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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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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정치권의 외곽으로 밀려나는 대중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자의로 인한  의사표현 비참여가 아닌 타의로 인한 주변화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곧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시민을 '고객'으로 혹은 주권자에서 '자원 봉사자'로 여기고 있으며 본래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개인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책 표지에는 'DOWN SIZING DEMOCRACY'라는 문구가 성조기 위해 적나라하게 새겨져있다.  세계 최강대국의 국기에는 긴 줄에 다섯 사람이 매달려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다른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제목 위의 작게 새겨진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라는 문구는 이런 음울한 분위기에 외치는 작은 반향의 외침같다. 


미국정부의 '재창조'는 시민을 '고객'으로 재창조했다. 정부는 집단 동안보다는 에너지가 덜 드는 대안으로, '이해 당사자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쉽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했다. 정부 자신의 기능만이 아니라 대중 자체를 개인화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는개인민주주의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에너지가 덜 드는 대안'이라는 대목이 정말 흥미롭다. 민주주의는 유권자들의 투표로부터 성장해왔다. 그런데 현재 미국 정부는 이런 시민들의 참여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즉 에너지가 덜 드는 대안을 찾은 것이고, 시민은 '고객'으로 재창조 되었다. 정부는 고객에게 집단 행위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플랫폼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론 주도층' 주위로 시민들이 결집할 기회를 줄였다. 시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근대 민주주의를 거치면서 형성된 '시민권'이 가지는 본질, 즉 피치자와 국가의 수직적관계를 넘어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묶어 줄 수 있는 혈연, 신념, 문화적 유대 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시민의 동의없이 시민을 '고객'으로서만 존재하는 플랫폼을 만들도록 놓아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근대 이후 시민에 대한 정부의 의존이 절대적으로 약해져왔다.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지하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하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열정적인 시민들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되어 버렸다.
정말 무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이상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결집은 정부의 목적을 방해할 장애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니. 각자의 이익을 좇아 '개인'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그 국가 자신의 운영 이상으로 원대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개인민주주의는 시민권의 중요한 특성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더 이상,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기업같다. 다만, 단지 그뿐인것인가? 시민들은 개인화되고 있다기보다도 '주변화'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원제 <How America Sidelined Its Citizens and Privatized Its Public>처럼.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은 오히려 대중참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것이 통치를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옛날과 같이 시민군, 시민행정관, 시민 납세자의 협력 없이도 통치가 가능해졌다. 곧, 유권자의 표를 버리는 것도 쉬워졌다. 저자는 유권자의 입장 고려없이 미국의 양당이 충분히 서로를 공격하고 몰아낼 수 있었던 예시를 든다. 정말로 '유권자는 미국 정치에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흔적기관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으로써는 '과세방법의 진화', '법원에서의 소송' 등의 무기가 있었다. 법원은 더이상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자리가 아니라 소송으로 얼룩지고, 정치는 협소한 이익을 좇아 소송으로 만들어진 공모된 거래로써 법원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저자는 대표 없는 과세의 중요 사례로서 담배 협정에 관한 속내를 생생히 보이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의 일부가 배제된 채 법적절차를 통해 승인된 것이라 지적한다. 의사결정의 외곽으로 밀려난 것이다.

