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神의 나라 - 일본 지배세력의 정신세계
노 다니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식민지시대, 분단의 비극, 전쟁, 민주화 운동...
위의 역사를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학창시절 국사과목을 통해 깊게 또는 얕게 알고 있는 지식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는 과거적 단어로 표현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를 반영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라가 힘이 강하면 문제 없어.’, ‘핵무기를 개발해야지.’, ‘경제적으로 성장을 해야해.’,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가볍게 내뱉는 이 한마디 속에도 한반도와 세계의 역사는 반영되어 있다.

 불과 50여년 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식민지 노예의 나라였다. 멀고 먼 구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섬뜩해진다. 일본이 자의로 조선을 독립시키거나 제국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패전국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벌금 내는 셈 치고' 했던 것이 우리의 독립이다. 우리의 독립은 자주적이기 보다는 타의적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지금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충분한 반성을 하지 않는 것도, 매번 망언을 일삼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의 역사 의식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치욕의 시간이었던 1940년대가(그 전에도 그랬지만) 빼앗은 자로서의 일본에게는 ‘영광의 역사’인 것이다. 패전하지만 않았더라면...이라고 아쉬워하고, 그 아쉬움이 고스란히 그 당시의 전쟁 영웅을 기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전범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일본인에게는 영웅 또는 신격화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일본은 ‘일본인의 관점에서 본 자국의 역사관도 인정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하고 다짐한 것이 있다.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객관적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것을 들어보고 이유나 알자고.
좌파든 우파든 지나치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정치성향은 경계해야한다. 또한 일본의 우경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면 ‘왜 뻔뻔스럽게 다시 우경화냐’고 묻고 싶지만 일단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예전에 이순신에 관한 드라마가 인기가도를 달릴 때 관련 서적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네티즌의 대화 속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역사'. 예를들면 조선이 어떤나라였고 어떻게 흥하고 망하였는지를 타인의 눈으로 보면 내가 배워온 나의 역사가 조금은 자국 위주의 역사 해석이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 쓴 일본 우경화에 대한 글인 이 책은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흥미로운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우익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현상유지의 보수인데 이들은 과거사에 대해 무한히 사과하는 친한, 친중의 보수이다. 또 하나는 행동적 보수이다. 이들은 일본은 신의나라로 세계유일하고 아시아인과 어울리기 힘든 우수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과거사에 대해 절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국제 정세와 일본 자국의 존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일본의 한 정치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할 때 다른 한 쪽에서 망언으로 찬물을 붓는 것도 이러한 두 개의 우익이 있는 결과이다. 행동적 보수는 주로 친미파 인사를 중심으로 하여 침략전쟁을 '진출'로 인식하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침략이 진출이 될 때 한국, 중국 등의 일본 우경화에 대한 반발은 그 의미를 잃는다. 그들은 오히려 그 전쟁은 중국이나 한국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은 ‘자주독립의 확보와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하여’라는 명목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동적보수, 호전적인 보수, 반격하는 보수'의 주장이고 이는 전쟁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른 나라에 대한 전쟁이 침략이나 싸움의 의미가 아닌 자주독립과 대동아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이러한 입장은 일본의 교과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교과서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과서란 한 나라의 정치노선과 정신세계, 역사를 총 망라하는 것이며 이러한 정신을 말랑 말랑한 시기의 학생들이 거름망 없이 흡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식화된 세뇌교육이 될 수 있는 무서운 무기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교과서 내용을 타국인 한국과 중국에서 간섭을 하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사교과가 선택과목으로 바뀐지 얼마 안되어서 불안한 한반도 정세와 독도, 간도문제가 붉어지자 다시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 교육당국이 얼마나 쉽게 민심에 흔들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국민 의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역사 교과서이니 그 중요성을 더 말할 것이 없다.

 일본은 우경화를 선택했다. 어떤 논리로도 전쟁을 합리화 될 수 없다. 서양 세력의 침략전쟁에 대항하여 동아시아를 지키겠다는 수단이 하필 또 전쟁인가? 전쟁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고 그 후 일어난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정당하다 하는 것이 옳은가? 전범을 신화하고 전쟁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정당화 하는 것은 분명 잘못 된 것이다. 우경화를 염려하는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사상이 그 뿌리라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일본이 주장하는 자국의 역사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도저히 이해불가하다고 생각했던 일본 극우파의 주장이 나온 배경 또한 알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이라고 했던가. 자국의 역사 인식이 중요한 만큼 상대의 역사를 이해해야 협의점을 찾기 쉽다. 영원할 것 같은 한일관계의 수평선을 이으려면 분명 일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책을 읽다보면 섬뜩해진다. 일본이 우경화를 부르짖는 이유의 뿌리를 알게 되면 더욱 그렇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면 일본의 이러한 정책에 ‘전부 틀렸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자국에 한정하는 좁은 시야를 가지고 역사와 국제정세에 관심이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만 하더라도 특별히 ‘꼭 필요하다’거나 ‘절대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쪽도 나는 상관 없다.’는 방관자적 입장의 일본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정부로서는 우경화 정책을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란 소수의 정치인에게 맡기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국민인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것이 우리 나라의 정치이든 다른 나라의 정치이든 관계없이 그 영향은 우리에게 미친다.
비현실적인 일본 만화를 보는 듯한 일본의 우경화도, 헐리웃 영화를 보는 듯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결국 통합적인 사고로 생각하지 않으면 풀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일본의 극우와 극좌가 만들어내는 모순의 결과는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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