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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평점 :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책은 도올이 낙산에서 산보할 때 만난 젊은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어려운 고전번역 말고 젊은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달라는 간청에 의해 씌여졌다 합니다.
저는 도올에게 감사드려야할지, 이름 모를 그 젊은이에게 인사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이 책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우주와 천지' 라는 두 사상결구에서 '청춘, 역사, 조국, 대선,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분야로 풀어쓴 것으로, 선생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 민족 철학의 자존심'이라 여겨졌습니다. 부족한 제 눈을 번쩍 뜨게한 사상과 철학이 빛났으며, 우리에게 이러한 사상가, 철학가가 있다는 게 여간 자랑스럽지 않더군요.
이 책 제목이 <사랑하지 말자> 입니다.
사랑....하지 말자니요. 인류 역사상 웬만한 사람들이 모두 들고 나온 '사랑'을 하지 말자니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은 출판 마케팅에서 지어진 이름일겁니다. (사랑에 관해 나오긴 하지만, 이 제목이 책을 대표하진 않습니다)
제가 한번 지어볼까요?
<도올, 시대에게 고함> <동서 철학의 통섭> <진리의 항변> <도올철학의 집대성> <도올이 청춘에게 고함>.... 어흑, 전 네이밍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안 그대로 도올선생이 '시중의 무슨 흔해빠진 힐링서적만큼' 팔리지 않는다 그러시는데 말입니다.
도올선생이 '사랑하지 말자' 라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개념에 플라톤의 에로스, 기독교의 아가페나 필리아, 그리고 영어의 'to make love'와 같은 표현에 담긴 남녀간의 성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형이상학적.형이하학적 의미를 포괄하는 지극히 외연이 넓은 말이어서, 우리말 개념지도를 크게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외래어로 들어온 사랑이란 단어로 우리의 일상적 가치를 왜곡하지 말자는군요. 사랑이라는 일반명사의 외연을 축소시키자 합니다. 사랑은 '몸의 꼴림인 화학작용'에 국한시키고 그 외 사랑의 범주에 속한 일체의 행위는 일반도덕 범주에 환원시켜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이 담당하는 사랑 영역 외에는 우리말인 '괸다' '아낀다'를 쓰고, 그 외 일반도덕 범주로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즉 인.의.예.지의 단초를 얘기하고 있어요.
이 책은 '대선' 도 겨냥하고 있습니다. 좌파.우파 개념이 아닌 철학가로서 얘기하고 있지요. 민감한 시기, 노골적인 대선이야기지만, 한번쯤 철학가가 말하는 대선얘기를 들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것은 우주와 종교 부분이었어요.
이 부분을 통해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머리가 환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먼저 '우주' 편 입니다.
'우주'편에서 서양과 동양 철학을 비교하며 동양철학의 우수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습은 시공의 인과성 지배속에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 배후에 그 현상을 지배하는 본체가 반드시 따로 있다 생각하는 게 한계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플라톤적인 사유가 서양역사 2천여 년동안 확고한 틀로 자리잡았는데, 도올선생은 한마디로 해괴한 것이라 하더군요.
영혼과 인간이라는 존재가 분리되며, 불멸하다 보는 생각은 '불멸에 대한 동경'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서양철학의 최대 오류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동양철학의 인간은 몸 Mom을 빼놓고 존재할 수 없다 합니다.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제약때문에 동양철학은 변화를 동경할 수 밖에 없다는군요. 이러한 시공간적인 제약과 인과필연성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인간이지만, 인과필연성을 넘어 보편적이고 초월적 시점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도덕주체 또한 될 수 있는게 사람이라 합니다.
이러한 도올선생의 생각은 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로 읽혀졌습니다.
신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서양철학과 신이라는 개념 대신 천지 즉, 연기론적 총상 속에서 우연과 필연을 해소시켜 나가는 과정(ing)을 중시 여긴 동양철학으로요.
전 도올선생의 말씀에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러한가를 묻는 건 제 소관이 아니라 여겨졌어요. (감히 전적으로 공감한다 말해도 될런지요) 서양.동양 철학이 진정 그러하다면, 전 동양철학 편에 서야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종교'편에서는 기독교가 수용되던 조선시대 상황과 초기 유학자들의 생각, 그 후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유학자인 안정복의 천주교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정확하고 유효한 논리이며,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보다 더 포괄적인 측면을 섭렵하고 있다는 도올선생의 말씀에, 저도 격하게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책 초반, 빛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네 마음이 사라진 것이라며, 어진仁 본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자포自暴도, 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 생각하여 의로운 길을 걸어가지 않는 자기自棄도 하지말고, 반성하며, 우리 몸에 구현되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달으라는 도올선생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렵니다.
(이 책을 읽고 제 서평문체가 바뀌었지요. 자포자기하지 않고 늘 반성하렵니다)
이 책 저 책을 순례하며 주워들은 지식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소중한 느낌을 받은 인연에 감사하면서 말이지요.

읽은 날 2012. 9. 22 by 책과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