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발로 꼭꼭 찍어가면서 걷고 싶은 곳들이 있다. 골짜기와 꼭대기로 연이은 산들과 사람과 풍경을 담뿍 담은 강줄기와 그리고 넓은 바다 - 이만하면 내 산하를 둘러보는 데만도 평생을 쓸 수 있을 게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집어들면서 '사평역에서'를 애써 기억해보았다.

  외로움을 견디며 또 삶의 지평을 넓힐 줄 아는 한 사람은 말했다. "기회만 있다면, 곽재구 시인과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고.... 간혹 그 옆에 서 있는 나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 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아느냐고 물었다. 난 그의 시집을 한권도 본 적이 없다. 단지 애송시 몇 편을 몇 번 읽어보았을 뿐이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신춘문예에 소개된 첫 시를 읽으면서 이미지를 그려보았던 기억을 짧막한 단문으로 천천히 전해준다. 내 빠른 생각은 '그의 시집 한권을 사보아야 겠다'로 이어지고....그리고 이틀 쯤 후인가 보다. 벌써 전에 빌려다 쌓아놓은 책 속에서 포구기행을 뽑아들었다. 겉장을 넘겨보니 시인 곽재구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한번쯤 보았어도 전혀 기억나지 않을 평범한 얼굴,  어쩌면 늘상 지나치는 옆집 아저씨의 수수한 모습을 다 담고 있는 얼굴 - 아마도 그것은 그의 시나 글이 삶과 유리되지 않은 끈끈한 담백함 때문일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빼어난 경치를 찬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삶속에서 편린을 건져내되 전체 삶을 바라보게 하고 또 그것이 물기 빠지지 않게 간수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내게는 낯설은 포구기행이지만 그의 글 속에는 따사로히 가난한, 이상한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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