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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향기
신영훈 글, 김대벽 사진 / 대원사 / 2000년 9월
평점 :
2,3년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기와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주로 춥고 손이 시렸던 기억과 입김이 하얗게 서리던 풍경, 그리고 얇은 창으로 공간의 분리가 되지 않았던 터에 나만의 공간을 갖고자 하였으나 갖을 수 없었던 불만, 추울 때 혹은 더울 때 부엌을 드나들기 어려웠던 기억, 그리고 작은 이불을 깔아놓고 좁은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서로의 발을 포개얹고 지냈던 춥던 겨울의 추억들, 마당 한 가운데 있던 펌프에서 세수하거나 등목을 했던 시원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거의 전부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불편했던 게 한옥과 얽혀있는 내 추억의 대부분이다.
이제 기와집에서 지냈던 시절만큼 오랜 시간을 아파트에서 혹은 슬라브 집에서 생활을 해보았고, 편리성과 갇힌 공간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고 보니 갇힌 자의 자유가 풍기는 쓸쓸함으로 인하여 한옥이 주는 향기를 은근히 맡고 싶어진다. 너무 격조있던 한옥들이 근대화란 이름으로 헐려나가고 개성이라고는 별로 없는 아파트들이 빼곡히 밀집한 공간 속에서 답답한 생활을 하다보니 책속에 실린 서로 다른 종가집의 생김새와 주변과의 어우러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종부로서의 삶을 살라고 한다면 나는 거절하는 편이 아니었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구경하는 맛이 감칠맛이 난다. 주변에 드러나지 않고 파묻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무게와 부피를 다 말할줄 아는 집, 비록 사진 속에서 바라본 모습이지만, 나도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면서 한옥의 향기를 맡으러 나가볼까나?
내 노년을 의탁할 집은 여러 종가집의 크고 첩첩한 모습보다는 '맹씨행단'처럼 단아하고 고졸한 소략한 집한칸이면 족할 것 같다. 그리고 집의 위치는 좀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가서 산소리와 재잘거리고 산의 기운을 받으면서 산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마쳤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그 산이 지리산쯤이면 더 좋을 것 같고, 늙음과 병듦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연 속의 함몰을 먼저 꿈꾸며 나머지를 감당할 수 있는 삶이 주어지길 나는 한옥의 향기를 스윽 스윽 넘겨보면서 상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