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이덕일, 310쪽>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비장미가 담긴 문구가 담박에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른 새벽, 시원한 칼바람처럼 신선한 이 문장은 저를 사춘기로 잡아끌더군요.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던 그 시절, "자유란 무엇인가" 란 질문도 저를 채우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교과서에서 알려주는 자유말고, 내가 답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이청준 선생의 어
느 소설을 보고 깨달음을 얻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그 소설에서 '자유'는 모진 고초가 뻔한데도 안전한 곳에서 의연히 걸어나와 나를 잡아가든 말든,
초라하고 궁색한 '안전'을 선택하지 않겠다....던 어느 주인공 이미지였어요. 수용할 수 없는 환경
이든, 자신이 수용되지 않는 환경이든 자신의 신념 그대로 당당하던 이미지, 그것이 저의 자유였
습니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는 바로 그 연장선에 있는 문장이었지요.
고민하지 않고 고른 이 책의 서문 또한 근사합니다.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은 사마천, '사초'를 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김일손, 상식을 뒤엎었
던 신채호! 이 세 역사가의 공통점을 그 시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와 대화한 데 있다. 그 시대의 논
리를 뛰어넘는 역사 인식이 세 역사가에게는 있었다. 역사의 진정한 몫은 이렇게 다음 시대와 대화
하는 것이리라. 과거를 가지고 미래와 대화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그렇게 필자는 그 시대와는 불화했던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로 걸어 오라고 작은 오솔길을 놓았다.
그러자, 주자와 달리 경전을 해석했다고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 주자학에 반대해 양명학자임
을 선언했던 정제두, 여성 차별과 지역 차별에 맞섰던 허난설헌과 홍경래, 인조반정을 쿠데타라고
꾸짖었던 유몽인, 서얼 출신으로 새 세상을 지향했던 유득공과 박제가, 정약용 형제보다 더 오랜
귀양 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죽어간 이광사 형제,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던 동학의 영수
김개남 등 스물다섯 명이 그 시대를 넘어 우리 시대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했던 삶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나의 시대와는 다른가'"
책 처음이 마음에 들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좋은 걸 읽고 있다는 기쁨에요.
아, 그런데......이 책을 읽어갈수록.....
저자의 의도와 선택한 꼭지는 매우 훌륭했으나 꼭지마다 2% 부족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시대와
불화했으나 자신과 시대에 당당했던 그들의 모습이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대분위기와 주인
공의 행적이란 씨줄과 날줄만 보일 뿐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한 느낌이 들고 구멍이 얼기설기 난, 기
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책이 꼭 '작품'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투박하면 투박한대로 거칠면 거친대로...빛나는
가치가 있습니다만,
가치와 울림, 감동....저는 찾지 못했네요.
하여 이덕일이란 저자는 제 기억에서 흐릿해져가는 분이었는데, 단 한권의 책으로 평가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 싶습니다.
아직까지 소설에 빠져있다보니, 역사소설에 일가견 있는 이 분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다시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이 괜찮은 <근대를 말하다>로 만나볼까 합니다.
역사평설....이라, 본격적인 역사를 말하는 이 책은 어떨까 기대되는군요.

읽은 날 2011. 2. 1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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