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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 전12권 ㅣ 황석영 대하소설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아직은 어떤 평점을 주어야 좋을는지 모르겠다. 현암사에서 나왔던 책을 읽었던게 거의 이십년 전쯤인걸로 기억이 되고 막 우리 시대에 떠오르고 있었던 민중의 삶과 노래에 적합한 소설이었다고 열광했던 기억이 물밀듯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성이 뛰어났으며 웬만한 역사책을 통해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생동감있는 민중의 삶과 역사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과 경탄을 쏟았던 기억도 난다. 이십년 전에도 결말 부분은 너무 허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의 과정이 치열한데서 기대하게 되는 성공심리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역사적 민중운동을 소설 속에서 성공시킨다고 한들 어떤 성공이 리얼리티를 가지고 기능하겠는가? 역사소설이 갖는 어떤 한계성을 나는 아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장길산은 잊혀진 인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십년이란 세월은 그렇게 퇴색할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고, 아픈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6.29선언과 시민들의 이성적인 정치참여와 결집된 힘, 촛불시위, 그리고 신나는 월드컵축구대회 길거리 응원에도 동참하며 숨가쁘게 이십년을 살아왔다. 작은 힘들이 모여서 역사의 물결을 바꿀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기꺼워 했던 시간들이었다.
김훈과 박래부의 문학기행집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를 보면서 장길산이 장산곶 매로부터 시작해서 운주사 와불로 이야기의 결말이 맺어진다는 것을 생소하게 읽어냈다. 아무리 미세한 부분들을 잊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었다. 기억나는 편린들을 주워모아도 황해도, 탑고개, 장길산과 그의 이웃들인 광대들, 아주 잘 추던 칼춤, 송상과 인삼재배, 화약과 사전을 만들어 사용한 일..... 그 정도 밖에 생각이 안났다. 너무 심했다. 사랑하던 여인 묘옥의 경우도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가 열권이나 되는 많은 분량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이나 꿈을 알려고나 한것인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잡은 것이 창작과 비평사의 "장길산" 개정판이다. 이미 이것도 구판이 되었다니......"(1995년 초판 1쇄, 2003년 초판 21쇄인데 말이다.)
이제 인물들이 모여드는 삼권까지를 읽어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민중이 역사를 움직이는 유일한 운동력이거나 대안이라고 여길만큼 나는 이상적이지도 않고 또 이들을 얕잡아보거나 부정할만큼 지나치게 보수적이지 않은 회색인이다. 자랑스러운 태도는 아니지만 객관을 유지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내 나름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한다고나 할까? 일단 시작을 하였으니 한 두주쯤 지나면 일정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으리라. 일단 다 읽게 될테니까.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난 분명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으며 책속으로 장길산과 그들의 친구들을 그리고 역사적 자각을 만나러 간다. 소설이나 가볍지 않고 빠르게 읽히지 않는 책장을 부지런히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