최근 수십년 동안, 한때 정치투쟁을 위해 유권자 대중을 조직하고 활성화했던 정치 엘리트들이 불행하게도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수단을 발견해 왔다. 그들은 법정, 관료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 '내부자' 이익집단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책 전반에 계속해서 이런 주장이 숨어있다. 환경단체의 '개인화'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환경단체는 대중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권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 같은 추상적 이해관계를 다루는 환경단체 대표들, 대리인들이 의도를 왜곡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환경문제는 물론 피고, 원고가 분명하지 않은 기근, 복지 등의 분야에도 해당되고 똑같이 이들을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전체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과 의사결정이 결국 법원에서 소송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환경, 교육, 미관, 종교 등은 중요한 '공적' 관심사이지만 대표자들은 소송에서 특수한 입장을 보여주기(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쉽다. '공익에 관한 이런 정의들은 자칭 대변인들과 판사 사이의 심의 과정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지난정부에서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인천공항 민영화, KTX 민영화 등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관심을 가지고 알아보아야겠다.)여론은 부정적인 입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민영화는 정부의 업무를 시장으로 넘기는 한 방법이다. '민영화는 권력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얻게 해주는 도구이며, 일단 이런 접근이 허용되면 그 권력은 납세자들에게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행사되곤 한다.'라 걱정하는 저자의 말은 미국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라기 보다도 정작 우리 정치에 대한 노파심같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하는가?>처럼 점점 개인화되고 있는 정치참여, 주변으로 밀려나는 대중이 다시한번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할지' 생각 해보아야 할 때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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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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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이름 석자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바로 '시골의사'가 아닐까. 그처럼 책 중간중간 사진에서 보이는 그의 이미지는 수수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어울리는 허름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은 딱 그리스의 모습을 그 스스로가 잘 담아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스는 최근에 재정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던 터라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저자가 그리스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 지 되게 궁금했었다. 이 시점에 그리스를 다녀온 그라면 역사와 유적에 대해서도 사회적 문제를 엮어 그의 생각을 잘 솎아 설명해주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품고말이다. 책을 완독한 이후에는 그런 생각이 모두 깔끔히 접혔다. 그는 시종일관 담백한 문체로 그리스의 옛 역사를 되짚어 간다. 공간적 배경을 따라 이동하는 발걸음과 독자의 시각은 그의 역사해설과 신화이야기에 취해 옛 유적을 걷는다. 그리고 현지에서 역사와 유적을 지키는 이들과 의사소통하고 느끼는 생각이 여과없이 책에 담겨있다. 

 

20년간 품어온 꿈을 실현할 때의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꿈이라하면 사람에따라 입장과 요구치가 많이 다를  수 있겠으나, 진정한 의미로써의 꿈이란 과연 박경철의 그것이 정말로 이상적이다. 진정한 꿈이란 죽기직전 침대에 누워 생각할 적에 정말로 하지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가득차게 되는 그런 일이 아닐까. 죽기 직전에 어렸을 적 꾸었던 동경과 그리스 땅을 밟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할지언정 외제차를 타거나 100평짜리 집에 살아보지 못한것에 대한 후회를 짚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를 읽던 20여년 전의 전율을 서두에서 전한다. 덧붙여 '이 여행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인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라며 그에대한 무한한 신뢰와 여행의 절실함을 설명해준다. 그는 스스로 지천명의 나이를 넘은 늦은 시기라 많은 아쉬움이 든다고 하였지만 그 역시 3자의 시각에서는 부러울 뿐이고 그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존경하는 대문호의 삶을 되짚어보고 현지땅을 밟는 것이 나의 소망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저 '인간'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꿈을 잊지않고 좇아갔다는 것은 3자에게도 행복의 풍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나도 그런 꿈을 잊지말고 품고 살며, 결국엔 좇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행복 역시 전해진다.

 

한껏 시위를 먹인 활 줄을 놓듯 자신 앞의 운명을 도끼로 쪼개며 나아가는 영웅의 용기에서 영감을 얻는 조각가의 끌로, 미술가의 붓으로, 시인의 펜으로 영웅은 영원히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책 전반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우리는 공간의 이동을 따라 발을 옮겼을 뿐인데, 어느새 2000년의 시간을 건너왔다. 신화는 고대그리스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는 그들을 유적에 더해 감상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당시의 예술가들이 조각으로, 미술로, 글로 신화와 현대를 이어준다.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매끄러운 인과관계의 이상이다. 그리스 역사와 신화는 유적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현대사회의 우리는 그 사이 예술가들의 노력없이는 그리스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헤라 신전은 역사를 품고 제자리에서 2600년을 굳건히 지켜왔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니케상의 몸매의 관능성으로 부터는 이미 신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스파르타 중앙광장은 더이상 예전같지않고 황량하며 전사상의 무릎꿇고 한 쪽 방패로 몸을 가누는 모습으로부터는 연민만이 느껴진다. 

