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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의 힘 - 윤리학-정치학 잇기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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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가담하지 않거나 폭력을 방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격적‘인 비폭력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사람, 장소, 환대>와 이어지는 면이 있어 즐겁지만 개인적인 상황때문이 그저 즐거울 수만은 없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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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리뷰로 봐야하는 것인지 일상으로 봐야하는것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일상으로 분류했다.


이번 주말은 연휴였으므로, 오래도록 끌고 있었던 책들을 정독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 중에서 읽으려면 집중이 필요한 <비폭력의 힘>을 먼저 꺼내들었다.


인문학 서적들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등만 봐도 왠지 지적 허영심이 차오르고,

그것을 읽고 있는 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들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구간 구간이 너무 많고,(순전히 재미로 놓고 보자면)

아무리 내 자신을 다잡고, 끌고 가더라도, 나 자신의 무식이 너무 깊어 

당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 이야기를 계속 몇 페이지나 읽고 있으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많은 경우,

별다른 설명 없이(아니면 작고 긴 각주로 대강 설명하고), 마치 이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 듯이 본인의 논지를 계속 이어가면 어느새 나는 소외당하고 만다.

하지만 도태되기 싫어, 나도 알고 싶어, 하는 심정으로 기어코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다.

아마,

이렇게 읽어낸 많은 인문학 서적들의 반도 다 이해하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읽어낸 인문학 서적이 무슨 내용인지 우리 아들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면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길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비폭력의 힘>을 읽었다.

그래도 주디스 버틀러는 비교적 잘 읽히고,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말에 2호기 녀석이 친구들과 피씨방을 갔다가 노래방을 갔다가 고기 부페를 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것도 화가 났지만, 노래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는 받지 않으면서 바로 카톡으로 대답을 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이 새끼가 안 맞아봐서 그래,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라는 소리가 나왔다.


<비폭력의 힘>을 읽으면서, "맞아야 정신차리지!"라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자니 또 한번 자괴감이 몰려 왔다.


맞아야 하는 짓은 과연 무슨 짓일까.

어디까지가 맞을 짓이고, 또 어디까지가 맞지 않을 짓인가.

내가 낳았다고, 나한테 때릴 권리까지 있는 것일까.

이번에 때리면, 다음에는? 다음에는 더 많이 때려야 되는 건 아닐까?

때리면, 정말 말을 잘 듣는 걸까?

말을 잘 듣는 다는건 어떤 상태인가? 아이가 행복한가? 내가 행복한가?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질까 염려된다고 하면서 그냥 내 말에 고분고분한 자식을 원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는다면, 언제까지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걸까?

나중에 아이가 커서 "너는 언제 너 알아서 살래?"라면서 혼자서도 잘 하라고 강요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부모가 처음이라,

또 아이도 사춘기가 처음이라

모두가 혼란스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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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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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지난한 여자의 인생사여. 결국 삶은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지나가는 것인가. 바쁘게.ㅜㅜ 예전에 읽었을 때랑은 달리 이순일에게 감정이입 당해서, 나는 너무 그냥 마음이 아팠다. 이제 엄마의 인생에 이입되는 시기가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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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몸을 쓰는 일'을 하지 않으므로, 몸에 대한 강박이 좀 사라졌지만,


'몸을 쓰고', 또 '보여 줘야'하는 일을 했을 당시에는 매일 같이 몸의 무게를 재는 강박이 오래도록 있었다.


운동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열심으로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의 몸과 얼굴을 평가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짐작한다.


강사가 조금만 살집이 있어도,


"자기 몸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누굴 가르쳐?"라는 식의 평가가 대번에 돌아오는 것.


하지만 운동을 하는 목적을 생각해보면 건강하고, 바른 몸을 만들기 위함인데, 왜 다들 날씬하고 예쁜 것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여 요가 강사 생활을 10년 동안 했던 나는 그 때의 강박으로 인해 요가 강사 생활을 그만 둔 뒤에는 몸 쓰는 것을 1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우울한 일이다.


얼마 전,

내가 마음으로 좋아했던 요가 강사 분이 세상을 떠났다. 

평소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이 친구, 좀 위험한데?"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종종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걱정을 표현할 순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외모와 몸매와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결국 불행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을 보며 일부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리는 요가를 가르치고 있으면서 결국 자기 마음 하나 돌보지 못했다"며 악플을 달았다.


범죄자의 잘못을 법으로 심판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판사라고 해서, 본인이 범법자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얼굴 큰 아저씨가 지금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펴주고, 몸을 돌보아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자신의 마음까지 잘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질병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제 나의 몸과 외모는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대상이 아니므로(물론 이전에도 아니어야 했다)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아직도 밖에서 술을 마실 때면, 좋은 안주를 앞에 놓고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강박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오직 물만을 마시며 술을 마셨는데, 그에 비하면 아주 발전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제 나이가 들어 물만 마시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많이 마실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려,, 했으나, 

결국 묵은지 김치말이 김밥 1개를 잘라 먹으며 소주 2병을 마셨다.




그래서 결과는?



개 취함....ㅡ.ㅡ


일요일 전체를 머리를 들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날려 버렸다.

아..... 좀 먹자. 먹어!!!

 

그 와중에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어서, 잠자냥님의 서재에서 보았던 책을 다운받아 읽었다.

나이듬, 늙음, 그게 뭐던지간에 내 몸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술을 예전만큼 많이 마실 수 없고, 예전 만큼 많이 마시면 .. 탈이 난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밤이 다 되어서야 겨우 기어 나왔다.


침대에 마치 허물을 벗은 것처럼 몸 자국이 나있다.


아. 주말이 통채로 날아갔다. 허무해.


이번주는 좀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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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 드는 존재 - 멋진 주름을 만들어 가는 여자들
고금숙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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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젊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잘 늙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나이는 그냥 누구나 똑같이 들어가는 것이니, 어떻게 뭘 잘 하기 보다는 그냥 잘 하던것을, 좋아하던 것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그냥 탄탄히 다져가는 것이 잘 사는 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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