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창해ABC북 1
카트린 코도롭스키, 에르베 로베르 지음 / 창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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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을 풍미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초콜릿!
 

단일 식품으로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것을 전세계적으로 찾아 본다면 단연 초콜릿일 게다. 더 나아가 그 식품이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철저한 계급사회의 상징물이었고, 그 엄격함을 뛰어넘어 종교적 내분으로까지 확산시킨 장본인이라고 한다면 그 놀라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흔히들 초콜릿의 맛을 가리켜 달콤쌉싸름한 맛이라고 한다. 하지만 카카오99%, 카카오 79%로인 다크초콜릿을 맛 본 이들이라면 달콤쌉싸름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마치 질 좋은 커피원두의 맛과 흡사한 쓴맛과 신맛, 그리고 아주 미세한 단맛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콜릿으로 입이 즐거워하고 있을 때 초콜릿은 누군가에 의해 계속 진화해 가고 있음을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느끼기 시작한다. 맛으로, 형태로, 경제적 가치로의 진화 등등으로 말이다. 창해에서 나온 이 책 <초콜릿>이 상품으로서의 초콜릿에서 역사로서 초콜릿으로의 생각의 진화를 갖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생명의 유무와 움직임의 유무, 그리고 형체의 유무를 떠나 거의 모든 것에 역사가 있듯이 초콜릿 또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초콜릿은 섬세하고 연구자적 자세를 갖춘 장인들의 손길에 의해 제조와 맛의 진화를 반복적으로 거쳐 갔다.

 

서구 문명이 발생하기 전부터 초콜릿은 멕시코의 아스텍 족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의 고체와 분말 형태의 초콜릿이 되기까지 초콜릿은 오랜 세월을 액체 상태에서 즐겨 애용되었다. 요즘처럼 입속의 즐거움보다는 치료재로, 원기 회복용으로, 최음제, 소비재 교환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초콜릿의 형태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걸린 년 수를 보면 과히 놀라울 정도다. 액상 초콜릿에서 고체 초콜릿의 형태 변화가 되기까지 1274년이 걸렸다. 요즘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추운 날 밖에다 내 놓아도 굳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고체 초콜릿에서 분말 초콜릿으로의 형태 변화가 되기까지는 154년이 걸렸고, 고체 초콜릿에 아몬드가 들어간(이해를 돕기 위해 아몬드라고 표현했다. 그 당시는 아몬드가 아닌 개암을 처음 혼합시켰다고 한다.) 초콜릿을 만들기까지는 156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액상 초콜릿에서 고체형 아몬드 초콜릿이 되기까지 1430년이 걸린 것이다. 세월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단순하게 형태 변화만 생각한다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아몬드 초콜릿과 가나크런키에 익숙한 우리들은 초콜릿 속에 아몬드를 넣는 데 뭐 그리 오랜 세월이 걸렸나 싶을 것이다. 그냥 빠치면 되는 것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놓기는 쉬운 법이다. 그 밥상을 차리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생각한다면 그 밥상의 숟가락을 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복잡한 음식 조리과정과 상차림 과정의 마지막 순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발상의 전환을 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가운데 귀족이 있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있다면 그 문제는 더더욱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초콜릿은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형태 변화가 온 것일까?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코코아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400년경부터란다. 원숭이와 다람쥐가 카카오 열매를 모아 두고 빨아 먹는 것을 발견한 뒤 인간들은 그 맛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 카카오 나무는 조직적으로 재배되고 관리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멕시코 아즈텍 족은 카카오를 신의 열매라 여기며 신성하게 다룬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복이 이루어지면서 이들은 노동자로 전락을 하게 되고 그 카카오 열매는 스페인으로 가져 가기에 이른다. 스페인으로 가져간 카카오 열매가 점차적으로 유럽으로 퍼지게 되고,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는 초콜릿 산업의 붐을 일으킨다. 초콜릿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데는 각 나라 왕가들의 결혼과 수도사들의 선교를 위한 이동의 영향이 컸다. 마지막 안착지인 스위스는 이탈리아의 한 상인에 의해 초콜릿이 소개가 되지만 지금까지 초콜릿 강국을 이어올 정도로 초콜릿 산업의 조직적 성장을 하게 된다.

