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왜? 3인칭이었을까?"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의 전개나 구조상 주인공격인 ‘순스케’를 ‘나’로 하는 1인칭 시점이 더 어울려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1인칭 시점의 글쓰기가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벅찬감동이 있어 나로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 담당 편집자 ‘나혁진’님의 코멘트를 단순한 애사심 차원의 홍보용 멘트가 아닌 진심어린 독후감이라고 인정하고, 이 작품의 옮긴이가 후기에서 밝힌 ‘이 작품은 ‘입시지옥’ ‘스와핑’ ‘가정붕괴’등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3인칭이 아닌 1인칭을 썼더라면 그 효과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데도 개인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됐네요.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만들었는데, 초반의 정밀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젓어까지도 투영되는 듯한 영화더군요. 막판이 너무 설교적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경계에 있는 추리소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굳이 추리기법 차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위 글은 ‘김봉석’님께서 ‘비평과 칼럼’란에 실린 ‘임석원’님의 같은 책에 대한 비평글에 다신 답글 입니다.(이런식으로 빌려온 것이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 밑줄친 부분을 보면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이 소설이 어떤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반대로 ‘김봉석’님은 그 영화의 막판 ‘설교’가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전 이 답글을 읽고 나름대로 가졌던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추측이란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전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질 못했고 그 어떤 사회적 메세지도 전달 받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입시경쟁이니 가정파괴니 하는 모든 것이 그저 결말의 극적 반전까지 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로 밖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일본에선 굉장히 뛰어난 운동선수가 나왔을 때 ‘괴물’이란 애칭(?)을 붙여주는 걸 가끔씩 보아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와는 처음 이지만 웬지 그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lt;호숫가 살인사건&gt;은 마치 유아용 스케치북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밑그림만 그려져 있고 거기에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스케치북 말입니다 . “그건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의 소설들은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지 이 작품처럼 고의로 독자의 자의적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전 3인칭 시점이 1인칭이나 전지적 시점에 비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제한 된다는 점에서 추리장르의 소설쓰기에 훨씬 더 적합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독자가, 작품속 사건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대해 주인공이나 작가의 개입을 덜 받게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기 편한 1인칭 대신 3인칭 시점을 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신기했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배경이 되는 장소의 그림이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올져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인지 아니면 구질구질한 부연설명을 보태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기 때문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원래 쓰려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아래에는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의 결말에 대한 ‘고자질’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신 분들께서만 스크롤바를 내리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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