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심 - 하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탁환은 그의 옮겨지는 직장만큼이나 소설의 힘이 자주 바뀌어지는 작가이다. 표현이 어색하지만, 다작활동하는 작가중에 그의 소설만큼 많은 작품을 읽은 경우도 드물다.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에 들어있는 치밀한 문헌고증 때문이었다. 역사 교과서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배경이 살아움직여 운동력있게 상상하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진지하게 노력하는 작가는 많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치열하게 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

  작가의 말에서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는 좌충우돌 30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설이다. 감히 주장하건대, 이 소설을 쓰기 전 김탁환과 쓴 후 김탁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골방의 몽상과 현장의 생생함을 아우르는 '취재형 작가'로 불혹의 10년을 활활 태우겠다. 아직도 내겐 젖은 장작이 많다 라고 하였다. 사실과 허구의 결합을 시도하는 그의 작업의 공통성외에 작은 단편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리심이란 19세기말의 조선 여성의 흔적을 찾아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여 생생하고 활기찬 소설을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분명 작가의 만족도가 높은 소설이 마련된 것이리라.

  리심이 머물렀던 시기의 파리의 시가지 지도라든지 탕헤르의 지도 등을 소설속에서 살펴보면서, 프랑스의 기록물 관리 능력이 부럽기조차 하다. 물론 그 기록물을 세심히 조사해서 햇빛 속으로 드러낸 많은 이들의 수고도 놀랍지만...

  구라파를 처음 밟은 조선 여성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리심의 자살은 애닯으나 이해가 간다. 그보다 한세대 후의 개화기 여성들이 짊어졌던 생조차도 자살이나 파탄자로서 정신분열을 일으켰는데... 봉건사회 속에서 여성이 근대화의 물결을 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애 닯 다!

  소화하기 버거운 것들이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근대의 시작에서 비중있는 인물을 다 만난다는 것 - 3000매의 장편 소설 속에서 한 시대의 뒤범벅된 사상들을 다 소화하려는 시도는 버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실성을 벗어나 버린 것 같은 무거움을 느끼게 한다. 리심의 작은 몸을 작게 그렸으면 좋으련만, 5년만의 외유에서 리심이 세계를 혹은 대한제국을 다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가혹한 행위인 듯 하다. 그의 세계를 너무 넓혀놓지 않았으면... 이를테면 이승만과 독립협회에서 만난다든지, 김옥균을 이해하는 사람이 홍종우와의 관계를 원활히 할 수 있다든지... 너무 작위적이지 않을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사람은 행위한다. 세계를 품고 똘레랑스를 몸에 익히기에는 파리의 체류가 너무 짧았고, 조선의 궁녀로서의 삶이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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