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거닐다
이윤기 외 지음 / 옹기장이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소박한 가슴으로 만나는 스물네편의 아름다운 지적 산문'이란 부제를 붙인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해인사를 보고 싶은 단순한 이유였다. 나를 정리하면서 자연 속에 잠겨들고 싶을 때 생각난 장소의 하나가 해인사였다. 이 책을 통해 소위 한몫을 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건드리는 수준을 넘어서서 삶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여유와 멋을 부리게도 하였다.

많은 수필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내용은 윤구병님의 '부처됨의 어려움'이었다. 성불을 해서 열반의 경지에서 노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더기를 걸치고 저자거리로 나온 것은 중생구제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기에라는 뼈에 붙인 살과 같은 직설적이고 비어화된 말들이 오히려 부처의 고행과 자비를 깊이 각인시켜주었다. 이런 깊은 인상은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작은 마음을 내가 지속해서 지녀야 할 이유의 근거이기도 하였다.

전우익 님의 '홀로 정영상 형을 생각하며'도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각이 솔직하여 남의 이야기같지않게 긴 여운을 남겼다. '정성스럽게 묻어 오래오래 가는' 관계를 맺으면서 '몸이 떠난 자리를 정으로 메꾸어주는' 만남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자기화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와 객체가 합일되는 시점에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다보니 망자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게 잊혀져 버리고 삶이 그 흔적을 악착같이 달라붙여 놓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보관하고 있던 사진첩을 꺼내보면 빛바랜 모습들을 발견하는 것처럼 가슴속에도 그렇게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게 산넘어 산과 같아서 특별한 동기도 없이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추억하노라면 서운한 맘만 그지 없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을까?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불과 십년도 채 안되었는데 말이다. 그는 어떻게 망자를 그리도 자신처럼 기억하고 살려놓을 수 있을까 나는 심히 부럽고, 또 부끄러워졌다.

조용히 심금을 울리는 이런 수필가와 이야기를 읽는 기쁨 속에서도 내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나의 속사정인지 아닌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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