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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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심장을 드러낸 한 남자가 있다.
실연 후 연연해하는 자기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끝내 심장을 도려낸 남자. 그는 맛있는 것도 맛 없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사는게 재미있지도, 슬프지도 않다. 원하던 대로 냉혈한이 된 그는 살인청부업자가 되어 본래의 이름도 잊어버린 채 '위르뱅'이라는 이름으로 살기 시작한다. 살인청부업자 선발 중 자신의 놀라운 사격 실력을 발견한 그는 이것이야말로 천직이자 신이 내린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심장을 드러낸 후에는 아무것도 그에게 쾌락을 안겨주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일 때 총알이 상대의 뇌를 뚫고 지나갈 때 한번도 느끼지 못한 격한 쾌감이 그를 훑고 지나간다. 거부할수 없는 마약. 살인은 그에게 마약과도 같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살인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환희에 찬 선율, 기뻐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그 선율과 하나가 된다. 나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감싸고 있는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33

 살인만큼 모든 면에서 백지 상태인 행위가 있을까. 살인을 할 때의 느낌은 그 어떤 느낌과도 비교할 수 없다. 딱히 어디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부분에서 쾌감이 솟아나며 전율하게 되는 것이다. 그 낯선 느낌에 쾌감은 한층 더 강렬해진다. 
 살인만큼 권력의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도 없다.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해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는 행위이므로. 살인자는 자중 자애하는 폭군답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 티끌만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감미로운 두려움이 그 행위와 함께 한다. 그로 인해 쾌감이 솟아난다. -26



 장관과 그 가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후 여느때와 같이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어서 혼자만의 오르가즘을 느끼려는 그의 눈에 들어온 당혹스런 장면. 벌거벗은 채 욕조에 있는 장관과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딸. 일기장을 훔쳐본 아버지에 대한 딸의 분노는 결국 폭발했다. 그리고 그녀가 위르뱅 쪽을 향해 돌아보는 순간 두발의 총알을 날리는 주인공. 장관의 가족을 모두 처리한 후 보스가 원하는 서류가방도 챙겼다. 가방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재미없는 서류와 장관이 훔쳐 읽은 딸의 일기장이 함께 들어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묘한 감상에 사로잡히고 유혹에 못이겨 일기장을 읽어내려간다. 그 안에는 16살 정도된 소녀의 일기장이라고 하기에 너무 건조한 내용들 뿐이다. 그녀가 가졌던 외로움과 어두움이 그에게도 느껴진다. 그에게 살인 지령을 전달하는 동료 '유리'는 장관의 집에서 가져온 것 중 서류 하나가 빠졌다며 전화를 한다. 설마 소녀의 일기장이 중요한 서류 중 하나일까 생각하면서 일기장을 뺐다고는 이야기하지 않는 주인공. 그리고 그의 방 창문으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찧으며 들어온 제비 한마리가 TV 뒤에서 죽는다. 그는 제비에게서 자신이 죽인 소녀를 발견하고 이름 모를 그 소녀를 '제비'라고 부르기로 한다. 소녀를 만났던 짧은 시간은 지나갔다. 그는 그 소녀를 죽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전에 없이 죽은 소녀를 향한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도려낸 심장과 함께 내던진 일말의 감정들이 하나 둘씩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게 감정에 반응하게 된 위르뱅. 풀냄새 조금과 바윗돌 냄새에도 흥분할 정도이다. 그리고 다시 누락된 서류의 행방을 묻는 유리의 전화를 받는다. 과연 조직에서 찾는 서류는 소녀의 일기장인걸까 의심하는 위르뱅. 제비 소녀는 제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일 만큼 일기장에 집착했다. 소녀의 일기장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일생일대의 사랑이나 일생일대의 작가나 일생일대의 철학을 만나게 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머잖아 바보천치가 된다. -54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일대 사건이어야 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사십 일 동안 혼자 도를 닦던 수도승이 문득 고개를 들어 똑같은 처지의 은자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충격을 동반해야 한다. -59