 

초콜릿이 전유럽의 귀족에게서 대중의 음식으로 넘어오면서 기술의 진화도 함께 이루어지게 된다. 이때 초콜릿 산업은 확실하게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초콜릿이라는 공통의 분모에 놓인 유럽 국가들이 발전적 경쟁을 하기 시작해서 앞다퉈 소비자 유혹을 위한 광고를 하기에 이르는 시기도 이때부터다.

 

초콜릿 원료의 주공급원인 카카오나무를 거론하자면, 카카오 나무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는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바나나 나무처럼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줘야 잘 자랄 수 있단다. 게다가 거둬들인 카카오 열매에서 과즙을 버리고 얻은 카카오 씨는 태양 아래서 수십 번을 뒤집어 주는 수고를 해 주어야 좋은 초콜릿 원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내리면 카카오 씨는 금방 썩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카카오는 카카오 매스와 카카오 버터로 분리시키는 공정과정에 들어간다. 

 

복잡한 공정과정을 거쳐 얻어 낸 카카오 매스와 카카오 버터는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을 만드는 주요한 원료가 된다. 카카오 매스의 함량에 따라 다크 초콜릿이 되고 밀크 초콜릿이 된다. 화이트 초콜릿은 카카오 버터의 함량으로 좌우된다. 당연히 질 좋은 초콜릿을 먹고자 한다면 카카오 매스의 함량이 높을 것을 확인하면 된단다.

 

이 책 <초콜릿>은 초콜릿의 전설에서부터 초콜릿의 역사, 새로운 맛의 비밀을 찾아가는 발견과 초콜릿을 통한 경제, 초콜릿의 형태와 조리법, 이를 생산하는 국가 등등 총망라한 내용이 얇은 분량임에도 다 들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읽기가 복잡하다. 과거에서 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가 아닌 특징별 나라별 성격별 형태별 분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대가 수시로 뒤섞여 혼란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독서를 함에 있어 가독성을 방해하고 머리로의 정리를 방해하는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창해 ABC시리즈의 애석한 부분인 것이다. 다만 풍부한 시청각적 자료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찌되었든 초콜릿을 단순한 간식거리에서 벗어나 문화와 역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 점에서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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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엔틱오크상 / 정사각형/ 집들이 선물로 안성맞춤
씨에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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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이 아닌 물품을 구입했는데~

처음 구입한 것만큼 기대도 컸는데~

앙~ 실망 쓰리제곱입니다~

상 모서리를 보니 마치 5년은 쓴 상 같아요~

새상품인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확인해 보시고 보내 주신 것 같지는 않아요~

반품을 해야 하나 교환을 해야 하나 그냥 써야 하나

이런 고민을 안겨 주는 교자상이 그저 미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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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7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고이접어 폴더 된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를 하고 LG싸이언이 재미를 볼 영화!

주연배우의 대사가 없을 때 그나마 봐 줄 만했던 영화!

주연 배우들이 흥행참패의 원인을 제공할 영화!

영화 보는 중간중간에 관객을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을 안겨 주는 영화!

사랑이 빠지고 차라리 판타지만 살린 게 훨씬 나을 뻔했던 영화!

감독은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어 본 걸까? 김태희만 본 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

김태희는 싸이보그인가? 할 정도로 안면근육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영화!

 

 이 영화는 스토리 전개에 있어 개연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너무 작위적이고 인위적이다.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너무 자연스럽지 못한 탓에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최대의 약점을 지니고 있는 영화다.

 <중천>에서는 남녀 주인공들의 그 흔한 애절한 그 무언가도 없었고, 시나리오의 빈약함이 처음부터 보여 주고 있어 애석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 자체가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몰고가는 결정적인 부분은 배우들이 대사를 치는 장면이다.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고 걷돌게 만드는 대사,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끊는 대사. 게다가 주연배우들이 감정이 실리지 않는 상태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 답답함을 안겨 주는 대사처리의 방식들. 그저 말 없이 창칼을 휘두를 때가 그나마 볼만 했다.

