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
가을빛 사서함
시학 2014

...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니!!
도서관에서 보고 급한대로 집어온 시집
나쁘진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고
이상시를 따라한거라던가 인용구가 많이 사용됐는데, 이에 대한 추가설명이 전혀 없고 습작집 같은 느낌.
보이는대로 연달아 쓰는 시들이 많았고 언어유희적인 표현이라던가..
그래도 국문을 전공하신분이 아니라 시어들이 쉽고 이해가 쉬웠다.
지금 읽고 있는 김사인 시인의 시집은 반은 암호문 같은 느낌. 물론 운율이나 리듬감은 탁월하시나 나에겐 어려운것.
일단 시집 제목부터 첫장을 넘기면 나오는 시인의 얼굴까지 어딘지 모를 엄마의 푸근함이 느껴진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여운없이 읽기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시집을 읽으몀서 느꼈던건 나도 시 쓸수 있을거 같은 자신감 나부랭이를 얻은것 ㅋㅋㅋ

마음의 행로

발자국 소리만 무겁게 따라오는 길
걸어서 몸의 길 끝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는 그곳

언제나 있으면서 그 아무 데도 없는
내 마음의 집 한 채를 위하여
나는 새벽이면 다시 길을 떠납니다


누구나 가는 종착역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르고 모르면서 누구나 가는 길

앞서 간 발자국 지우며 길 위의 길을 내며 가고 있다

가는 길 가다 되돌아서서 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

어디쯤인지 가 본 이 없어 모르는 길이라고 한다

혼자만이 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길

하늘이 부르면 그 누구도 가야 할 시한부 종착역이다


고압선 타고 날다

고압선 위에 저비 부부 한 쌍
마주 보고 앉아 세상살이 지저귀고 있다
반가움에 가는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면
물 찬 제비 떠난 애틋한 허공

이제 중심 상가 옆으로 내천이 흐르고
팔팔 넓은 공원 있다지만
옛날 같지 않은 터전
어쩌자고 콘크리트 벽에 붙여 새집 지으려는가

그 흔적 너머 어디쯤
마른 강물은 슬픔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내년에도 내후후년에도
제비 부부 돌아와 살 것인가
너희들이 부르는 팔팔공원 아리랑이구나

문득 어린 날 외할머니 집
장대 꽂힌 안마당 빨랫줄에 줄줄이 모여 앉아
지저귀던 제비 가족들
그 생생한 흑백필름 한 통을 하늘 높이 띄워 보낸다

낯모를 순한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구석진 그늘까지
비질하는 이 누구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턱없이 부족한
이 가을 저녁답에
빈 하늘을 들여놓는다
잎새 진 자리 혼자 남은 너를 바라보면
아무도,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우리 저물어만 가고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다시 안으로
바람에 날리는 잎잎잎잎
아직 추락할 것이 내게도 남아 있다면
무망(無望)이다가 무망(務望)이다가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낯모를 순한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흰 사과 꽃분홍 지다

등 굽은 언덕바지
벗어날 수도 주저 앉을 수도 없다
뿌리 내린 사과나무 한 그루
그 내력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앞뒤로 보이는 것은
희뿌연 하늘 회색 아파트 옆구리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아도
때는 알아서 검은 가지마다
꽃수레 흰 사과 꽃분홍 핀다
꽃꽃 흰 꽃 꽃불 밝은 밤
살빛 소살거리는 귀밑머리 바람
안개 자욱이 감싸 오는 연기꽃
이 짧은 봄밤을 아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저 흐드러지는 꽃잎 다 질 때까지
다시 기다리는 시간의 꿈 조각들
알알이 여물어 가면
세상은 온통 가을 향기로 가득 차리라
너 나 함께 살아 있어
이꽃이 더 환하다고
내가 너를 불러 말을 건넨다
사과나무 흰 분홍 꽃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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