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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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나의 도시"에 비해서 훨씬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의 나이 폭도 넓어지고 우리가 단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뒤집기 시선(삼풍백화점 참사)도 보였고, 혹은 조금씩은 주변의 경험으로 버리고 만 것들이 소설속에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늙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로부터 기대하는 어떤 정서와는 상치되지만, 어쨌든 낯설은 작가의 작품인지라 해설을 읽고 정리해보았다. 

당신은 파국으로부터 안전한가_박혜경

1.  체제귀속의 전략, 혹은 여성을 연기(演技)하는 여성들

  그녀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여성이라는 제도적 구속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 철저히 세속적이고 순응적이다.(318)

  그러나 그녀들은 또한 체제가 제공하는 어떠한 낭만적 환상에도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정체성을 지닌다. 그녀들의 세속적 영악과 철저히 타산적인 현실감각 속에서 낭만적 순진성이란 여지없는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녀들은 체제가 만들어낸 여성, 혹은 여성의 삶에 대한 낭만적 허구들을 믿는 대신 이용하며, 내면화하는 대신 전략화한다. 물론 그것은 그녀들이 그 낭만적 허구가 만들어낸 잘나가는 여성의 이미지에 꼭 부합하는 삶을 열렬히 갈망하기 때문이다.(319)

  시대의 관습에 의해 이상화된 삶의 이미지를 성취하기 위해 그녀들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관습적 덕목들을 치밀하게 매뉴얼화하는 태도는 남들과 차별화되려는 그녀들의 욕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닮은꼴인 삶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치열한 안간힘임을, 정이현의 소설들은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들의 영악한 계산이 봉착하게 될 불길한 결말까지도. 자신이 설치한 계산의 덫에 스스로 걸려드는 이 영악한 헛똑똑이들의 삶을 정이현은 계몽도 냉소도 아닌, 욕망하는 주체 내부의 시선을 통해 들려준다. 정이현이 열어 보인 낯선 소설의 지평은 관찰하는 외부의 시선이 아닌 욕망하는 내부의 시선으로,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생태학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방식에 있다.(322)

2. 붕괴하는 세계 속에서의 삶

정이현의 소설들은 우리에게 체제 바깥으로의 일탈은, 일시적인 낭만적 환상이나 거짓 위안이 아니라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확인시킨다. 체제는 힘이 세다. 그녀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절망도 체념도, 냉소도 흥분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다고 말할 뿐이다. 작가에게 남은 것은 체제가 제공하는 욕망의 끈끈이주걱에 매달려 살아가는 삶의 매순간에 의문부호를 달아주는 일뿐이다. 관습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삶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이란 과연 안전한가?(323)

세상이 유포하는 어떠한 낭만적 환상도 허구임을 알아차린 자의 페이소스가 그녀의 문장에서 감지된다.절망과 환멸의 과장된 제스처 없이 절망적인 현실의 한 단면을 세밀하게 드러내 보이는 그녀의 문장들은 겉보기에 안정된 중산층의 삶 내부에서 다양한 균열의 조짐들을 읽어낸다. 그 조짐들은 종종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메타포들의 활용을 통해 가시화되기도 한다.

3. 파국의 봉합된 틈새들

4. 환멸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누구나 환상에 기대지 않는 온전한 정신으로 환명의 현실과 마주 선 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환상의 가면을 벗겨낸 현실과 마주 서는 일은 목숨을 지불해야 할 만큼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환상의 유혹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환멸의 생생한 맨얼굴과 마주 서는 순간의 고통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은 비록 거짓에 불과할지라도 우리가 왜 끊임없이 환상이라는 마취제를 필요로 하는지를 말해준다.(334)

당신은 파국으로부터 안전한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자신있게 안전하다고 답할 수 없겠으나 파국이 다가오지 않도록 손을 먼저 내밀고 상대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져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거두지는 않겠다. 그리고 나의 작은 삶에 대해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테고... 물론 작중 인물들도 대개는 그렇게 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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