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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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꽤 괜찮다고 생각한 책에서 어느 누군가가 거론한 작가의 이름이 '한강 韓江'이었다. 책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조정래의 "한강漢江"을 몇권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슬며시 웃으면서도 작가로 놓고 작품을 찾아보자고하는 나도 기실 이름만 보고는 남자소설가인줄 알았다. 그의 책 한권을 읽다. "바람이 분다, 가라" 명령어로 내려진 제목과 노란표지는 주의를 끈다. 390쪽이 다 되는 책의 분량은 가볍게 읽어낼 소설은 좀 아닐듯하기도 하고... 

[모기와 뒹굴며 하룻밤 사이 책을 들다]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많지않은 등장인물과 부제의 독특함 그리고 우주와 0과 무한대 사이의 끝없는 반복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회귀시킬 것인지,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더라? 고대 철학과 동양의 사유를 저장된 기억속에서 꺼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과학자나 시인의 이름들을 발견한다. 소설가보다도 더 아름다운 글을 써내던 칼 세이건의 작품이며, 네루다의 시구를 그냥 발견하는 즐거움이 만만치않다. 탄탄한 구성과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전개가 흡인력이 있다.'1.450킬로미터' 뭐야? 서울-부산간의 거리?하면서 책장을 열었는데, 대기권까지의 거리란다. 늘 올려다보는 하늘인데도 무심하였다. 잊고있었다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겠지만... 수평과 수직의 교차, 삶을 시간과 공간속에서 열어보게 만드는 안목이 훌륭하다. 44쪽의 '고전적인 우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주의 에너지는 0이지만, 시공간은 양자역학적 혼돈 상태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확률적 순간, 에너지의 벽을 뚫은 시공간이 팽창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적용된다. 오랜 혼돈이 갈라지고 천지가 창조되는 짧은 시간, 우주는 급팽창하고 물질이 생성된다. 놀랍도록 신화에 가깝게, 플랑크의 시간이라고 불리는 10의 -43초, 그 찰나의 찰나에.' 우주만이 아니라 생도 그렇게 시작되어 삶의 모습을 끌어안아 보아도 결국은 찰나의 결정과 행위들로 이어짐이 아닐까. 정자가 난자를 파고드는 첫접촉에서부터 행위하고 관계를 맺는 모든 인간의 양태가 찰나적인 결정들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장에서야 '바람이 분다.'의 의미를 보았다. 육상높이뛰기 선수였던 서인주가 근육파열로 삶의 전환을 해야 했던 바람을 화자인 정희는 곳곳에서 바람이 분다고 밝혔었음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서야 언뜻 살펴볼 수 있었다. 정희에게는 삼촌의 죽음에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것부터 생을 밀어내는 바람이었을 게다. 이 소설이 여러면에서 긴장을 유발하게 하기 때문 섬세한 부분을 놓쳐버린다. 또 읽어야 할까? 더운데~ 시원한 소설이면 좋겠다. 죽음이 갈라놓은 끈을 잇게하는 민서는 생명의 연장을 위해 다 잊고서 평안한 삶을 살수 있는 먼나라로 가버렸고(보호자인 아버지의 결정이다.) 다시는 "이모"하는 소릴 들을 수 없게 된 정희는 생명을 갈구하며 방치해버렸던 삶속으로 끈적끈적 밀어왔건만 부풀어오른 팔로 물속에서 파란 돌을 건져 올리는 삼촌과는 어떤 해후가 될 수 있을지(꿈속에서 죽어 홀가분함을 느꼈던 삼촌은 파란돌을 건지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워 조금 울었다고 했지), 인주가 화랑을 옮기는 이유는 불분명하며 따라서 하룻밤을 보낸 인주에게 미쳐버린 강원석이란 인물과 인주의 엄마의 고향을 찾아간 미시령에서의 죽음(다음 작품명이면서 엄마의 부패와 죽음을 가져온 곳)과 잇닿는 부분도 세밀하진 않지만, 불편한 삶을 살아가면서 내 삶과 죽음의 간극을 놓치지 않는 인물들의 굴절된 마디마디가 아프다. 265쪽 처음의 빛에서 '한 번의 삶에서 여러 인생을 살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디마디 끊어지는 것이었다고, 어떤 마디의 기억들은 전생처럼 멀고 어둑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해 11월의 늦은 저녁, 그렇게 멀고 어둑한 성북동 골목을 오르고 있었습니다.'(류인섭의 기억)

[마무리]       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분명하고 인주와 삼촌과 정희의 관계 그리고 성장한 이후의 각자의 삶의 불편한 몫과 관계가 띠엄띠엄 이어지는데, 실상 우리의 삶이 그런 편린들로 가득 차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설혹 가장 사랑하여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존재라하다라도 존재자체와 비쳐지고 보여지는 대물적인 존재는 동일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 달라서 슬픈게 아니라 조각난 모습들로 이어지는 불편한 관계가 인간의 모습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얼마쯤 후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인물검색을 해보았더니 한승원 소설가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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