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의 섬 진도 - 한국의 숨결 1 한국의 숨결 1
김훈 글, 허용무 사진 / 이레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평일에는 좀처럼 흔치않은 1박2일의 여행기회가 주어졌다. 지리산 화엄사와 그 언저리를 밟아본다는 기대감에 등산복차림으로 나섰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연수여행이라서 사실 좀 불량한 복장이었지만, 지리산은 나를 붙들만한 매력이 충분한 산이었다. 늘 일에 파묻혀 사는 억울함과 힘듦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가벼운 짐을 싸면서 책 두권을 넣었다. 이틀이니까 두권정도는 읽지않을까하고서...

어려운 책보다는 사진이 많은 '진도'와 여류 소설가의 책 한권 - 2인용 좌석을 혼자 앉아서 가는 쓸쓸함(한가함?)이 오히려 책읽기에 도움이 되었다. 가볍게 볼 양으로 사진이 많은 그리고 부피도 적은 책을 당연히 먼저 선택하였다. 올 여름에 읽고 싶어 샀으면서도 두계절이 다 가도록 읽지 못하고 있던 가리워진 책이었다. 구입 이유는 김훈의 글때문이었지만, 정작 읽다보니 책장을 넘길수록 허용무 작가의 사진이 훨씬 압도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혼을 담는 혹은 삶을 담고자 노력하는 사진작가의 노력이 확실히 깊은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물론 산만하지 않은 김훈의 글도 어김없이 매력적이었고.....'

가끔 진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도 약간 삽입되어 있고, 진도아리랑, 진도개 이야기라든지 굿 그리고 대파에 대한 이야기를 간헐적으로 들어왔었지만, 한권의 책전체가 진도를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는 처음이었다. 서울이나 공주, 부여, 혹은 경주 등을 설명하거나 유적들을 답사하는 통권의 책은 여러번 읽었지만, 한 섬에 대한 책은 처음이었다. 가볍게 펼쳐본 책을 마지막 덮으면서 '원형의 섬'이란 표현이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는 원형이란 단어가 매우 각별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말그대로 원래의 모습 혹은 태초의 생명의 모습이란 뜻으로 arche를 생각하게 하기때문이다. 한때는 이말이 갖는 매력으로 인하여 어떤 사물에게든 원형을 투영해보는 습관을 갖기도 하였었다.

현재 샤머니즘이나 농업은 모두 종교와 산업면에서 소외되거나 배척받는 아웃사이드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해보인다. 발생되었던 당시 그리고 우리가 주 산업으로 수용했던 때엔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 자리하며 우리의 정서와 신념에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한 모습들을 이제는 우리가 전근대적이거나 야만적인 것처럼 질시하고 배타하는 모습은 반성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현재적 가치와 인식을 벗어나 문화와 역사를 더듬어본다면, 분명 잘 보존하고 간직해야 할 중요한 삶의 양태임에 틀림없는데, 현재적 삶의 정서로부터 일탈된 그것들을 어떻게 보존해 갈 수 있을까?

많은 인물들의 표정과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지만, 나는 박미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이 스며났다. 청소년기에 예민하게 느꼈던 가족사와 성장기의 아픔이 승화되어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과 아픔까지 끌어안을줄 아는 춤꾼이 되었기때문일까, 혹은 아파도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한가운데로 자신도 아픔을 느끼며 들어갈 줄 알기 때문이었을까?

진도를 밥먹듯 다녀올수도 혹은 가서 살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이번 대보름쯤엔 호기심 많은 여행객의 한명으로라도 진도땅을 밟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우중에도 햇살이 가득 담겼던 화엄사 경내를 밟아보며 노고단과 지리산의 숱한 봉우리를 올려다만 보고온 이번 여행길에 품은 진도의 산하와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삶의 편린들을 내 소망과 눈물을 적셔 담아본다. 내 삶의 원형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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