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2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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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레스 염병할 변태 할아버지야!

"내가 이렇다면 당신도 이렇습니다. 이것, 즉 염병할 놈이라는 게 인간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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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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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아주 순수의 극치, 자연과 관련됐을거 같았는데
그 예상을 아주 보기좋게 날려버린 김사인 시인의 시집..
이 전 시집인 가만히 좋아하는...도 같은 맥락인가.. 일단 시어를 쓰심에 있어서
상당히 괴팍하다고 느껴졌다.
옮겨 적는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다 시들이.
이 시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건 죽음이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 죽은자에 대한 그리움, 죽은자에 대한 비통 등 4부에 걸쳐서 주변 문인이나 혹은 알고 지낸 이웃,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특히 3부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시인의 고통이 시어들을 통해서 나까지 괴롭혀댔으니까...
암튼 이 시집만 놓고 보자면 김사인 시인은 멀리하는걸로...
가만히 좋아하는은 볼거지만. 휴ㅠㅠㅠ


+)
다시 돌아보니 내가 그 격정적인 시들에 너무 치였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줄쳐둔 시들을 찾으려 다시 돌아보니 그렇다.
그래도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에이 시브럴' 인것에는 다름이 없다.
너무 내 얘기 같은것...


달팽이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풍선

한번은 터지는 것
터져 넝마 조각이 되는 것
우연한 손톱
우연한 처마 끝
우연한 나뭇가지
조금 이르거나 늦을 뿐
모퉁이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많이 불릴수록 몸은 침에 삭지 무거워지지.
조금 질긴 것도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네.
모퉁이를 피해도 소용없네.
이번엔 조금씩 바람이 새나가지.

어린 풍선들은 모른다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뽐내고 싶어지지
더 더 더 더 커지고 싶지.

아차,
한순간 사라지네 허깨비처럼
누더기 살점만 길바닥에 흩어진다네.

어쩔 수 없네 아아,
불리지 않으면 풍선이 아닌 걸.

둥근 등

귀 너머로 성근 머리칼 몇을 매만져두고
천천히 점방 앞을
천천히 놀이터 시소 옆을
쓰레기통 고양이 곁을
지난다 약간 굽은 등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가만히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세상 쪽으로는 순한 언덕을 내어놓고
천천히 걸어 조금씩 잦아든다
이윽고
둥근 봉분 하나

철 이른 눈도 내려서 가끔 쉬어가는

먹는다는 것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에이 시브럴

몸은 하나고 맘은 바쁘고
마음 바쁜데 일은 안되고
일은 안되는데 전화는 와쌓고
땀은 흐르고 배는 고프고
배는 굴풋한데 입 다실건 마땅찮고
그런데 그런데 테레비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재방송하고
그러다보니 깜북 졸았나
한번 감았다 떴는데 날이 저물고
아무것도 못한 채 날은 저물고

바로 이때 나직하게 해보십지
`에이 시브럴--`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갓댐에 염병에 ㅈ에 ㅆ, 쓸 만한 말들이야 줄을 섰지만
그래도 그중 인간미가 있기로는
나직하게 피리 부는 `에이 시브럴--`
(존재의 초월이랄까 무슨 대해방 비슷한 게 거기 좀 있다니깐)
얼토당토않은 `에이 시브럴--`

마감 날은 닥쳤고 이런 것도 글이 되나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읊조리는
`에이 시브럴--`



올해엔 말이지,라고 쓰면
그 두마디가 흰 팝콘이 되어 종이에서 튀어오르는 거지.
때죽나무 흰 꽃으로 퐁퐁 피어날 때도 있어.
언제나 돈이 모자란 아내가 돌아앉아 한숨을 쉬면
순간 나는 담모충이로 날아가 시치미를 떼지
중년의 모과나무가 되지 오랫동안 점잚고 향기롭게.
아이들이 지쳐 돌아오면
겨울비 속을 터덕터덕 걸어
나무인 나 평화시장 앞까지 나아가네.
신호대기 붉은 등이 바뀌는 순간
숨죽였던 퀵서비스 오토바이 부대는
갈매기떼가 되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우도나 지도까지의 저 우아한 활강
기분 좋은 날은 대마도 근처까지 스윽 한번 다녀오기도 한다네.
부은 발 어루만지던 노숙자는
갈매기에 놀라 지하도 벽을 쿵 들이받고, 순간
등 검은 신사 고래가 되어
유유히 심해를 미끄러지네
쿠릴열도 돌아
희망봉까지.

