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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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작가는 ‘여름’ 하면 주루룩 줄 세워 꺼내놓게 되는 좋아하는 것들, 추억들, 과거 자신의 모습들, 스친 인연들을 곱씹는다. 작가에게 나를 한 번 투영해보았다. 나는 무엇이 떠오르나. 사실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단연 가을이라고!) 덥고 습하고 열대야에 푹푹 죽어가는 나,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회전하는 소리에 시달리는 나, 에어컨 바람에 결국 감기 걸려버린 나… 같은 장면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나도 여름의 낭만과 에피소드를 읊어보자면 이렇다.

우선, 시린 얼음잔에 가득 부어진 맥주. 좋아하는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갔던 부산이나 대만 베트남에서 밤바람을 맞으며(중요!) 피자를 먹고 밀크티를 먹고 콩커피를 먹었던 기억. 영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태어나 처음으로 고된 노동을 끝낸 센(치히로)이 폭우로 불어난 바다를 보면서 먹는 호빵이 생각난다. 음악은 에피톤 프로젝트가 만들고 임슬옹이 부른 ‘여름, 밤’. 신맛과 단맛이 적절한 농도로 섞인 자두가 땡기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이 떠오르고(이 책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해서 반가웠다. 나는 특히 <티티새>나 <바다의 뚜껑>을 생각하곤 한다.), 잠옷만 입고 슬리퍼 대충 끼워신은 채 신난 강아지를 앞세우고 평화롭게 걷는 산책길이 떠오른다. 수영에 빠져서 늘상 머리카락을 적신 채 염소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녔던 나, 기타를 배우다 때려쳤던 나, 전인권 노래에 돌고돌고돌았던 락 페스티벌의 어느 순간, 민증인지 외국인등록증인지를 대뜸 내밀며 본인이 영국인임을 어필하던 이태원의 한 외국인, 지금은 멀어졌지만 꽤나 친하게 지내며 콘서트와 낯선 카페를 누비게 해주었던 덕질 메이트 언니들…

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고. 얼레벌레 여름의 ‘나’를 끄집어내서 적어보니, 꽤나 알차고 좋았던 여름이었구나 결론이 났다. 장마를 앞둔 지금, 올해 여름도 부디 적당히 덥고 많이 신나기를.(아니 제발 덥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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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마이어로위츠 Joel Meyerowitz 열화당 사진문고 26
콜린 웨스터벡 지음, 신가현 옮김, 조엘 마이어로위츠 사진 / 열화당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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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 휴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호캉스를 갔을 때, 가져갔던 책.

조엘 마이어로위츠는 뉴욕의 길거리를 담은 사진들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사진에서는 주로 모델에 대한 풍자를 느낄 수 있지만, 조롱이나 악의가 없어 애정 어린 유머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우연한 사건을 주시하는 전통적 거리사진가들의 기법을 반영하여 흑백 사진을 주로 작업했고, 1970년대에는 사건보다는 이미지와 색채에 주목하여 광범위한 유형의 컬러 사진을 작업했다.

특히 그의 작가적 특성은 8x10인치 뷰카메라로 작업한 컬러 사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인적 드문 모래 언덕이나 해안가를 뚜렷한 색채로 담아낸 케이프 코드 배경 사진이 그것들이다. 그는 셔터 속도가 느린 뷰카메라로 부러 정적인 자연의 무(無)를 담거나, 동적인 곡예를 포착하여 일상을 전복하고, 물리적인 눈으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보게 해주었다. 우연에 의하여 같은 공간이어도 프레임이 나뉘거나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 사진들에선, 동시성을 자극하는 상상과 판타지가 펼쳐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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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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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책 중 한 문장씩 꼭꼭 씹어 소화시켜서 원할 때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내질러버리고 싶은 책이 있다면 단연 정희진의 책이었다. 예스북클럽 전자책으로 읽은 책이었는데, 그의 문장 사유 통찰과 함께 몇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소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책을 평하는 내용 중에 ‘너무 여성주의적으로만 영화를 감상하기 때문에 별로’라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해석해야 한단 건 (편하게 하기 좋은) 옳은 말이다. 허나, 이 평을 쓴 사람은 여성주의 또한 철학 이론이며 정희진은 여성이란 사실을 잊었나 보다. 우선 무엇보다도, 정희진은 이 책에서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둔 채 여성주의적으로만 해석하기 급급한,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전복의 글은 편협한 글이 아니다.


남성이 권위를 가진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유전적인 이유로 남성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여성은 사회적인 이유로 남성중심적 사고를 한다. 여성이 여성중심적 사고를 하고, 기울어진 추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이 여성주의에서 비롯된다. 여성에게 여성주의는 신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등속 이름 붙여진 이론들을 고찰할 때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해 있다.


나는 <피아니스트>를 더럽게 처절한 영화라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말 못할 만큼 처연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됐다. <문라이트>는 해피엔딩이라고 느꼈으나 이젠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정희진처럼 생각하고 정희진처럼 쓰고 싶다. 정희진 학자님은 김혜리 기자님의 글을 한국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난 김혜리 기자님의 글만큼이나 정희진의 글을 좋아한다. 정희진의 글을 읽으며 내가 가야할 길이 정말 멀다고 다시금 느꼈다. 텍스트는 어원 그대로 직조된 서사이며 문맥이 있는 꾸밈임을 잊지 말자. 텍스트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건 나의 몫.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지만,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의 인생과 붙어 있다. 몸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_<문 라이트> ‘마지막 장면’ 중에서.