 한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영화를 연상해 보기는 또 처음이다. 제일 먼저 <은행나무 침대>가 연상 되었고, <반지의 제왕> <인디펜던스 데이> <천국보다 아름다운> 등이 이 영화 안에서 다 나온다.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신촌 메가박스에서 2회 상영시간을 택했다. 대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중고등학생들이 방학을 한 것을 감안하고 신촌이 코엑스보다 접근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감안해도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2회인데 관람객은 고작 6명뿐이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중천>은 호들갑스럽게 매체가 떠든 것에 비해 뚜껑을 연 현 상태에서 주연배우가 영화를 수렁으로 몰고 가면서, 흥행 참패의 원인 제공자가 될 듯싶다. 한마디로 빈 수레가 너무 요란했고, 먹을 게 없는 잔칫날격이 되었다. 어쩌면 CJ엔터테이먼트가 뒤늦게 후해할지도 모를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보는 내내 LG싸이언  CF가 생각이 났으니. 이러한 현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본다. 

 김태희가 CF를 너무 많이 찍은 탓인지 영화 속 김태희의 표정연기는 CF 속의 표정 그대로였고, 말투도 변한 게 없었다. 안면 근육과 말투가 싸이보그인가 싶을 정도로. 그냥 연기는 하지 말고 CF만 찍어 CF모델만 했으면 하는 생각을 너무도 간절하게 만든어 준 영화다. 더 나아가 소화(김태희) 목에 걸려 있는  영체 목걸이가 LG싸이언 핸드폰처럼 보였다는 게 문제다.

 영화고 드라마고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투자받기 위해 연기력이 받쳐 주지 못하는 스타들을 쓴다. 허나 여러 경우에서 확인시켜 주었듯이 이제는 스타는 곧 흥행이 아니다. 시나리오나 극본이 탄탄하지 못하다면 연기력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관객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외면한다.

 김태희의 큰 눈과 부담스런 입술만 생각나게 만들어준 이 영화 <중천>에 아~ 난 과하게도 별 하나를 주고자 한다. 이 영화에겐 정말 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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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 40년 - 4판 범우문고 20
변영로 지음 / 범우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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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에 종영된 드라마 <황진이>를 보면 말맛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내뱉는 말들이 시조와 같고 또 낮은 음률을 고르는 가락과 같다는 생각을. 이 시대의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층들이 이 말맛을 어느 흥에 끼어넣어 음미를 할 수 있을까도 더불어 생각해 본다.

 이러한 생각은 실증이란 있기나 한 걸까 할 정도로 지금 몇 번째 읽고 있는 변영로의 <명정 40년>에서도 나타난다. 요즘 출간되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음률을 살린 글맛을 찾아보기 어렵고, 또 자신의 40년 동안 술을 벗으로 여긴 일들을 은근한 연탄불에서 고아대고 있는 곰탕같이 초반엔 강했다가 중반은 살살 달래주고 말미에 가서는 그저 은근하게 장단을 살린 글들이 몇이나 될까?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주(酒)렸다. 만인의 연인인 酒, 즉 술을 변영로처럼 애절하게 곁에 끼고 있는 이가 또 있을까? 만지면 사라질까 바라보면 닳을까 언제나 술은 변영로 곁에서 그를 지켜 주었고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어릿광대처럼 말이다.

 술에 대한 그리고 술에 얽힌 옛일들을 유쾌하고 낭만적이며 포복절도할 정도의 자신만의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는 이 책 <명정 40년>은 비단 개인의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독자와의 사이에 공범적 성격이 강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 공범적 성격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역시 나를 포함한 술의 참맛, 술의 진가, 술의 요염, 술의 부가서비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동정의 말로 아니 위로의 말로 안타까운 사람들이라 불러 주어야 하지 않을런지.

 이 안타까운 사람들 중에는 또한 부류가 나뉠 수 있으니 그것은 단연코 술자리가 있다면 열일 제치고 가는 사람이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건하게 술이 들어간 상태의 몽롱함과 소위 알딸딸하다는 그 기분을 알리 만무다. 맨정신이면서도 그저 나도 술에 취했네 그려 하는 시늉만을 해 보이는 그 사람이 어찌 안쓰럽지 않고 안타깝지 않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슬프기까지 한다 해도 오버는 결코 아니다.

