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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조한진희(반다) 지음 / 동녘 / 2019년 10월
평점 :
친한 친구들에게 한권씩 사서 돌리고 싶은 책이다. 특히 내 주변의 싱글 여성들은 필수로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집에서 혼자 아플 때, 가족과 친구들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시스템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싸워야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건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상처받은 치유자 wounded healer들의 공동체다. - P8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제하듯이, 건강 중심 사회는 아픈 몸들을 배제하고 있었다. 아픈 몸들을 자책감의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 P11
질병을 삶의 일부가 아닌 배타적 대상으로 만든 사회다. 지배 권력의 필요에 맞춘 정상과 효율의 기준을 만들고, 거기서 벗어난 몸들을 모조리 차별하는 몹쓸 사회다. - P109
몸이 아프다는 건 모든 생명체에게 불안한 사건이고, 그 불안과 낯섦을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따라서 자신이 겪는 통증과 불편한 증세가 의구심의 대상이 될 때, 상처를 받는다. - P117
질병의 개인화는 생활습관에 관점을 집중시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와 구조의 문제는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심지어 아픈 이들은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 P134
남성성과 여성성을 설명하는 단어에는 강인함과 나약함, 문명과 자연, 정신과 육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등이 있다. 이러한 대비 구도는 ‘질병을 겪는 과정‘을 설명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질병을 경험한다는 것은 나약함을 경험한다는 것이고, 질병인 자연은 의학이라는 문명으로 다스려져야 하며, 아픈 육체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 P139
남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진통제, 수술, 완벽한 검사의 혜택 등을 누릴 가능성이 크지만, 여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우울증과 불안을 치료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는다. 같은 진단 결과가 나온 환자에 대해 여성은 항우울제를 처방받을 확률이 남성보다 82퍼센트 높았으며, 항불안제를 처방받을 확률은 37퍼센트 높았다. - P161
우리 사회는 여성의 몸을 스펙과 자본으로 여기며, 인구 대비 성형 수술 건수 세계 1ㅣ위를 차지한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몸을 평가하고 통제하며 서열화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여성들은 몸에 대한 수치심을 더 쉽게 내면화한다. 질병은 성별과 상관없이 몸이 겪는 사건이다. 그러나 여기에 들러붙는 몸 이미지는 여성 환자에게 더 많이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 P177
내가 선택한 삶의 가치나 정치적 실천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그런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깨달았다. 질병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차별이 작동하는 정치적 영역인지. - P180
남성의 성기나 몸은 ‘무기‘가 되어 남성이 옷을 벗는 것만으로도 여성에게 위협이 되고, 여성의 벗은 몸은 ‘눈요기‘가 되는 동시에 사진만으로도 당사자에게 엄청난 협박이 되는 이 문화적 비대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 P250
여전히 몸을 내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며 대상화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상적 몸, 건강한 몸, 표준의 몸‘을 설정하고, 그에 가깝지 못한 내 몸에 낙담했다. 나는 아픈 몸을 최대한 통제해서 어떻게든 건강한 몸으로 만들려 했다. 마치 장애인에게 재활을 통해서 최대한 비장애인과 가까운 몸을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몸을 소외시켰고, 질병은 나를 소외시켰다. 결국 질병과 몸은 분열할 수밖에 없었다. - P298
고통받는 이는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싶어 한다. 사회가 아픈 이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지만 않아도, 그 고통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만 있었고 아픈 이가 겪는 삶의 통증은 줄어든다. - P335
질문하고, 이야기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픈 사람을 대할 때 건강관리에 실패한 사람으로 다루는 시선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그게 시작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누구도 당신에게 아픈 사람을 간섭하거나 통제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감시원의 시선을 거두자. - P576
우리가 혼자 살다가 아프면, 사회는 어떡할래?라고 사회를 향해 묻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혈연관계나 친밀한 관계 등으로 배타적 경계를 나누지 않고도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다. - P589
의지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원경혈이 흐르듯, 노력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아프거나 힘없이 뻗어버리는 몸을 미워한다. 만트라를 외우듯 오늘도 말해본다. 이 몸을 미워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기를,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님을 잊지 않기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기대하거나 포기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기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건강한 몸에 압도되지 않고, 정상에 집착하지 않기를... - P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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