특정인의 사적인 경험이 보편적 이론이 되는 것, 그것이 권력의 효과일 것이다. 개개인의 경험은 모두 사회적 권력 관계를 통해 구조화된 것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그 해석을 통해 다른 주체가 된다. 각기 다른 경험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 경험은 ‘특수한 경험’이고 서구/남성의 경험은 ‘보편적 이론’이 된다. 특수한 것은 보편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한국에 적용했다, 정신분석학을 여성 문제에 적용했다"는 식의 언설을 싫어한다. 마르크스주의를 한국에 적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특정 지역, 특정 시기, 특정한 성의 경험일 뿐이다. 서구 페미니즘이 한국에 적용될 때도 마찬가지다.
_<디 아워스> ‘부패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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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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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북이 출간하는 삐(BB, Be Better)' 시리즈의 세 번째 도서 《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를 읽게 됐다. 이번 기회에 처음 접한 삐 시리즈는 “더 나은 나를 위해 일상에 울리는 경보음, 삐(BB)!”라는 컨셉을 바탕으로 나의 몸, 나의 가족, 나의 밥, 나의 물건, 나의 이웃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 기획이다. 제철소, 위고가 함께 출간하는 아무튼 시리즈나 드렁큰에디터의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와 비슷한 결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는 그림을 그리는 아내 키미와 글을 쓰는 남편 일이가 공동으로 작업한 책이다.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 ‘완전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 부부가 채식을 하면서 느낀 고충이나 다짐, 선언, 반성을 적었다.

‘육식’을 디폴트로 하여 식습관을 형성토록 하는 사회, 채식을 하면 건강하지 못하고 단백질이 부족할 거라는 편견, 비건을 향한 맹목적인 혐오와 공격(다만, 페미니즘 운동의 대립을 근거로 든 부분은 엥? 싶었다. 적절하지 않은 듯.), 채식을 하면서 깨닫게 된 동물성 음식의 비자연스러움과 부조화 그리고 야만성. 비건의 책에서 익숙하게 언급하는 주제와 설득도 있었고, ‘어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싶게 익숙하진 않지만 소탈해서 더욱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몇 번 있었다.

이를테면, 평생 몸에 익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꾸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고통 같은 것을 읊을 때다. 저자는 어릴 적 재래시장에서 먹은 옛날통닭 맛이 그리워 비건 선언 후에도 여러 번 통닭을 시켜 먹은 적 있는데, 그때마다 옛날만큼 맛있지 않고 고기 잡내가 역겹기만 해서 후회하곤 했다고 말한다. 채식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 ‘향수’ 같다는 저자의 문장을 보며,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는 시쳇말을 떠올렸다. 또한, 좋아하는 향의 화장품을 포기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그와중에도 담배만은 절대 못 끊겠다고 한탄한다.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미술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아내를 보며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실감하고, 배달음식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 집밥 루틴을 나열한다.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고기 잡내와 시뻘건 고기의 속살이 자아내는 위화감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육식을 끊지 못한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ㅠㅠ) 당장 비건까지는 어려워도 ‘비육식주의자’로 거듭나 실천에 옮기는 날까지 비건 텍스트와 자주 만나고 좀 더 친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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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의 춤을 춰
다비드 칼리 지음, 클로틸드 들라크루아 그림, 이세진 옮김 / 모래알(키다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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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울 앞에서 발을 구르는 여자 아이가 “난 나의 춤을 춰!”라고 즐겁게 말하는 듯보여 기대했던 그림책이다. 춤을 추고 있는 어린이는 일곱 살 오데트. 오데트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꿀벌 옷으로 갈아입고 음악을 크게 튼 채 춤을 추곤 한다.

오데트는 아직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부모님은 오데트를 허약한 딸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은 뚱뚱한 애라고 생각하고, 담임 선생님은 순한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체육 선생님에겐 너무 둔한 학생, 피아노 선생님에겐 너무 힘든 학생으로 비춰져 매번 평가가 다르다. 혼란스러운 오데트가 정확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작가 레오 다비드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과 친구들처럼 날씬해지고 싶다는 것.

하지만 다이어트는 1시간까지만 유효하고, 눈치 없는 엄마는 따뜻한 초콜릿으로 오데트를 유혹한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차창 너머로 달을 보는 오데트. “달은 좋겠어요. 저렇게 토실토실해도 다들 예쁘다고 하니까요.” (오데트 그런 생각을 멈춰…!) 오데트가 다이어트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마침 오데트의 최애 레오 다비드 작가가 학교에 강연을 온다. 오데트는 저보다 몸집이 크고 매혹적인 언변을 가진 작가를 보며 또 한 번 반하고, 자신처럼 치즈를 얹은 볼로네제 스파게티를 좋아한다는 작가를 보며 재차 꿈을 꾼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람! (바로 그거야…!)

다시 꿀벌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오데트. 오데트가 앞으로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춤을 추기를, 좋아하는 것들을 자책과 자괴감으로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손 대면 통통 튈 것 같은 오데트의 동그란 허벅지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순수함으로 가득찬 이목구비가 즐거운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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