 이 책 읽는 중간중간 웃지 않을 수 없고,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친절한 기회도 주어지고,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더불어 진하게 보여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아쉽다고 표현해야만 하다니) 한자어가 많아서 요즘 20대와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읽으면 이해되지 않는 단어가 곧잘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이자 수필가 그리고 영문학자인 변영로는 1898년생으로 이화여전, 성균관대 교수를 엮임, 동아일보 기자에 이르기까지 고급문장을 쓰는 사회 중심 계층의 한 부분을 차지한 사람인 탓도 있다.

 하지만 그가 학자로서 기자로서의 어떤 형식에 얽매인 글쓰기가 아닌 말 그대로 자신과 술과의 관계된 에세이라 읽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부담은 없다. 그 시대 문체를 즐겨 썼기 때문에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하지 못한 부분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얼마 전에 한 드라마 황진이를 생각한다면 이 <명전 40년>이 지닌 문체가 쉽게 와 닿을 것이리라.

 하여간 첫 머리에 등장하는 일로 이 사람 변영로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하여간 나이 몇 살 때부터 시작하였는지 아득한 중 이제도 뚜렷이 기억이 나는 것은 5,6세 되던 때의 일이다. 술은 먹고 싶고 어른한테 청했자 별무 신통이고 빚어 넣은 술독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지라 상서롭지 못하게 조숙한 나는 도음(盜飮)하기로 결의하고 술독 앞에를 다다르니 아, 그 술독 천야만야 높기도 높은사!"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하는 글은 자신을 '어린 모험가'라고 서슴치 않고 말할 정도로 술은 'N극'이요, 변영로 자신은 'S극'이니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지남철 같은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그 어리디 어린시절 술독을 에베레스트 산이라 표현하며 그 높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는데, 그 안에 든 술을 마시기 위해 책상 궤짝 할 것없이 포개어 놓고 기어오르다가 와르르 쾅하며 무너져 내리는 통에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분한 마음이 들어 통곡을 하니 사연을 안 어머니가 표주박에 술을 가득 담아 주셨다는 것이다.

 이 역시 어린 시절 술에 취해 학교를 가지 못함이 다반사였을 때의 어느날, 변영로는 그날도 역시 술에 취해 사랑방에 혼자 있을 때 아버지 친구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 아버지 친구가 사랑방 미닫이를 열고 보니 찾는 친구는 안 보이고 그 아들 놈인 변영로가 술에 휘해 누워 있을 뿐이었단다.

 "영복아!"(변영로를 영복이라고 불렀다고 함.)

"....."

"아 이놈 영복아! 어르신네 어디 가셨니?"

"어디 출입하셨어."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 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눈치빠르기로 유명한 정 선생도 이에는 어안이 벙벙.

"에익, 고자식."

 이런 예화만 있을까? 그럴리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사탕을 만들고 있으니...

 잠은 분명코 깨었다. 그러나 눈은 뜨이지를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서 눈을 뜨려 하였으나 눈가죽은 시종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을 추스려 보려고 하였지만 천근인지 만근인지 요지부동이었다.

'아뿔사, 이 추운 밤에 한데서 잤구나!'

 워낙 술에 얽힌 사연이 많은지라 술 깨인 뒤에 치르고 겪는 그 고통 그 비참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그는 고백한다. 때때로 자살까지도 염두에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러저러한 이유(말할 수 있고 없고)로 나는 풍풍우우설설(風風雨雨雪雪) 중 그다지 기승스럽게 줄기차게 술을 먹으면서도 1년 365일, 술 끊을 결심을 하지 않은 아침이 없었다. 그러나 슬픈 일은 그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저녁이나 밤도 없음이었다!

 술을 즐기는 사람과 늘 벗 하는 사람이라면 이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동족의식에 활자로 접함에 있어 어느 정도 끄덕거림과 자긍심마저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들 어떠랴. 이렇게 술의 가치를 알아 주고 술 마시는 이를 알아 봐 주는데. 간만에 옥편을 들고, 간만에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요즘은 인터넷 검색하면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오니 편하다고 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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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품 범우문고 114
곽말약 지음 / 범우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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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품

 이 책에는 여덟 명의 영웅이 등장한다. 노자, 장자, 공자, 맹자, 시황제, 항우, 사마천, 가의. 하지만 곽말약은 너무도 친절하게 이들에게 품고 있는 존경과 경의와 환상을 일순간 노리개감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들에게 갖고 있던 환상을 여지도 주지 않고 모조리 갈아 엎는 대단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여덟명은 나름 역사를 만들어 주었고, 현재의 기틀을 제공한 인물들이었기에 말초적인 인간성보다 해탈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건만 곽말약은 그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작가의 고유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장난 치고는 심보가 고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소품>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왜 저자는 이미 성인이고, 또 성인에 가깝고 영웅인 이들을 한낮 노리개 정도로 여기는 글을 썼을까를 생각했다. 그의 약력을 그저 한쪽으로 흘겨 보면 이렇다.

