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 정치사회사연구 이기백 한국사학논집 5
이기백 / 일조각 / 1996년 10월
평점 :
절판


21편의 논문(1950-90's)이 수록된 이 책은 각 시대마다 우리 역사학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70년대는 무령왕릉의 발굴과 비문의 발견으로 금석학, 고고학 등 인접과학을 활용하는 한편 백제사와 국가형성시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80년대 이후로는 고조선 논쟁과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한 역사학계의 노력이 저자의 논문 속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저자는 ‘한국사의 흐름을 처음부터 차례로 살피려는 의도로 시작하였으나 고대사의 천착에 머무르고 말았음’을 고백하며 ‘고구려사, 백제사 연구를 독립된 저서로 정리하고 국가형성문제에도 손을 대고 싶었음’을 아울러 밝히고 있다. 또한 고대사 연구의 애로에 대해 '비록 지극히 간단한 기록에서 일지라도 이를 앞뒤와 전후좌우로 연결지어 살피고, 또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며 더듬어 가면, 결국 그 역사적 진실을 알아낼 수 있게 마련이다’라며 사료가 풍부한 시대를 연구하는 데서는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의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매우 논리정연하여 간결하다. 특히 의문과 의문으로 이어서 설명하는 서술 방식은 참 매력적이다. 이를테면 고조선에 대한 글에서 '고조선에 대한 높은 관심이 올바른 이해의 방향으로 이끌리어 왔는가', ' 먼저 중국 측 기록인 위서의 기록을 인용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언제였던 것일까?', '건국 초기의 고조선은 어떠한 국가 형태를 지니고 있었을까?' 등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상술하고 또 그 설명에서 파생되는 질문으로 다음 장을 설명하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는 서술방법이 참 인상적이다. 특히 '부여의 시기죄'에 대한 논문은 마치 한편의 추리 소설이나 심리전을 연상시킬 만큼 풍부한 상상력과 이미지가 결합되었으면서도 품격을 잃지않는 아름다운 논문이다. 간편하게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 扶餘의 시기죄(사학지, 1970)
-근거 : 『三國志』東夷傳 扶餘條(p.32)
-접근방법 : 비교 및 당시 사회상태에 비추어 고찰
투기죄의 예〔왜(p.34), 고구려(pp.34-35)〕 → 처벌의 예(pp.36-38)
-어째서 시기죄는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을까
일부다처제 사회와 축첩(p.40)의 비교

보통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아주 사소한 실마리 하나를 통해 사건을 다 드러내고 일반화 시켜 주옥같은 논문 한편을 완성하는 탁월성은 외길로 흔들림없이 간 학자의 혜안에서 생길 수 있는 안목이 아닐른지...?

한편 한편 읽어가면서 정리를 할때마다 느끼는 감탄이지만, 학문을 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는 물론이고 지녀야 할 열정과 덕목까지도 행간을 통해 배워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어떤 문제를 살펴보건 그의 안목을 빗대보면서 바라보는 즐거움은 학문을 하려는 자의 기쁨이다.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쏟는 그의 애정과 역사학자로서의 겸허한 의무감은 또한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와 그의 저서들은 역사를 공부하는 자로서 어떻게 역사를 공부해야 할는지는 물론, 역사를 통하여 현재에 어떤 봉사를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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