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
이화경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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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에 닥친 시련과 분노를 공부하고 글로 남긴 여성들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짤막한 위인전을 읽는 느낌이다. 이 여성들이 가진 고뇌와 슬픔, 막막한 상황이 잘 전달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라서 이 사람들의 저자를 본격적으로 읽기전에 워밍업으로 읽으면 아주 좋을것 같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 앞에서 두려울 때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에서 힘을 얻었다. 글쓰기의 고단함과 일상의 노동이 섞이면서 체력과 창의성이 고갈되는 걸 느낄 때, ‘집 안의 천사‘부터 죽이라던 버지니아 울프의 독기 어린 질책으로 버텼다. 의지가 약해 주저앉고 싶을 때, "일어서서 걸으라. 네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라고 부추겨주던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격려를 목발 삼아 걸었다. 남들의 시선에 상처받을 시간에 사랑하는 이들과 ‘서둘러‘ 사랑하고 어제보다 오늘을 ‘더‘ 사랑하는 데 정력을 바쳤던 조르주 상드를 보면서 웃을 수 있었다.

가면이 곧 얼굴이라는 손택의 발언은 위악적인 것이 아니다. 외모를 갈고닦고 윤내고 기름칠해서 세상에 번지르르하게 내보이자는 천박한 문구도 아니다. 인간의 스타일과 이미지는 대단히 유물론적이라는 것, 겉모양새를 밑천으로 깔지 않고서는 궁극적으로 이해와 소통이 불가능한 인간 관계의 비극적인 현상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스타일 자체가 아니라 스타일의 획일성인 것이다.

최종 해결책이라는 우회적 표현은 실제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려는 나치스의 술책이었다. 나치스의 구호와 관용구는 현실을 차단하고 사유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언어였다.

이데올로기적 맹신이나 악독한 동기가 한 인간을 악마로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음, 즉 무사유야말로 악마적인 심연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것임을 한나 아렌트는 통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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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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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글쓰기 이론 책은 읽지 않을거다. 8시간 앉아서 읽고 생각하고 쓰는 훈련과, 쓰고 실패하고 쓰고 실패하는 과정의 연속을 견뎌내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냥 좋은 글 읽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하루에 열 페이지씩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낱말로는 2천 단어쯤 된다. 이렇게 3개월 동안 쓰면 18만 단어가 되는데, 그 정도면 책 한 권 분량으로는 넉넉한 셈이다.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그러나 연습처럼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묘사와 대화와 등장 인물을 창조하는 모든 기술도 궁극적으로는 명료하게 보거나 들은 내용을 역시 명료하게 옮겨적는 (그리고 그 불필요하고 지긋지긋한 부사들을 안 쓰는)일로 귀결된다.

모든 소설이 실은 어느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을 믿는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굳이 믿는다고 떠들지 않아도 좋다. 대게는 그냥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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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삐(BB) 시리즈
최정화 지음 / 하빌리스(대원씨아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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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한명은 다리털, 보지털, 겨드랑이털을 씻을 때마다 면도한다. 털이 없어야 위생적이라나. 털이 오히려 인간의 살결을 보호해 주는거 아닌가? 

일본 지하철 전광판은 온통 제모 광고로 도배가 되어 있다. 도대체 왜? 여자가 털이 있는게 이상해? 

이런 나도 여름이 되서 민소매 옷을 입게 될때는 겨드랑이 털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털이 없어야 이뻐보일거 같고... 뭔가 겨드랑이 털을 보이면 '자기 관리'가 안되는 사람처럼 보일거 같고... 그나마 다리털을 밀지 않는 걸로 제모의 왕국에 대항하는 셈 치고 있다.


남자 다리에는 털이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고 여자 다리에는 털이 없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리고 내 다리에는 유독 많은 털이 나 있는 이유는 또 뭘까? 내가 내 다리털을 사람들에게 보여 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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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에밀리 파인 지음, 안진희 옮김 / 해리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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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강렬해서 읽기 시작했다. 첫장에 권김현영님의 추천사가 있어서 좋은 책을 골랐구나 싶었다. 첫장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의 간병부터 시작된다. 중간에 가면 10대 시절의 가난, 가출, 마약, 섹스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연대기적인 구성이 아닌 것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자극적이고 잘 팔릴것 같은 정교수의 10대 시절 방황보다 돌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게 좋았다. 한국의 여자 교수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여자 교수들 중 남편에게 맞는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으나 가정 폭력 미투는 나오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여자들이 어디까지 참을것인가 싶기도 하다. 

돌봄, 섹스, 생리, 임신, 거식증 등 여자들이 "여자"라서 겪는 일들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여성의 가치를 몸을 통해 규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자신의 몸을 통해 경험한 세계를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하고 세계에 의미를 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침묵을 깨는 일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침묵을 깨는 일은 우리가 자신의 취약성을 가지고 무엇을 하기로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취약성은 별개의 하나가 아니다. 치유도 별개의 하나가 아니다. 자기다움도 별개의 하나가 아니다. 이 모두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얽혀 있고 하나하나가 근원적이다.

