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이를 먼저 먹이고 남은 밥을 먹는다. 남편은 먼저 먹고 저만치 등을 보이며 드러누워 있다. 밥을 깻잎이나 상추에 싸고 붉은 대구아가미젖갈을 한 점 올려 먹는다. 밥맛이 좋다. 감기 때문에 며칠째 흐르던 콧물이 그칠 것 같다. 대구 아가미 젖갈의 가시를 입으로 뱉어내며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남편이 아침 TV를 보며 말한다. 저번 태풍 이후로 TV는 MBC만 나오는데다, 그마저 화면이 흐려 소리만 듣는다.

"미국이 빈라덴 찾는다고 이라크 침공하더니, 그것으로 명분이 부족해, 대량살상무기 외치더니 결국 후세인만 잡고 빈라덴도, 결국 대량살상무기도 못 찾았네. 후세인이 잘한 것 아닌데, 애꿎은 이라크 국민만 다쳤어."

작은 애가 뛰어와 상추쌈을 한 입 받아먹고 간다.

"그러게." 내가 응답하자 그가 세상은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며 낙담해 한다. 나는 "그러니,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야하지."하며 말은 하지만 세상을 바꿀 방법을 모른다. 우리는 뭐라 말할 거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월급쟁이이고, 나는 그의 아내일 뿐이다.

밥상 너머를 보니 거실에 누운 남편의 등이 보이고, 또 그 너머에 거실 창을 지나 앞산이 둥글게 누워 있다. 순간 상상한다. 산너머에 원자탄이 투하되는, 붉고 강한 빛이 내가 느끼기도 전에 밀려오는 것을.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거실창이, 저렇게 누워 있는 남편과 상추쌈을 손에 든 내가, 그리고 뛰어 다니는 두 아이가 소멸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오는 파멸을, 나는 느낀다. 히로시마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찰나에 사라지다니,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나는 분개한다.

"지구상에서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미국이고 게다가 그걸 히로시마에 쓴 것도 미국인데, 다른 나라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다니..."

물론 지구상에 그런 무기들이 존재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의 논리에 의해 개인의 행복이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것은 참 끔찍한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히로시마에 있지도, 이라크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상추쌈을 먹는 사람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다. 다만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된다고, 좀더 사람 중심의, 아니 생명 중심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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