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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전집 - 수정증보판
이상경 엮음 / 소명출판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반성을 많이 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문학을 꿈꾸었던 문학소녀의 몫밖엔 문학을 사랑하는 배경이 없는 빈약함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 작가의 작품들은 거의 섭렵했다고 자부했었는데, 강경애란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것도 박노자의 책에서 말이다. ( '9장 여성운동 백 년의 딜레마' 중, "인간문제"의 인용구로 설명을 하는 207쪽 )
주변에 수소문해보니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아마도 나의 우리 문학 읽기는 해금 이전에서 멈추어 선게 아닌가 싶다. 그 후로는 신인작가의 작품이나 수상작 위주로 책읽기가 진행된 것 아닌지... 구차스런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 설명이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고 반성도 많이 하면서 전집에 수록된 첫 작품 '어머니와 딸'을 읽었다. 옥이의 의식개혁이랄까 하는 부분이 좀 꺼끄럽다. 1930년대의 작품임을 염두에 두면서 인간문제를 펴고 있는 중이다. (20050708)
대표작 "인간문제"(1934)는 대표자가 다운 구석이 많다. 193 0년대 작품같은 느낌이 적다. 덕호의 딸이며 병약하고 신지식의 물을 맛본 신여성 옥점이와 그녀가 좋아하는 지식인 청년 신철이, 덕호로부터 유린을 당하고 대처로 나가 계급의식에 눈뜬 간난이와 여주인공 선비, 선비를 사랑하며 한동네서 자랐던 무산자계급의 첫째, 면장노릇을 하면서 봉건지주의 악습을 골고루 갖춘 덕호, 찌들린 가난속에서 아들을 교육시킴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신철의 아버지 그리고 그밖의 군소인물들을 비슷한 톤으로 그려놓아서 많은 갈등과 긴장의 구조가 삶의 일부처럼 늘상 일어나는 일같이 묘사되어 있었다. 단행본인 강경애전집의 135쪽에서 413쪽을 차지하는 250여쪽의 분량이면 짧은 내용이 아니다. 내용구성에 있어서도 고향인 용연동네에서 가족을 잃고 마을 유지인 덕호네 집에서 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며 정조를 유린당한 뒤 서울로 간난일 찾아갔다가 인천의 방적공장에 들어가 노동착취를 당하고 폐병으로 남긴 것 없이 시커먼 뭉치가 되어 사라진 선비와 선비에 대한 일방적 그리움으로 인하여 가볍고 허영기 많은 옥점일 선택하지 않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투옥후 전향한 지식청년 신철의 좌절하고 부서진 삶의 편린들은 우리 역사의 일면을 아프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선택할 길이 하나밖에 없는 노동자 첫째의 생각으로 결말을 맺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첫째는 불불떨었다. 이렇게 무섭게 첫째 앞에 나타나 보이는 선비의 시체는 차츰 시커먼 뭉치가 되어 그의 앞에 칵 가로질리는 것을 그는 눈이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크게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시커먼 이 뭉치, 이 뭉치야말로 인간의 근본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몇천만년을 두고 싸워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였다. 앞으로 이 문제는 첫째와 같이 험상궂은 길을 걸어왔고 또 걷고 있는 그러한 수많은 인간들이 굳게 뭉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동아일보, 1934.8.1 - 12.22 ; 인간문제, 노동신문사, 1949)
뇌리에 남는 이 구절은 제 2부에 수록된 '파금' '축구전' '원고료 이백원' '소금' 등의 작품 속에서도 살아 움직였다. 겸손하게 우리 작품을 살피고 주의깊게 읽어볼 일이다. 한번 눈길을 준 것으로 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허영은 옥점이가 갖는 허영만큼이나 가볍고 구토증을 일으킨다. (200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