 의학을 전공한 그는 문학에 심취해 그의 문학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920년대 이데올로기의 최절정에 달했던,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도 중국에서 도망자의 생활을 해야 했고, 급기야는 일본으로의 망명길에 오르지만 망명간 일본에서 다시금 탈출을 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구한 운명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서 그의 인생은 안정궤도에 들어선다.

 격변기의 중심에 서 있던 저자가 역사를 만든 이 여덟 명의 영웅을 놀림감으로 선택한 이유는 역사를 미화시키지 말고 현실 직시적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비록 곽말약 자신은 말년을 주류의 자리에서 마감을 했지만, 그가 산 인생의 과정은 그야말로 질곡의 세월로 숨막히는 숨바꼭질을 반복적으로 해야 했던 것을 떠올렸으리라. 그리고 의과 공부를 하고 사회 지도층에 놓였던 자신이, 쫓고 쫓기는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성인이자 영웅들이 신격화 되어 떠받드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을 것이고 그들이 위선적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에세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빌어 밝히고 싶었으리라.

 따라서 잘못 이해하고 전달되어지고 있는 그들의 인격이 실랄한 조롱 섞인 비웃음으로 전달되어지고 있다 하겠다. 그들도 속세 안에서는 유치하고 졸렬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쓸데없는 공경은 오히려 망상을 불러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 있기에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 말이다.

 왜 역사소품일까로 시작한 책 읽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그것이 인간이든 사물이든 사상이든 이외 무수히 많은 것조차) 그저 한낮 소품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듯이 남이 내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주인공 행세를 할 수 없음을 곽말약은 말해 주고 싶은 듯하다. 제 아무리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내 인생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그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려는 듯 말이다.

 그렇다면 여덟 명의 성인은 곽말약의 펜대에서 어떤 푸대접을 받았을까. 내용을 읽기 전에는 목차에서 풍기는 것만으로도 성인이었고 영웅이었던 그들의 품위에 금이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목차를 이렇게 뽑은 것도 곽말약의 계략으로 이 여덟 명을 철저하게 벗겨 놓으려는 계산일지도 모르겠다.

 첫 주자로 등장하는 노자 이야기에 대한 제목을 보자. "노자, 함곡관으로 돌아오다"다. 참으로 거창해 보인다. 깨달음을 얻고 금의환향하여 돌아오는 노자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상시키게끔 뽑은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제목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어떨까? 정반대다.

 노자는 자신이 천하 제일의 참된 인간임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막을 택했(19쪽)지만, 노자가 상상한 사막과 현실적인 사막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20쪽)는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노자는 함곡관을 떠나 사막으로 뛰어들어가면 그것으로 나의 고결함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으리라고 여겼고, 그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24쪽)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경의 설파, 즉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쓴 노자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기로부터 배신 당한 장자의 이야기를 다룬 '장자, 송나라를 떠나다'

제자가 먼저 죽을 먹어 마음 상한 공자를 다루는 '공자, 죽을 먹게 되다'

처만 보면 음기가 발동하는 맹자를 다룬 '맹자, 처를 내쫓다'

간질병 환자이자 환관들의 놀이개감으로 전락한 시황제를 다룬 '시황제의 임종'

넓고 크게 보지 못하는 오직 자신만이 영웅임을 나타내려고 했던 항우를 다룬 '항우의 자살'

사마천이 왜 거세를 당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사마천의 분노'

환상적 삶을 추종한 인물로 그린 '가의가 장사에서 통곡하다'

 이 여덟 편의 글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인물들의 새로운 모습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소 놀랍기도 하기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역설하고 있고, 이 땅에서의 삶은 이데아나 이상세계로는 채워질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는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권력에 아첨하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곽말약은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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