 

'모든 선의를 베푸는 것이 친구다.' 저자 박경철은 끊임없이 책에서 니코스와 소통하며 그의 묘소에 도착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라고 새겨진 그의 묘비는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저자는 낯선 외지땅에서 그의 인생멘토에게 한국식 존경의 의미로 절을 올린다. 이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는 현지인에게 'He's my hero'라는 짧은 대답만으로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낯선 여행 속에서 낯익은 우정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여행기라 하면 김훈 작가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이 가장 마음속에 크게 들어 차있다. 그는 자전거로 전국각지의 자연을 누비며 역사를 짚고 가장 한국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의 문체는 사족이 없으며 깔끔하고 칼칼하다. 처음으로 진정한 여행의 의미와 소망을 품어본 계기가 되었는데, 박경철의 이번 책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준 또 하나의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문체는 비유가 짙고 담백하다못해 느끼하기까지 하지만 그리스의 감성을 잘 담아낸 그는 앞으로 그리스 여행기를 계속 써갈 예정이라고 한다. 400여쪽의 책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긴 여정의 서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고 현지의 어떤 모습을 들여다 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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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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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알라딘 신간평가단 12기로 활동중인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의 셜키입니다.


2012년 1월 추천신간으로 '사이언스 이즈 컬처'가 선정되었습니다. 신간추천을 써낼 때 왠지 이 책이 될 듯한 감이 왔는데 어김없이 선정되었고, 그것도 이 책 한권만 선정되었네요. 동아일보 2012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1월 신간으로 추천된 '사이언스 이즈 컬처' 라는 책에 대한 생각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과학의 지평을 넓힌 책이라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정확히는, 과학이 중심이 되는 토의를 넘어 인문학, 예술, 철학, 정치 등등 사회전반의 이슈에 대해서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명의 전문가가 한가지 주제에 대해 동조하기도, 반박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냅니다. 책에 따르면 [로런스 크라우스 vs 나탈리 제레미젠코 : 누가 과학을 하는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만들어져있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44명의 전문가들이 22개의 주제에 대해 귀중한 의견들을 주고받습니다. 



▶피어나는 르네상스를 소망하다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일단 어마어마한 라인업입니다. 지금까지 어디에도 이런 라인업으로 토론과 토의를 나눈적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과학과 인문학의 르네상스라는 소망아래 무려 22개의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어 그 자체로도 책의 오라가 풍기는 듯 합니다. 영화감독, 심리학자, 우주학자, 소설가, 신경과학자, 가수, 물리학자, 발명가, 고고학자, 예술가, 저술가, 인류학자, 수학자, 큐레이터, 진화심리학자, 다큐멘터리영화제작자, 저널리스트,인지신경과학자, 우주생물학자, 게임개발자, 건축가, 정치학자, 역사가, 도시계획가 등등 다양하고 화려한 연사들의 직업만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거대하고 위대한 자리가 만들어졌던 것일까요. 저자인 '애덤 블라이'는 불확실성의 시대인 오늘날 키워드는 바로 '과학은 문화'라는 신념아래 저널 '시드(seed)'지를 만들고 '시드 살롱'을 개설하여 혁명의 첨단에 서있는 이들의 생각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진화철학, 의식, 시간, 설계와 디자인, 객관성과 이미지, 기후의 정치학, 전쟁과 기만, 꿈, 픽션, 음악, 형상, 인공물, 과학과 대중, 인간, 프랙털 건축, 윤리, 자유의지, 진화와 미래의 삶, 복잡계망, 소셜 네트워크, 무한성의 물리학, 더 똑똑한 인프라]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들을 2010년에 이르러 묶어낼 수 있었습니다. 


인류는 이제 이러한 르네상스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문턱에 서 있다. 지난 50년간 과학은 인간의 삶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사고방식까지 전체적으로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여전히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피어나는 르네상스에 대한 책이다. - 애덤 블라이


이런 그의 소망의 피력은 결국 실현되었고 그가 과학과 인문학의 르네상스라는 지평을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인류가 21세기를 맞이한지도 어느덧 10여년이 더 넘었습니다. 이 책의 연사들처럼 현재 인류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전문가들은 지난 30년을 전문화작업에 몰두해왔고 어느덧 60~70대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르네상스란 가만히 있어도 학문이 스스로 결합점을 찾아  

