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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임기환 기획, 이기담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벌써 오래전, 이기백 선생의 '온달과 평강공주'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읽으면서 전율을 하듯이 긴장하였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논문을 생각하면 찬탄하며 역사의 해석이 소설보다도 더 짜릿한 논리와 상상력(?)으로 설명된다. 학생들과 삼국사기 온달전의 번역본을 가지고 이런 나의 느낌을 설명하면서 소개해주었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이 책을 구매하고 읽게 된 이유는 이런 나의 경험 때문일 게다.
임기환 선생에 대해서는 "고대사 미스터리"란 책을 통해 알게되었고(고구려사를 전공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낯설은 학자인데도 불구하고 낯익은 느낌을 많이 가졌다. 그의 고대사에 대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정직한 접근태도 등에 신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작가 이기담(책의 마지막에 여성임을 알았네,ㅋㅋ)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어보았나 하는 정도 외에는 작품을 읽은 기억도 없다. "소서노"를 구해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설마 동북공정의 바람을 타면서 만들어진 역사소설은 아니겠지! '자위하면서 말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강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바보 온달은 평민일 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며 그를 바보로 부른 이유에 대한 이기백 선생의 해석이 너무 탁월하여서 절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가정형편이 빈한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는다든지 혹은 자기 신분의 상승을 위한 노력이 별로 없었으리라는 가정은 쉽게 할 수 있겠다. 온달을 이렇게 평가하면 평강공주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이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느낌이 든다만, 평강공주의 자주성과 신의 또한 높이 살만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온달이 죽고 관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 평강공주가 와서 관을 손길로 쓸어가며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가라!'고 한 부분이었다. 나는 생략된 말로 "그대는 가서 편히 쉬십시요. 내 바로 따라 가리다."라는 공주의 독백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평강공주가 목숨을 끊었다거나 바로 뒤따라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삶과 사랑의 결속의 끈이 너무도 단단하여 이승에서의 삶을 묶어 저승까지 탄탄하게 연결시켜주리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이 책이 시도한 설화와 역사의 만남은 아슬아슬한 접촉이란 생각이 든다. 설화로부터 접근하여서 역사의 껍질을 벗겨가며 역사의 실체를 알아내고 그럼으로 해서 역사쪽으로 기울었는가 싶으면 온달의 의미를 끝없이 재해석하는 설화속으로 또 한발 내딛고.... 그럼에도 역시 역사쪽으로 기울어있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새로울 것이 별로 없는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문학과 역사쪽의 논문들을 많이 읽어내고 온달전승지를 숱하게 발로 뛰고 사진으로 사실성을 덧붙인 작업은 좀 비싼 책값을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오랫만에 하룻밤 사이에 책을 읽다. 이제 작은 정리를 하면서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며 또한 역사교사로서 어떻게 잘 가르쳐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까보다. 나는 역사적 상상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설화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