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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2 - 1981년도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완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박완서님의 작품과 그의 글쓰기를 좋아하는 독자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을 즐겨 읽는 편에 속한다. 이 책은 '우리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를 읽으면서 그의 다작들을 훑어보던 가운데 읽고 싶어 구입했던 책의 하나이다.
속도감있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대느라 바쁜 일정속에서 소설에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 채 여러 달을 지내왔다. 책꽂이를 우연히 보고 '어머나!' 경탄하면서 사놓고도 읽지 못했던 몇몇권의 책들을 쓰다듬어 보다가 빼어 들었다. 1981년의 이상작품상 수상작을 2003년이 되어서야 읽게 되다니......' 얼마나 게으른 것인지? 20년도 넘는 세월동안에 우린 감정의 표현과 표출방식도 뒤바뀌게 된듯하다.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고 '나'로 시작되는 더구나 가족사적인 작품을 읽어보는 맛이 담담함이라면, 뭐라고 설명해야 옳을지? 엄마의 말뚝1을 읽었던 느낌과는 참 달랐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쓰여진 소설이며 소재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자의 상황과 느낌에 따라서 무척 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민족의 비극과 가족의 비극이 동일선상에서 경험되어지는 몫들을 외면하고 싶은 유혹이 자꾸 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답답한, 석연치 않은, 비릿한 느낌들을 받게 되었다. 내 자녀의 세대나 나의 세대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인데, 어찌하여 내 자녀 세대나 느낄 만한 둔한 정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20년의 세월은 그렇게 객관화 될 수 있는 것인가?
가정적 이유로 친정엄마와 평일을 보내고 있다. 늦게 들어가 가끔 두런거리는 소리로 이런 저런 일상사를 이야기하다 자는 때가 간혹 있다. 단편적 추억이지만, 나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쏟으셨던 엄마의 사랑과 헌신을 생각하면서도, 자아라고는 거의 살펴볼 수 없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 성장기의 내 일기의 한토막이었다. 지금은 자기 주장과 경제적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살게되는 나를 보게된다. 엄마의 말뚝 언저리를 헤매고 다니게 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습성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