융합의 과정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각지에 흩어져있지만 시드(seed)지의 창립자인 애덤 블라이처럼 이를 통합할 인재들이 21세기에는 필요합니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지난 30년을 선배과학자들이 전문화과정에 힘을 쏟았다면, 앞으로 30년을 새롭게 열기위해 노력하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과학의 르네상스를 위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21세기 과학의 르네상스의 지평을 열기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융합하려는 시도들도 중요하지만, 전공 전선에서 개개인이 르네상스형 인재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를 하기도 전에, 불과 과학 내부에서도 소통이 어려울만큼 과학은 심히 전문화되었으며, 전문가들은 다른 분야에 대해 잘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시대를 책임질 세대들은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한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전반적으로 제너럴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노력과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된 한국과학의 르네상스


하지만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을 육성하고 그런 행동문화를 만드는 데 한국은 지금까지도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대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대학생들은 폭넓은 분야에 시각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대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들으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보다 학점관리나 보여지기위한 스펙쌓기에 몰두한지 오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생들 개인을 비판하고 르네상스형 인재가 되기를 강조하는 것보다는 세태 자체를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과학이라는 구심점에서, 이공계 대학생들은 더 큰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공계 이공계의 대우에 대해 말이 많은 현 시점에서 그나마 한가지 전문화 과정에 발을 담기조차도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의대로, 의전으로의 진로를 변경하는 이공계학생들도 많고 연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기도 하죠...)


한국 과학계, 정확히 말하면 정치계에서 과학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학의 르네상스를 만들기에는 여전히 정체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보여주기 위한 실적 내기에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내실없이 형식과 실적만추구하고 르네상스로 가는 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국제적 기업 삼성 등도 매출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해외로 핵심기술에 대해 로얄티를 많이 지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국가의 과학기술을 이끄는 대덕특구 역시 기초과학역량 증진보다는 기술개발과 이전에만 힘을 쏟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기초과학이 부족하다라는 고질적인 결론으로 도달하는 데, 최근 나로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이면에 비춰진 연구원들의 열악한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구 교과부에서 많은 사업을하고 있기는 합디다만, 대부분 진입장벽이 높은 프로그램 위주거나 깊이있는 인재육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습니다. 제너럴리스트가 되기위해 막 날개를 펴는 대학생들이 직접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문화와 사업은 많이 부족합니다. 또한 그런 시도들을 장려하는 학내 문화형성과 지원들도 확대되어야 하겠지요.


▶전체적인 리뷰 (총평)


과학의 르네상스가 중요하다, 융합과학의 시대다 말이 많지만 10여년전부터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과학잡지인 시드지를 만들어 이런 담론의 자리를 마련해온 애덤 블라이의 소망과 노력이 절실히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는 책 앞의 긴 서문을 통해 그의 이런 소망을 다시한번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2개의 주제에 대한 44인의 생각을 담아내기에는 한권의 책이 너무 짧았습니다. 그래서 흥미있는 챕터들은 메모를 해두고 관련 서적을 따로 찾아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동안 다양한 경험을 가상으로 체험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과학테두리를 

허물고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굳이 다양한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않아도 간접경험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경계의 접점을 녹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회와 시도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아지길 소망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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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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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알라딘 신간평가단 12기로 활동중인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의 셜키입니다.


2012년 12월 추천신간으로 '죽음이란 무엇인가' , '눈물 닦고 스피노자' 라는 두 권이 선정되었었습니다. 이번 달 도서는 두 권 모두 평소 전혀 일면이 없던 철학 쪽 분야라 그저 읽는 것은 물론 읽고 이해하는 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12월 신간으로 추천된 '눈물 닦고 스피노자' 라는 책에 대한 생각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의 책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17세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스피노자와 그의 저서 '에티카'에 대한 내용을 '김철수'라는 인물의 스토리에 대입하여 소설적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려울 법한 철학적 개념을 나름 가벼운 분위기로 풀어나가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구성이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우울증, 피해망상증, 강박증, 공황장애, 공포증 등 14가지의 다양한 정신적, 심리적 질병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치유하는 식의 구성상 목적을 띠고 있습니다. 14개의 챕터에서 주인공 김철수씨는 주변에서 여러 정신적 질병에 관한 상황을 인지하고 그것을 스피노자와 대담하는 식으로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한 개념을 풀어주는 형식입니다. 책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라는 부제를 친절히 붙여놓았습니다. ( 철수씨와 스피노자와 시공간을 거슬러 고시원 화장실 거울을 통해 대면한다는 식의 설정이라던지 스토리가 많이 부족하여 소설이라기에는 무리도 있습니다만.)



