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없다
윤구병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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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진보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믿는 나의 삶은 현대 도시적이며 그 뿌리는 과학과 기술의 토대에 서있다. 반면 나의 어머닌 배움은 적으시나 쓰레기 줄이기에 앞장을 서시는 분이다. 온갖 허접 쓰레기들이 집안팎에 냄새를 피우면서 분류되어 있고 조그마한 화단은 썪혀지는 쓰레기들이 매장되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머리도 비누로 감으시고 세탁기에 빨래를 그냥 돌리는 일도 없다. 꼭 손으로 주물러서 헹구는 정도만을 세탁기에 이용한다. 또 있다. 헹굼물을 받아서 빨래하는데 다시 이용하신다. 물절약 전기절약도 유난하시다. 그러다 보니 도시적 삶을 산다는 나의 눈에는 친정집이 구중중하기 그지없다. 내가 생태학적 접근을 하는 것이 머리로는 어머니와 비교할 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의 측면에서는 어떠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느낌을 가졌지만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에 가장 강한 인상을 받았다. 공동체에 며칠 머물다 가는 일조차 3-4일의 여정을 잡아서 힘껏 일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는 공동체, 그건 공동체의 생활이 잡히기까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란 생각을 하였다. 우리들이 공동체에 대해 갖는 관심은 내 삶의 향방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호기심이나 지적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호기심이 삶의 터전을 흐트러뜨린다면 그건 알건 모르건 죄악에 가까운 것일 터이다.

저자의 관점에 대해서 옳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나는 선뜻 동의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을 하였다. 좀 덜 깨끗하더라도 자연과 친화력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어머니와 같은 자세가 아닐까 싶다. 잡초는 없다. 혹은 쓰레기는 없다는 것은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질때까지 기다리고 함께 어우러질수 있는 견딤이 있어야만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가서 살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속도와 방향이 옳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공생적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SF영화에서 흔히 보는 우울하고 폐허화된 지구에서 함께 사멸해야할 것이다. 관심과 이해가 책을 읽고 책장을 덮은 뒤 차츰 소멸되지 않도록 나는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불이 되길 원하면서 살아온 내가 저자처럼 옅은 맛을 내면서 물처럼 흐를 수 있을는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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