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종영된 드라마 <황진이>를 보면 말맛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내뱉는 말들이 시조와 같고 또 낮은 음률을 고르는 가락과 같다는 생각을. 이 시대의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층들이 이 말맛을 어느 흥에 끼어넣어 음미를 할 수 있을까도 더불어 생각해 본다.
이러한 생각은 실증이란 있기나 한 걸까 할 정도로 지금 몇 번째 읽고 있는 변영로의 <명정 40년>에서도 나타난다. 요즘 출간되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음률을 살린 글맛을 찾아보기 어렵고, 또 자신의 40년 동안 술을 벗으로 여긴 일들을 은근한 연탄불에서 고아대고 있는 곰탕같이 초반엔 강했다가 중반은 살살 달래주고 말미에 가서는 그저 은근하게 장단을 살린 글들이 몇이나 될까?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주(酒)렸다. 만인의 연인인 酒, 즉 술을 변영로처럼 애절하게 곁에 끼고 있는 이가 또 있을까? 만지면 사라질까 바라보면 닳을까 언제나 술은 변영로 곁에서 그를 지켜 주었고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어릿광대처럼 말이다.
술에 대한 그리고 술에 얽힌 옛일들을 유쾌하고 낭만적이며 포복절도할 정도의 자신만의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는 이 책 <명정 40년>은 비단 개인의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독자와의 사이에 공범적 성격이 강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 공범적 성격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역시 나를 포함한 술의 참맛, 술의 진가, 술의 요염, 술의 부가서비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동정의 말로 아니 위로의 말로 안타까운 사람들이라 불러 주어야 하지 않을런지.
이 안타까운 사람들 중에는 또한 부류가 나뉠 수 있으니 그것은 단연코 술자리가 있다면 열일 제치고 가는 사람이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건하게 술이 들어간 상태의 몽롱함과 소위 알딸딸하다는 그 기분을 알리 만무다. 맨정신이면서도 그저 나도 술에 취했네 그려 하는 시늉만을 해 보이는 그 사람이 어찌 안쓰럽지 않고 안타깝지 않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슬프기까지 한다 해도 오버는 결코 아니다.
이 책 읽는 중간중간 웃지 않을 수 없고,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친절한 기회도 주어지고,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더불어 진하게 보여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아쉽다고 표현해야만 하다니) 한자어가 많아서 요즘 20대와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읽으면 이해되지 않는 단어가 곧잘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이자 수필가 그리고 영문학자인 변영로는 1898년생으로 이화여전, 성균관대 교수를 엮임, 동아일보 기자에 이르기까지 고급문장을 쓰는 사회 중심 계층의 한 부분을 차지한 사람인 탓도 있다.
하지만 그가 학자로서 기자로서의 어떤 형식에 얽매인 글쓰기가 아닌 말 그대로 자신과 술과의 관계된 에세이라 읽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부담은 없다. 그 시대 문체를 즐겨 썼기 때문에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하지 못한 부분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얼마 전에 한 드라마 황진이를 생각한다면 이 <명전 40년>이 지닌 문체가 쉽게 와 닿을 것이리라.
하여간 첫 머리에 등장하는 일로 이 사람 변영로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하여간 나이 몇 살 때부터 시작하였는지 아득한 중 이제도 뚜렷이 기억이 나는 것은 5,6세 되던 때의 일이다. 술은 먹고 싶고 어른한테 청했자 별무 신통이고 빚어 넣은 술독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지라 상서롭지 못하게 조숙한 나는 도음(盜飮)하기로 결의하고 술독 앞에를 다다르니 아, 그 술독 천야만야 높기도 높은사!"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하는 글은 자신을 '어린 모험가'라고 서슴치 않고 말할 정도로 술은 'N극'이요, 변영로 자신은 'S극'이니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지남철 같은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그 어리디 어린시절 술독을 에베레스트 산이라 표현하며 그 높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는데, 그 안에 든 술을 마시기 위해 책상 궤짝 할 것없이 포개어 놓고 기어오르다가 와르르 쾅하며 무너져 내리는 통에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분한 마음이 들어 통곡을 하니 사연을 안 어머니가 표주박에 술을 가득 담아 주셨다는 것이다.
이 역시 어린 시절 술에 취해 학교를 가지 못함이 다반사였을 때의 어느날, 변영로는 그날도 역시 술에 취해 사랑방에 혼자 있을 때 아버지 친구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 아버지 친구가 사랑방 미닫이를 열고 보니 찾는 친구는 안 보이고 그 아들 놈인 변영로가 술에 휘해 누워 있을 뿐이었단다.
"영복아!"(변영로를 영복이라고 불렀다고 함.)
"....."
"아 이놈 영복아! 어르신네 어디 가셨니?"
"어디 출입하셨어."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 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눈치빠르기로 유명한 정 선생도 이에는 어안이 벙벙.
"에익, 고자식."
이런 예화만 있을까? 그럴리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사탕을 만들고 있으니...
잠은 분명코 깨었다. 그러나 눈은 뜨이지를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서 눈을 뜨려 하였으나 눈가죽은 시종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을 추스려 보려고 하였지만 천근인지 만근인지 요지부동이었다.
'아뿔사, 이 추운 밤에 한데서 잤구나!'
워낙 술에 얽힌 사연이 많은지라 술 깨인 뒤에 치르고 겪는 그 고통 그 비참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그는 고백한다. 때때로 자살까지도 염두에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러저러한 이유(말할 수 있고 없고)로 나는 풍풍우우설설(風風雨雨雪雪) 중 그다지 기승스럽게 줄기차게 술을 먹으면서도 1년 365일, 술 끊을 결심을 하지 않은 아침이 없었다. 그러나 슬픈 일은 그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저녁이나 밤도 없음이었다!
술을 즐기는 사람과 늘 벗 하는 사람이라면 이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동족의식에 활자로 접함에 있어 어느 정도 끄덕거림과 자긍심마저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들 어떠랴. 이렇게 술의 가치를 알아 주고 술 마시는 이를 알아 봐 주는데. 간만에 옥편을 들고, 간만에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요즘은 인터넷 검색하면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오니 편하다고 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