올해엔 부디 말이지,라고 적어보네
흰 팝콘이 튀어오를 때까지
갈매기와 고래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공부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이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가을날

좋지 가을볕은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하지.
가을볕은 차
젊은 나이에 혼자된 재종숙모 같지.
허전하고 한가하지.

빈 들 너머
버스는 달려가고 물방개처럼
추수 끝난 나락 대궁을 나는 뽁뽁 눌러 밟았네.
피는 먼지구름 위로
하늘빛은
고요

돌이킬 수 없었네
아무도 오지 않던 가을날.

서부시장

굴 한 다라이를 서둘러 마저 싸고
깡통 화톳불에 장작을 보탠다.
시래기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우며
테레비 쪽을 힐끗 흘긴다.
누가 당선되건 관심도 없다.
화투판 비광만도 못한 것들이 뭐라고 씨부린다.

판은 벌써 어우러졌다.
추취에 붉어진 코끝에 콧물을 달고
곱은 손으로 패를 쥔다.
인생 그까이꺼 좆도 아닌 거,
옜다 똥피다 그래, 니 처무라
아나 고맙데이 복 받을 끼다
겹겹이 쉐타를 껴입고 질펀한 욕지거리에 배가 부르다.
진 일로 뭉그러진 손가락에 담배를 쥐고

세상 같은 것 믿지 않는다.
바랜 머리칼과 눈빛뿐
믿고 자실 것도 더는 없는 일
인생 그까이꺼 연속극만도 못한 거
고등어 속창보다 더 비린 거.

적막에 바침

그대는 강 건너서 잠이 드시고

곤하여 가랑가랑 코도 고시고

나는 나는 창 저편

강물로 스미는 눈송이에나 기대네

무신한 서양 노래나 따라서 흘러가보네

그대 깊은 잠 흔들릴세라

마지막 한잔을 조심히 비우고

목젖 떠는 소리도 조마로워라

강 건너 단잠 속에 그대를 묻고

이만치서 누리는 적적한 평화

이 생각도 저 생각도 나지 않고

먹먹하게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

무릎 꿇다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겠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흘러온 철부지의 삼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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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가을빛 사서함
시학 2014

...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니!!
도서관에서 보고 급한대로 집어온 시집
나쁘진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고
이상시를 따라한거라던가 인용구가 많이 사용됐는데, 이에 대한 추가설명이 전혀 없고 습작집 같은 느낌.
보이는대로 연달아 쓰는 시들이 많았고 언어유희적인 표현이라던가..
그래도 국문을 전공하신분이 아니라 시어들이 쉽고 이해가 쉬웠다.
지금 읽고 있는 김사인 시인의 시집은 반은 암호문 같은 느낌. 물론 운율이나 리듬감은 탁월하시나 나에겐 어려운것.
일단 시집 제목부터 첫장을 넘기면 나오는 시인의 얼굴까지 어딘지 모를 엄마의 푸근함이 느껴진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여운없이 읽기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시집을 읽으몀서 느꼈던건 나도 시 쓸수 있을거 같은 자신감 나부랭이를 얻은것 ㅋㅋㅋ

마음의 행로

발자국 소리만 무겁게 따라오는 길
걸어서 몸의 길 끝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는 그곳

언제나 있으면서 그 아무 데도 없는
내 마음의 집 한 채를 위하여
나는 새벽이면 다시 길을 떠납니다


누구나 가는 종착역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르고 모르면서 누구나 가는 길

앞서 간 발자국 지우며 길 위의 길을 내며 가고 있다

가는 길 가다 되돌아서서 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

어디쯤인지 가 본 이 없어 모르는 길이라고 한다

혼자만이 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길

하늘이 부르면 그 누구도 가야 할 시한부 종착역이다


고압선 타고 날다

고압선 위에 저비 부부 한 쌍
마주 보고 앉아 세상살이 지저귀고 있다
반가움에 가는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면
물 찬 제비 떠난 애틋한 허공

이제 중심 상가 옆으로 내천이 흐르고
팔팔 넓은 공원 있다지만
옛날 같지 않은 터전
어쩌자고 콘크리트 벽에 붙여 새집 지으려는가

그 흔적 너머 어디쯤
마른 강물은 슬픔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내년에도 내후후년에도
제비 부부 돌아와 살 것인가
너희들이 부르는 팔팔공원 아리랑이구나

