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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간단히 대답을 하자면 인문학을 전공한 자로서 또 인문학을 사랑하는 자로서 나는 아웃사이더의 시점 밖에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균형된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서 과학에 투자를 좀 했던 편이다. 아동도서에 불과했지만, 그거라도 읽으면서 질문에 대답을 해줄 양으로 '과학자의 길', '엔트로피', '코스모스'등의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게 배어있는 과학책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이런 과학에 대한 관심은 거의 10년 전쯤에 사라진 듯.... 이미 나의 아이들은 성장하여 자신의 길들로 어엿하게 접어들었고 더이상 나의 추천도서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느낌표의 선정도서들은 대개가 읽었던 책들이 많아서 시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는 제목에서 인문학적 느낌이 확 풍겨오면서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든 책이라서 인상적인 느낌은 더하였고 복잡한 세상에 대한 명쾌한 과학이 과연 있을까 의심도 해가면서 콘서트에 들어섰다.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시작되는 비바체 몰토의 1악장은 시작의 설레임을 갖게하였지만 그 내용은 결코 명랑하고 경쾌하지만은 않았다. 지구촌시대의 너무도 넓고 또 좁은 공간과 시간,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 - 아인슈타인의 뇌, 좀 생각과 집중을 요하는 시작이었다. 네개의 동기로 1악장은 끝이나고 느리게, 안단테로 여는 2악장은 카오스와 프랙탈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빠르게 정신없이 지나가는 것들을 눈을 지그시 감은채로 릴랙스한 느낌을 가져보면서 맛보라는 것일까? 현재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모든 부분들을 카오스로 설명하고 있는 인상, 혼돈의 세계는 결코 느릴 수없는 것인데....
3악장의 느리고 장중하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Grave non tanto)는 통합되는 세계에서 물리학과 예기치못했던 타 학문이 만나는 모습들을 설명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왜 느리고 장중하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연주를 하는지 모르겠다. 경제학과 물리학의 만남, 낯설기는 하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문외한인 내게는,
4악장은 점차 빠르게 오히려 갈수록 더 빠르게란 말이 맞는 것 아닐까? 속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소음이나 공해 등은 부수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임을 누구나 느끼고 있는데 그것들이 과학적인 소용이 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산타클로스가 하루에 돌기엔 너무 큰 별인 지구에서 한 점을 차지하고 사는 우리들은 여섯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인 좁은 세상에서 또한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렇다. 한 점도 안되는 나의 존재이지만 박수의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로 동기화된 존재로서 나는 사회화되어 이웃과 나누며 살줄을 안다. 우리는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다.
빠르게 시작해서 느리게 - 느리고 장중하게 너무 지나치지 않게 - 점차 빠르게로 끝이난 콘서트를 보면서 나는 판이나 CD를 구매하지 않았다. 저자가 친절을 베풀어 각장마다 부기한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은 분들께'를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너무 무거워보여서 자연과학도들에게 혹은 그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귀동냥이나 해볼 생각으로 말이다.너무 얌체같은 생각인가?
좋은 콘서트를 다녀온 것은 사실인데, 글쎄......? 나중에 앙콜 콘서트를 한번 더 가볼 것인지를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다만, 다 커버린 내 아이들에게도 권해주고 많은 감상과 비평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