▶정신질환들과 김철수씨의 삶


김철수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고시원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한편으로는 현재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벌이를 전전하고있는 인물로서 한국사회의 쓸쓸한 청년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이해가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목적 외에도, 소설적 전개(김철수씨가 14가지의 챕터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식) 바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안타까운 점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은 서로다른 '정신질환'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공포증, 피해망상증, 우울증 등의 심리적인 문제가 우리 사회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함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그렇다면 왜 하필 스피노자의 '에티카'일까요? 에티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 세대의 사회 모순으로부터 발병하는 정신질환들을 치유하고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것일까요? 


스피노자는 1632년 네덜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신생국가로써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적, 공간적인 영향 덕에 스피노자의 철학주의는 '자유'와 '예속에 대한 반대'로 흐르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예속을 벗어난 자유의 철학을 주장했습니다.


특히 스피노자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예속되고 빠져버리는 것들에 대해 경계를 하고 의문을 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것인 양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우고 한 사람의 허영을 위해 피와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영예라 믿는다.” 라며 미신을 비판하고 어떻게 하면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속으로 벗어날 수 있을지' 에 대한 그의 생각과 정리들이 '에티카'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많은 한계들은 우리의 경제적 여건과 꿈을 제한하고, 개인의 질서와 마음을 예속시킵니다. 이것이 심하면 정신질환으로 발전하게 되구요. 반대로 이런 이유로 예속된 사람들이 가지는 정신질환을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통해 치유하고자 합니다.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책을 읽다보면 14개의 챕터에서 공유하는 개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실상 근본적인 해결법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바로 '사랑과 욕망의 원리', '내재적 역능', '혁명','변용'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개념은 서로 얽혀있는데요, 먼저 '사랑과 욕망의 원리'란 '혁명' 또는 '변용'을 위한 필수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으며 오직 사랑과 욕망의 원리(형이상학적 용어라 짧은 경험탓에 참 뜻은 아직 마음에 와 닿지 못한듯 합니다.) 에 의해서만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욕망의 원리'에 의해서 우리의 삶과 세계를 자기조직화 할 때 치유의 경로가 개척된다고 스피노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의 삶과 세계를 자기조직화하여 치유의 경로로 향하는 과정들을 그는 '혁명'이라 부르고 '변용'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혁명'이란 단어는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데요, 국가를 전복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혁명만이 아니라 '생활 속 미세한 관계망의 변화' 역시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데에 있어 중요합니다.


▶삶의 긍정과 자유의 철학


공포의 정서와 예속의 상태에 익숙한 시대에 스피노자는 이러한 긍정과 자유의 철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그의 저서 '에티카'는 그의 살아 생전에 출간하지도 못했습니다. '에티카'로부터 인용된 여러 정리들이 챕터마다 나오는데, 최종적으론 '삶의 긍정과 자유의 철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서도 마지막 장에서야 그 내용이 마무리격으로 나오구요.


진정한 자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신, 자기 자신의 내재적 지평 등에 대한 자유를 주장해온 그는 마지막으로 '공포'에 대해 그의 자유의 철학을 펼칩니다.


  • 신, 즉 자연이 지닌 질서를 이해하는 자는 신을 사랑할 수 있을 뿐 결코 복종할 수 없다.