문득 어린 날 외할머니 집
장대 꽂힌 안마당 빨랫줄에 줄줄이 모여 앉아
지저귀던 제비 가족들
그 생생한 흑백필름 한 통을 하늘 높이 띄워 보낸다

낯모를 순한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구석진 그늘까지
비질하는 이 누구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턱없이 부족한
이 가을 저녁답에
빈 하늘을 들여놓는다
잎새 진 자리 혼자 남은 너를 바라보면
아무도,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우리 저물어만 가고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다시 안으로
바람에 날리는 잎잎잎잎
아직 추락할 것이 내게도 남아 있다면
무망(無望)이다가 무망(務望)이다가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낯모를 순한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흰 사과 꽃분홍 지다

등 굽은 언덕바지
벗어날 수도 주저 앉을 수도 없다
뿌리 내린 사과나무 한 그루
그 내력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앞뒤로 보이는 것은
희뿌연 하늘 회색 아파트 옆구리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아도
때는 알아서 검은 가지마다
꽃수레 흰 사과 꽃분홍 핀다
꽃꽃 흰 꽃 꽃불 밝은 밤
살빛 소살거리는 귀밑머리 바람
안개 자욱이 감싸 오는 연기꽃
이 짧은 봄밤을 아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저 흐드러지는 꽃잎 다 질 때까지
다시 기다리는 시간의 꿈 조각들
알알이 여물어 가면
세상은 온통 가을 향기로 가득 차리라
너 나 함께 살아 있어
이꽃이 더 환하다고
내가 너를 불러 말을 건넨다
사과나무 흰 분홍 꽃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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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 시선 6
고두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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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전 도서관에서 `달의 뒷면을 보다`를 보고 좋아서 고두현 시인의 이전 시집인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빌려서 읽는중이다.
아직 다 읽은것은 아니지만 몇몇 기억에 남는 시를 갈무리하려고 끄적여 본다 :)
이것과 더불어서 김사인시인의 `어린 당나귀 곁에서`도 읽는 중인데 확실히 고두현 시인보다는 표현이 조금더 강렬하신편인듯.
이것도 물미해안~ 완독후 정리해 보는것으로 한다.



완독후 추가 :)

고두현 시인의 시들은 주로 주변의 작은 풍경에서 시작된다.
본인만이 알고 있던 맛집이라던가
집 주변의 호수공원, 옻닭먹은날, 밤을 깎던날, 어느 산사에 가서 만난 나물파는 할아버지 등
그런점이 내가 느끼기에는 뭔가 거창하고 유의미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무겁거나 진중한 주제들 보다 다가서기 쉽고 그래서 좋았던것 같다.
물론 고두현 시인의 표현방식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비유와 직유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며 의성어를 많이 사용하시는 부분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 :)
아, 더 일찍 알았다면.. 시집을 완독한후 좋아서 구매하려고 알라딘 찾아봤는데
이미 절판된 도서였다 ㅠㅠ
아쉽지만 신간인 '달의 뒷면을 보다'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것도 일단 빌려둔 시집들 다 읽으면 읽어보려고 한다^^


진미 생태찌개

마포 용강동 옛 창비 건물 맞은편에
진미 생태찌개집이 있는데요.
일일이 낚시로 잡아 최고 신선한 생태만 쓴다는
술 마신 다음날 그 집에 사람들 모시고 가면
자리 없어 한 시간쯤 기다렸다 먹기도 하는데요.

한 사람은 거참 좋다 감탄사를 연발하고
또 한 사람은 아무 말없이 숟가락질 바쁘고
다른 한 사람은 감탄사와 말없음표 번갈아 주고받다
이 좋은 델 왜 이제야 알려주느냐고
눈 흘기며 원망하는 집이지요.

가끔은 생태 입에서 낚싯바늘이 나오기도 한다는
그 집 진미 생태찌개처럼
싱싱하고 담백하면서 깊은 맛까지 배어나는

한 사람이 그 양반 참 진국일세 칭찬하고
또 한 사람이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왜 이제야 우리 만났느냐고 눈 흘기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집을 저는 아주 아주 좋아합니다.



