

  같은 책 여러번이 좋나요? 

  다양한 책이 좋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어줘. 책 기준은 항상 아이여야 해. 

  그리고 그 무렵 책은 하나의 도구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교감을 나누는 건데, 그게

  놀이가 되도 되고 책이어도 장난감이도 되는거거든." 

 

아, 언제나 이론은 완벽합니다(?). 실천이 문제지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가 자녀독서를 위해 어떤 교감을 나눴는지 반성되더군요. 

게다가 어제 이웃님의 글을 읽고나니 더해졌습니다. 

 

"저 아이처럼, 자기 이름이 들어간 책갈피를 만들어 주는 엄마라면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습관은 일상에서 나오고, 일상을 바꾸는 건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지속

성인데 이런 것들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모가 함께 읽거나 독서교실을 보내거나 하는 인위적 환경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기에는 인간

으로 태어난 아이의 머리 속엔 너무 많은 안테나가 있어서다. 그래서 어렵다." 

 

(시간 되시면 읽어보세요. 아주 주옥 같은 글입니다.  http://songjh03.blog.me/50152240481)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읽어댄 각종 육아.교육 책이 가끔은 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소위

좋은부모 책은 전자기계 사용설명서처럼 책대로만 하면 아이가 저절로 훌륭한 아이가 될 것

같은 착각을 주니까요. 

책대로 했는데 뜻대로 안되면 부모는 좌절하구요. 

중요한 것은 좋은부모 책보다 아이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그 자체일 겁니다. 

그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어제 저녁도 제 아이들이 놀아달라 그러는데, 전 아이들을 밀어내고 블로깅을 하고 있었으니까

요. 가끔 제게도 자신을 위한 출구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말이지요. 

가끔 제 뒷통수로 부딪히는 아이들 시선을 느낍니다. 

"엄마는 블로그만 해." 하는. 

 

자신이 좋은부모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런 책을 사보곤 하지만, 이런 책도 나름 기준으로 판단을

잘해야겠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지성 작가의 다음 말이 가슴을 울리더군요. 

 

"아이를 생각한다면 학교를 믿지 마세요. 선생님도 믿지 마세요. 그들은 당신의 아이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습니다. 믿을 건 오직 자신입니다. 

교육은 종교와 비슷합니다. 아이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믿음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책도 맹신하지 말고, 부모인 자신과 아이를 믿어야겠어요. 

아이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힘을 말이지요. 

그것이 자녀독서보다 더 필요한 부모의 일이니까요. 

  

 

사진출처 : http://photo.naver.com/view/2009031314542805935 

 

읽은 날  2008. 9. 1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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