  •  삶을 긍정하는 자만이 죽음이 주는 공포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 공포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한편, 그는 '삶의 긍정'을 대단히 긍정하며, 희망이든 공포든 '예속'을 빼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관하여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사물의 표상상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일 뿐이다. 이에 반하여 공포는 마찬가지로 의심되는 사물의 표상상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슬픔이다. 그런데 만일 이들 정서에서 의심이 제거되면 희망은 안도가 되고 공포는 절망이 된다. <에티카 3부 정리 18 주석2>


이 내용은 상당히 쇼킹했습니다. 결국 희망과 공포는 다를 바 없으니 공포에 대해서도 특별히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존재하는 동안의 '삶 자체의 긍정'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치유의 길을 걷는 방법이며 곧 여러 심리적 질환으로부터 자신의 내재적 지평을 사랑과 욕망의 원리에 입각하여 변용시켜 혁명에 도달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희망과 공포는 그 개념은 같다지만 그 욕망의 크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생산과 긍정의 에너지가 자신의 삶의 배치를 바꾸고 미래로 가는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합니다. 이를 '삶을 재배치'한다고 하며 미래로 달려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러 심리적인 고민들로 무기력하고 우울하신가요?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을 생각해보면서, 죽음과 예속에 대한 고민을 떨쳐내고, 삶 자체를 긍정하고 '나'를 바꿔가는(혁명!)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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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하세요! 알라딘 신간평가단 12기로 활동중인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의 셜키입니다.


2012년 12월 추천신간으로 '죽음이란 무엇인가' , '눈물 닦고 스피노자' 라는 두 권이 선정되었었습니다. 이번 달 도서는 두 권 모두 평소 전혀 일면이 없던 철학 쪽 분야라 그저 읽는 것은 물론 읽고 이해하는 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12월 신간으로 추천된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대한 생각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 표지 디자인, 책의 두께, 책의 제목 그리고 전반적인 외관상 분위기만 보아도 단 번에 마이클 샌델 교수의 화제작 '정의란 무엇인가' 와 그 느낌이 비슷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 저자 셸리 케이건 역시 마이클 샌델 교수처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철학자이기도 하구요. 마이클 샌델교수가 하버드에서 '정의'에 관한 뛰어난 수업을 계속해오고 있었듯이 케이건 교수도 예일대에서 17년 연속 교양 철학강좌 'DEATH' 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혹여 이런 이유들로부터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느낌을 기대하고 책을 폈다면 정말 많이 놀랄수도, 혹은 실망할 수도 있을 법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만큼 논리전개 방식도 판이했으며, 케이건 교수는 그만의 언어로 '정의'와는 또 색다른 '죽음'에 관한 논의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 


누구나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와 존재, 그리고 최종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혼자서 고뇌의 고통에 빠지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뭘까? 난 어디서 왔을까? 난 누구이며 뭘 해야 하는가? 여기 왜 존재하는 것인가? 등등 어찌보면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사실 이 책에서 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병목되어있던 철학적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주길 원하는(대부분의 독자들이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사람들은 약간의 실망을 느끼고 어려운 철학적 논리에 그만 흥미를 잃어 책을 덮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빈틈없는 탑을 쌓아가듯 기본적 구성과 기승전결식으로 구성된 챕터들을 하나하나 따라 읽어가다보면 그것이 바로 철학의 방법이며 철학의 참맛에 빠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케이건 교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최종탑을 쌓기 위해 철저히 철학적 논리전개 방식에 따라 여러가지 개념을 도입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반박하기도 합니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존재의 고뇌와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을 해결해주는 심리학 치료사는 아닙니다. 책의 표지에서도 나와 있듯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 즉 철학적 단계를 따라 이성과 논리라는 현미경을 가지고 죽음과 삶을 풀어 해석하는 일종의 이론이자 정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논리를 따라 생각을 다져가다보면 우리의 본성적인 물음들에 공포와 회의를 가지기보다,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주의와 이원론