경험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이 고통을 회피하지 않은 것은 한 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이 위험하고 두렵다고 느껴지면서도 ‘필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오랫동안 그토록 철저하게 부정해왔던 나의 일부들을 되찾기 위해 이 에세이들을 썼다. 그리고 이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에세이들을 썼다.

여성들은 자기 신체를 평가하는 의례에 매우 익숙하다. 우리는 주변의 여성들을 쳐다보고, 자기 자신을 쳐다보고, 그리고 비교한다. 우리는 동등한가, 우월한가, 열등한가? 이를 피할 수 있는 여성이 거의 없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의례에는 지독한 결속력이 있다. 이는 마치 부정적인 치어리더와 함께 사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몸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소리가 배경음마냥 우리의 귓가에 계속 웅웅거리며 들려온다.

나이가 나보다 많든 적든 수많은 남성은 내게 젊어 보인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 말이 칭찬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이 말은 절대 칭찬이 아니다. 젊어 보인다고 말하면 여자들이 좋아할 거라고 남자들은 생각한다. 그들이 보기에 여성에게 외모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젊은 외모는 최고의 외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젊어 보인다고 말할 때, 혹은 내가 너무 순진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때, 혹은 내가 종신 재직권을 가진 교수임에도 내게 학생이 아니냐고 물을 때, 이 남성들은 내게서 십 년이 넘는 경력과 전문성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칭찬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말은 사실은 즉각적인 격하에 불과하다.

학과장의 논평은 내가 강간에 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여성은 보이기만 해야지 의견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지긋지긋한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에게 자신이 속한 곳으로 돌아가서 입을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성차별을 인식하고 공격하고 바로잡는 일 모두가 오직 여성들만의 책임이 되는 것에 넌더리가 난다.

진정한 실패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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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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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는 책이다. 미치코 가쿠타니가 유명한 서평가란건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인터뷰도 안하고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 깐깐한 독자이다. 가쿠타니가 수전 손택의 책을 혹평해 서로 설전을 벌였던 일이 유명하다고 한다.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

마지막에 실린 정희진 쌤의 해제만으로도 이 책을 볼 가치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저자 관점을 반박하는 지점이 날카롭다.  

폭넓게 말해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를 부정한다. 지식은 계급, 인종, 성 등 다양한 변수의 프리즘을 통해 여과된다고 주장한다. ... 언어는 신뢰할 수 없고 불안정하다고 여겨진다.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온전히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행동한다는 생각도 무시된다. 우리 각자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은 "비숫한 조건, 습관, 관습으로 묶인 작은 사적 집단"에 틀어박혀 "사생활의 즐거움에 빠지"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지적하며 이런 자기 몰두가 더 큰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약화시켜 통치자들의 부드러운 전제정치에 길을 터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짓등가성 (정반대되는 두 논거가 논리적으로 동등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때 일어나는 논리적 오류)은 저널리스트들이 균형을 진실과, 의도적인 중립성을 정확성과 혼동하고, ‘양측‘을 모두 보여주라는 우파 이익집단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였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 등 과학 편에 서 있지 않은 집단들은 "많은 측(면)", "다양한 관점", "불확실성", "다양한 이해방식" 같이 대학의 해체주의 수업에 어울릴 법한 말들을 퍼뜨린다.

확증 편향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성급히 받아들이는 반면, 이의를 제기하는 정보는 거부할까? 첫인상은 지우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원초적 본능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이의 제기에 대해 지성보다는 감정으로 반응하고 증거를 신중히 검토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앎의 입문서인 이유는, 우리가 자명한 사실이라고 믿는 과학(normal science)도 규범, 즉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임시적인 패러다임이라는 인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풍자, 냉소주의, 미친 듯한 권태감, 모든 권위에 대한 의심, 모든 행동 제약에 대한 의혹, (진단하고 조롱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회복하려고 하는) 야망 대신 불화에 대한 아이러니한 진단에의 지독한 애호"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산이 우리 문화에 흘러 들어왔다고 월리스는 주장했다.

인간은 타인과 사회와의 부대낌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을 사는 존재다. 그러나 1인 매체 시대에는 자기가 자신을 규정한다. 자기도취, 자기 조작 시대다. 1인 매체는 모든 이들에게 ‘작가‘라는 부풀어진 자아(인플레이션 에고)를 부여했으며,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의 부의 양극화를 잊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계에 시간과 노동을 기꺼이 사용함으로서 슈퍼 부자들의 삶을 떠받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은 콘텐츠를 가진 ‘최고의 지식인‘만 필요할 뿐이다. 이것이 소위, 고용의 종말이다. IT 산업, 금융과 유통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사람의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목도하는 현실이지만, 러다이트 운동 때와 다른 점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지 않고, 자신을 해고한 시스템과 그 기계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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