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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소수의견
박권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7월
평점 :
박권일님의 칼럼을 자주 찾아 읽는다. 이 책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쓴 글의 모음집이므로, 지금으로부터 15년에서 10년전 이야기들인데도 모두 시의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구나 싶다.
청년 정치, 세대론 갈등, 일베 등 지금 나타나는 문제들의 뿌리 깊은 구조를 짤막한 칼럼안에 기가막히게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쓰는 박권일님의 글쓰기 스킬이 부럽다.
노동/경제라는 관점에서 이명박은 김대중-노무현의 충실한 계승자일 뿐이다. - P12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상식이 될 것이다 - P13
꼰대들이 꼰대일 수밖에 없는 건 인지능력의 결핍 때문이다.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면 반사적으로 보청기와 색안경을 착용한다. - P25
자기 삶이 구체적으로 변하지 않는 축제, 그것은 냉소와 탈정치만 낳을 뿐이다. - P34
한국 중산층의 의식은 늘 민중주의에 가까웠다. 정확하게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봉건적 마인드와 합리적 소비자라는 근대적 마인드의 결합이다. - P45
인간으로 하여근 자신의 비참함을 자발적으로 전시하고 경쟁하게 만드는 체제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선별하는 복지‘를 절대시하고 기부 문화를 덮어놓고 찬양하는 사회일수록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불행을 경쟁하고 시혜를 구걸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기기 쉽다. - P57
트위터는 텍스트를 분석할 시간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매체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 그야말로 즉각 반응해야 한다. - P77
냉소적 주체가 사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타블로 사태는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 P94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전자의 처지에 서면 필연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처지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 P105
예를 들어 학벌이나 돈과 같은 주류의 상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사실은 서울대를 못 나온 열등감 때문에 서울대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 P107
신실성sincerity과 진정성authenticity 같은 담론들을 동원해가며 정의justice를 주장하는 자의 자격을 따지는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이런 식의 태도는 기껏해야 주체의 윤리적 성찰 이상의 것을 말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냉소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에 정의의 내용, 이를테면 공정성fairness이 과연 이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유효하고 덜 유효한지 등에 대해 치열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 P113
소셜 미디어는 사회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자원‘이다. 이 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어떻게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순전히 그 자원을 주도적으로 점유한 주체의 역량과 결집의 정치적 계기에 달려 있다. - P151
공화국 시민의 소양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시민으로, 또 인간으로 대접받고 행동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 P217
한국인의 이 치열하다 못해 살벌한 생존경쟁을 추동하는 에너지는 결국 나도 "나도 ‘규칙을 초월한 사람‘ 내지 ‘규칙을 예외 적용 받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평등주의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 P236
어느 사회이건 지배계급은 자기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 ‘포장‘이 얼마나 교묘하고 설득력 있는가가 바로 지배계급의 역량을 재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유능한 지배 계급은 피지배계급의 ‘급소‘와 ‘성감대‘가 어디인지 귀신같이 파악한다. 대영제국의 신화는 무력으로만 이루어진 게 결코 아니었다. 식민지에 관한 방대한 지식의 집적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 - P254
1987년의 에너지가 탄생시킨 정치권력이 시장권력을 통제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피부로 절감했을 때, 생활인들은 현실을 깨닫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규율을 바꿔 적응하려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적응의 규율이 일종의 상식으로 일반화되었을 때, 이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적응하려 하지 않는 자, 혹은 집단에 대한 배제의 논리로 표현된다. 따라서 한국형 평등주의가 가리키는 것, 또는 그 필연적 결과물은 이것이다. ‘정치가 불가능해지는 지점‘, 그리고 탈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조건 - P264
자본 축적과 경제성장을 무한하다는 모더니티의 정신, 그리고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믿음. 무척 오래되었으면서도 서로 쌍둥이처럼 닮은 한 쌍의 신념 체계를 이제 포기 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 P313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가 일국 노동자의 생애 주기와 맞물리면서 특정 세대에 그 폐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 단순하게 말해서 그것이 청년 빈곤의 구조다. - P373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 저항의 주체, 명확한 목표, 기존 사회운동조직의 연대 없이는 누구나 동의할 만한 외국의 좋은 제도 하나조차 도입하기 어렵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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