 일기장에 얽힌 미스테리와 슬슬 드러나는 위르뱅의 광기어린 모습은 엠마뉘엘 카레르의 '콧수염'을 읽을 때와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줄기차게 신작을 발표하는 아멜리 노통브는 이번에도 그럴듯한 소설 하나를 완성해낸 것 같다. 송곳처럼 아멜리 노통브의 글이라는 것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문체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결말은 좀 싱겁다. 이런걸 '열린 결말'이라고 하나? 일기장의 비밀은 무엇인지, 위르뱅의 최후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 죽겠다. 이 짧은 소설을 바탕으로 훗날 장편소설을 쓸 작정인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역자 후기를 읽는 것을 소소한 낙으로 삼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역자가 남긴 한마디도 없다는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우리는 살아 있다는 공포에 맞서 싸우며 하고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온갖 것에 별별 정의를 다 갖다 붙인다. 내 이름은 아무개이고 모모 회사에서 일하는데 그 일이 여차여차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그러는 중에도 불안이라는 놈은 숨어서 전복 활동을 계속 한다. 그놈의 입에는 재갈을 물릴 수도 없다. 넌 네가 모모 회사에서 여차여차한 일을 하는 아무개 씨인 줄 알지?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잖아? 모르긴 해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걸? -8~9

 정신없이 몰두할 만한 것을 찾았을 때만큼 행복할 때가 또 있을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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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뉘앙스 사전 -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박영수 지음 / 북로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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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을 남겨두곤 하는데 처음에는 몇자 적는 것도 버거웠으나 점차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의 길이가 길어지고 나서는 그 내용과 분위기를 다듬기를 원하게 되었다. 듣기로 영문학의 경우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쓰지 않는 것이 묘미'라고 하던데 우리 글도 다를게 없다. 맛깔나는 글이라함은 다양한 표현과 글쓴이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단어를 익힐 필요가 있었다. 단어를 알고 있더라도 정확히 어떤 분위기인지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잠시 혼자서 두꺼운 국어 교재를 가지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비슷한 단어, 외래어, 파생어, 고유어 등을 익혔는데 우리말은 쉽게 소화해낼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국어라고 해서 순한글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자어와 외래어(몽고, 중국, 일본, 서양 등등 수많은 외래어가 있다), 외국어 까지 합하면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겁부터 먹었다. 천천히 기회가 날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연습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참에 [우리말 뉘앙스 사전]이 출간되었다. 단어 사용에 있어서 뉘앙스의 차이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절감하고 있던터라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400 쪽이 조금 넘는 두께의 책은 사전 형식으로 ㄱ부터 ㅎ까지 겉면으로도 색깔 표시가 되어있어서 쉽게 말을 찾을 수 있으며 맨 뒤에는 표제어를 순서대로 뉘앙스가 비슷한 말과 함께 페이지를 표시해 두었다.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두세가지의 말이 그렇게 쓰이게 된 '유래'를 풀어 써놓았는데 마치 전래동화를 보는 듯 재미있고 쉽다. 각 뉘앙스 표제어 마다 말미에 사전 형식의 요약과 활용 예문을 한문장씩 써 놓아서 급할 때는 사전처럼 찾아서 요약부분만 보아도 도움이 될 듯하다. 

 

 책 속에 실린 표제어 가운데 재미있게 읽은 것은 '시치미 떼다'라는 표현에 대한 유래이다.
옛날 사냥꾼들은 매를 이용해 꿩을 잡았다. 사나운 매를 길들이기 쉽지 않았는데 주인은 애써서 길들인 매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꽁지에 주인 이름을 새긴 패를 달아놓았다. 이것을 '시치미'라 한다. 훈련된 남의 매를 몰래 훔쳐갈 때 시치미를 떼고 가져가는데서 비롯된 말이 '시치미 떼다' 란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관용적 표현이 저마다 유래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알게 되니 말을 쓰면서도 그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순한글 표현 외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외래어나 시사적인 외국어 표현도 함께 실려있어서 상식을 넓히는데도 좋을것 같다. 책을 읽고나서 평소에는 뭉뚱그려서 쓰던 말들도 적절하게 어느때 사용하면 더 좋은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익숙하지 않은 말의 경우에는 한번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말의 의미와 뉘앙스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 속에 있는 말 뿐만 아니라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들도 관심을 갖고 자주 사용하다보면 분명 좋은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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