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번 <호숫가 살인사건>을 읽고나서 올린 글에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잘 어울릴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결하면서도 마치 공중 줄타기를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대화를 통해 표현해낸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비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도입부 장면입니다. 주차장에 도착한 주인공 순스케가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가는 도중 따로 마련된 테니스 코트에서 그의 아내와 아내가 멤버로 가입되어 있는 클럽 회원들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까지의 짧은 부분의 묘사만을 통해 작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는데 필요한 음습함과 불온함을 단번에 획득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래서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시점이 1인칭이다 보니 흥미진진한 인물들간 대화가 줄어든 것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좀 산만한것 같기도 하고 웬지 짜임새가 없다는 느낌도 들었고 결말을 읽은 뒤 되짚어 보면 트릭 자체도 좀 엉성한것 같고 여하튼 - 워낙 잘 읽히는 소설이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화장실 갈 때랑 밥먹을 때 빼고는 궁둥이를 떼지 않고 끝을 냈지만 - ‘괴물’ 이야기를 괜히 했나? 싶은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경현’님의 비평글을 읽었습니다.

여기 밑엔 작품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책을 읽을 읽으신 분들 께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위의 글만 읽고 작품에 대한 편견이 생기면 안되는데…-.-;;)









"확실히 읽으면서도 수상한 장면들이 역시 음모의 진행 과정임이 밝혀집니다. 그렇게 용의주도한 주인공이 왜 그걸 의심을 안 했을까요. 감상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시신에 그렇게 조작을 한다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텐데 잠깐 자동차 바깥에 서 있던 것만으로 그게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뭐 따지고 들면 이런 것이 여럿 걸리긴 하지만…"

이 부분이었습니다. 뭔가가 머리에서 번쩍했습니다. 왜? ‘순스케’는 ‘가쓰라기 주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까? 너무 쉽게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그렇게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제게.

간단했습니다. ‘사쿠마 순스케’가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전 위의 글에서 웬지 트릭이 엉성한 것 같다고 했는데요, 만약 여성 독자가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내려 갔다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너무나 분명한 헛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생각이 떠오를 때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완벽주의 ‘순스케’가, 자신이 ‘가쓰라기’ 사장 첩의 딸이며 어릴적 생모에게서 길러지다 부모가 죽고 홀로 남자, 사장이 데려왔다고 이야기한 ‘주리’의 말을 아무런 의심없이 곧이 곧대로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순스케’의 직업이나 인맥을 살펴보면 그 정도의 사실 확인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어딘가 모르게 개운치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틀어버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 자체가 아예 도루묵이 되니까요.

아마도, 작가는 주인공 ‘순스케’가 여자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걸 독자에게 심어줄 필요가 꼭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순스케’의 행동이나 생각에 독자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죠. 적어도 상대하는 여성에 관한 ‘순스케’의 장악능력(?)에 관해서 만큼은…

이 책의 도입부는 그래서 교묘합니다. 작품 전체를 놓고봤을 때 ‘결혼이란 말을 꺼냈다고 해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여성을 단번에 내쳐버리는’ 이 부분은 ‘순스케’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진 않습니다. 그야말로 독자의 눈을 멀게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 셈이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전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에게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괴물작가. 책 제목 은 ‘순스케’와 ‘가쓰라기’가 벌이는 게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진 선전포고 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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