그렇다면 기승전결식 전개와 어떤 주춧돌을 쌓으면서 그가 논리를 전개하는지 알아봅시다. 죽음과 삶에 대한 모든 논의에 앞서서 물리주의와 이원론에 대한 개념이 필수적입니다. 물리주의는 영혼이란 없다, 즉 인간은 육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을 하며, 이원론에서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 두가지 모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두 시각에서 육체의 존재는 모두 인정을 하며, 영혼의 유무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일단 저는 '영혼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제일 궁금했습니다. 그를 증명하기 위해 케이견 교수는 '영혼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원론자들의 입장들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은 물리주의자라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양쪽의 입장과 이견을 모두 소개하면서도 이원론쪽의 근거는 타당하지 않고~ 식의 내용이 많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책 전반부에 걸쳐 그는 이원론자들의 '영혼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주장과 근거 그리고 비유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두 조목조목 반박하며 따라서 근거가 부족하다~ 타당치 않다~ 는 식으로 물리주의에 대한(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을 굳혀갑니다.(책은 모든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론 그의 의견을 위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그런데 '죽음'을 조명하기에 앞서 '나'가 도대체 뭔지, 존재의 여부에 대한 물음에도 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에 앞서 존재는 필연적이니까요. 케이건 교수는 여러 SF급 상황들과 비유들까지 들어가며 자신이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니면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는지, 아니면 욕망, 기억, 기쁨 등의 개인의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인격'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지에 대해 주장을 펼칩니다.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에 대한 물음은 그에게도 확고한 믿음이 부족했던 걸까요. 각 경우에 대해 정말로 참신한 비유들을 들고 다시 정말로 참신한 비유로 반박을 했지만 챕터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요약을 해버립니다.


내가 죽고 나서 내 몸이 부활하거나 내 인격이 이식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존재에 대해 확고히 규명하지는 못했지만(그가 논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영혼, 육체, 인격 세 주장이 너무 팽팽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이 문제를 내려두고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해 논의가 시작됩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책 절반을 이런 기조적인 주춧돌을 쌓는 데 투자한 뒤 제 7장에서 비로소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등. 죽음의 개념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가치와 기회비용,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공포와 더 나아가 영생은 가능한지, 그렇다면 영생은 과연 행복한가? 에 대한 물음까지 기발한 비유들과 기승전결식 전개는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격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심리가 아닌 철학이란 도구로 다루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더욱 더 빛나기 시작합니다. 죽음을 그저 공포의 대상으로, 의문의 대상으로 여기고 무기력함에 예속되는 것보다는 철학적으로 이론과 정리를 전개 해나가다보면 '죽음'이란 대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령 '죽음이 왜 나쁜지'에 대한 물음에서는 '박탈 이론'을 도입하여 설명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누리던 행복, 기쁨 등을 박탈 당하기 때문에 죽음이 존재에 비해 나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그는 되받아 칩니다. 만약 죽어서 우리가 존재 자체를 하지 않는데 존재할 때의 소유에 대해 소실감을 느끼는 것을 나쁘다는 식의 점수로 매기는 것은 개념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쓰고보니 횡설수설이네요. 역시 철학자들은 한줄의 개념을 가지고 온갖 비유와 쉬운 언어로 , 거창한 언어로 풀어쓰기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식으로 다시 반박합니다.


예를 한 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제 12장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에서는 죽음의 특질을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죽음의 필연성, 죽음의 예측불가능성, 죽음의 편재성 이라는 특질을 들면서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우리에게 무거운 것임을 설명합니다. 일종의 공포감으로부터 비롯하는 심리적 불안감과는 달리 죽음의 무거움을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삶을 향하여


그렇다면 피할 수 없고 그토록 무거운 죽음이라는 문제를 짊어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는 제 13장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을 통해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철학적 해답' 을 제시합니다. 마무리로는 '자살'에 관해 과연 죽음과 어떤 관계이며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마무리 격인 에필로그에서는 철학적 사고를 잠깐 벗어나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인생선배로써의 조언을 해 줍니다. 


~중략

사실 영생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를 거대한 미스터리, 너무 두려운 나머지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코 합리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죽는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게 얼마나 놀라운 행운인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중략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이 책을 덮고 나거든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다시 사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500여쪽여 걸쳐 죽음에 대해 철학적 전개를 했지만 부족했던 죽음에 대한 감성적 대면을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모두 쏟아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비로소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얘기해주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의 강의실에서 마지막 수업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감동적이며 애틋한 마무리였습니다.


그는 결국 그런 얘기를 하고자 장장 500여쪽에 걸쳐 죽음을 생각하고, 직접 대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철학적인 사고는 비록 지금은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많은 독자들이 치부할 수 있겠으나, 비로소 이런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 뒤에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고, 초월적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과 직접 대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셸리케이건 교수가 보여 준 가장 끔찍한 주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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