그것은 바닷물 같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목마르다고
이백 년 전,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한 세기가 지났다.

이십세기의 마지막 가을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93세로 세상을 뜨며 말했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그리고 오늘
광화문 네거리에서
삼팔육 친구를 만났다.

한잔 가볍게
목을 축인 그가
아주 쿨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머니가 가벼우니
좆도 마음이 무겁군!

옻닭 먹은 날

유난히 눈을 좋아하는 그대
예쁜 손목 잡고 싶을 떄
행여 차가울까

옻닭 먹으면 추위 덜 탄다는
그 말이 더 따뜻하고 고마워서
생옻닭 국물 한껏 마셨네.

새벽이 되자 마음이 가려웠네.
등도 배도 가슴도
옻 오른 팔목도 붉게 탔네.
아침까지 온몸 가득 꽃 피는 들판
햇빛마저 쏟아 붓네.

이렇게 뜨거운 것들이 모여
바알갛게 익은 꽃들을 피우고 나면
얼마나 깊은 열매 맺을까 그 열매
땅으로 내려 그리운 뿌리까지 가 닿고 난 뒤엔
또 어떤 꽃이 그대 앞에 필까.
꽃 지고 열매 지고 뿌리까지 지고 난 뒤에도
변함없이 겨울은 오고 눈은 내리고

설국을 사랑하는 그대 손끝까지
부드럽고 따숩게 가 닿기 위해
마디마디 손금 데우며
혼자 화끈거리는데

아 그토록 차가웠나
내 손 내 몸 내 마음

설국까지 가기 전에
내 몸이 먼저 하얘지네
눈시울 붉어지네

너무 오래 외로워서 손발 시린 세상도
이렇게 한번 덥혀졌으면
한겨울 오기 전 타는 그리움

그대 흰 손 장미 잡아보려
내 손 아프게 데우는 연습.

나에게 보내는 편지

아름다운 풍경 볼 때마다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여기
있던 사람.

너무 익숙해 곁에 있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동안
잔잔한 호수 가득 차올라
혼자 반짝이는
그대.

얼마나 깊은 아름다움인 줄
늦게 깨달은 사람
물빛 깊은 바닥부터 들여다보는구나.

사랑은 그냥 물빛이 아니라
바라보아도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는
하늘빛

그곳으로 은하가 흐르고
별빛 찰랑거릴 때
내 안에서 함께 사운대는
물결

가까이 있어 미처 몰랐던
풍경, 호수에 비친
그대 모습
오래도록 바라보노니.

녹산에 흰 사슴 뛴다.

잠들지 않았구나.
시엄수 푸른 강물
활등으로 물살 가르던
동명의 슬픔까지
물고기 자라떼
비늘 엮어 다리 놓던
그 밤 물안개 아직 깊은데

녹산 재령산맥 끝에서
빛 한줄기 사슴이 뛴다.
맨몸으로 고라니 잡아
가문 땅 비 뿌리던 주몽도 함께 뛴다.
검은 대밭 산죽 아래
녹산이 달려오다 울창한 관목 그늘
뿌리째 몸을 튼다.

일산 호수공원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네, 물은 내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박자박 차올라
아름드리 항아리로 넘치려 하네.
둑으로도 막지 못하는 것
저무는 산등성이 구름을 넘다
노을이 빠뜨린 깃털 하나
항아리에 내려앉자마자 타는 호수
몸 붉히며 내 키를 넘네.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엎질러지기도 하는 물
아래위 높낮이 따로 없는 호수에 젖어
털갈이 곱게 끝낸 오리 한 쌍 떠오르네.
물빛에 거꾸로 선 암수한그루 자작나무도
뜨네, 나뭇잎 뒤로 촘촘한 수맥
얇은 껍질을 벗기니 그 속에 천마총과
팔만대장경이 따뜻하게 익고 있네.

먼 곳에서만 흘러오는 게
아니네, 물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물오리에서 자작나무로
날마다 출렁이며 제 속을 채웠다 비우네.
물살에 붓 헹구고 하늘호수로 들어가면
스스로 몸을 여는 수묵 담채화 한 폭
그 여백에 한일자로 누워
산이 되고 물이 되어 한 백 년쯤
그렇게 혼자 흔들리고 싶은
일산(一山) 호수.

너에게 가는 길

비로소
처음

흰 도화지를
준비해 간

미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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