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391쪽>
오늘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수많은 대중소설을 쓴 최인호 작가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글감으로 선택했어요. 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일상이 낯설어지기 시작한 K는 자신과 똑같은 K1을 만나 도플갱어(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를 경험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미리 프로그램대로 이뤄지는게 아닌가
의문을 갖지요.
그러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로 뛰어들고, 그 순간 K1과 K2가 합쳐진 온전한 '나'를
경험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Big Brother' 개념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최인호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작가가 1963년 등단한이래 지금까지 써온 수많은 작품은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었는데,
이 소설은 작가가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라 합니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해 쓴 수제품이라 하네요.
이 작품에서 작가 일상에 갑자기 뛰어든 '암'이라는 존재를 느꼈습니다. 최인호 선생은 3여년 전부터
침샘암 투병중인데, '암'은 작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지식, 사물, 소리, 진리, 학문이 모두 거짓이며
우상, 환상이자 존재하지 않는 헛꽃임을 깨우쳐주었다 합니다.
마치 이 작품의 K가 갑자기 낯설어한 모든 일상처럼요.
지금까지 쌓아온 반석이 무너지는 참담한 일이지요.
참담한 순간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전 이 작품이 작가의 반응이라 느꼈습니다. K1, K2가 합체된 온전한 K가 절대자, 천지창조 전의 태초,
카오스의 신세계, 오메가 천국...을 찾는게 말이지요.
수긍가는 반응입니다.
만약 저라면 어떨까 자못 궁금합니다. 저는 절대자를 찾지 않고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고통스럽지만
끝.내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절대적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자신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작품과 작가는 동격이거나, 작가는 작품을 포함한 상위개념이거나 하겠지만 말입니다, 전 이 작품을
작가와 별개인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했기 때문이에요. 391쪽이나 되는 긴 이야기의 결론
은 허무하고, 스토리는 단순하고, 문장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여,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라는 평소같지 않은 결론을 내버렸습니다.
최근 어느 책에서 "유명한 작가 OOO를 이명박 정권의 문화5적쯤..."이라는 걸 본 적 있습니다. 그 작
가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그 분이 그런가....? 하면서요. 그 분에게 권력이
필요했을까, 궁핍한 생활을 면하게 해 줄 자본이 필요했을까, 그 동안 쌓아온 인맥을 끊지 못해 그랬을
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봅니다만, 생활고 떄문은 아닐거란 생각을 괜스레 해봅니다. 그 분은 매우 유
명하시니까요.
어쩌면 제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얼마전 런던올림픽에서, 이미 은퇴했던 선수가 조국에서는 아픈 딸을 치료할 병원과 병원비가 없어
국기를 바꿔달고(귀화) 다시 선수로 출전한 사연을 봤는데, 그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작가와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전, 시대정신을 철저히 외면하는 작가의 작품은 싫은거 같아요. 미당 서정주처럼, 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해도 시대정신을 망가뜨리는 작가와 작품은 읽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문학이 시대정신을 말할 수 없고, 시대정신을 말하는 것만 문학은 분.명. 아니에요. 하지만 시대
정신을 망가뜨리는 작품은, 문학의 본질과 괴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쓰다보니, 많이 지나쳤네요.
비록 작가와 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지만, 이 작품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작가와 작품을
별개로 보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진리, 학문이 무너져내린 참담한 현실 속, 최인호 작가의 쾌유를 빌면서 말이지요.

읽은 날 2012. 10.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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