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인성교육시리즈 가족 사랑 이야기 3
샘 맥브래트니 글, A.제람 그림, 김서정 옮김 / 베틀북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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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인가 친정아버지와 저, 둘만 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늦은 오후, 아버지의 술상을 차리다가 잘못하여 술병을 떨어뜨렸답니다. 부엌 바닥에 온통 유리 조각이 튀어 걸레로 치우려 하니, 아버지가 돋보기를 걸치고 안방에서 썩 나오십니다. 소주병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셨나 봅니다. 서른이 넘어도 살림하는 데 실수가 많은 딸 자식이라 아버지 보기가 미안하여 급히 치우려 하니, 아버지 하시는 말씀, "얘야 손 다친다. 내가 치우마." 하며 청소기를 들고 나오시더니 몇 번을 치우고 닦고 하십니다. 또 돋보기를 끼고 잘 보이시지 않는 노안(老眼)으로 부엌 바닥에 조금이라도 놓친 유리가 있나 없나 살핍니다. 구부리고 앉은 아버지의 등을 보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우리 친정아버지는 그렇습니다. 그리 나이가 많은 노인도 아닌데, 집안일이란 여자가 해야 한다 하며 친정엄마에게 모든 것을 일임. 벽지 바르는 것도 형광등 가는 것도 소소한 일 하나 집안에서는 꿈쩍도 않습니다. 하물며 평소에 물걸레질 하는 모습은 생각지도 못한 거였답니다.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아버지랑 전혀 다른, 잔정 많은 남자랑 결혼할 거라 부모님 앞에서 철없이 얘기하기도 많이 했지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둘 낳았습니다. 자식을 낳으면 사람이 철이 드는 걸까요? '너도 자식 낳아봐라.내 속을 알거다.'라는 부모님 말씀이 절로 깨달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밥상 머리 앞에서 아이가 밥알을 흘리는 것을 보거나, 뭐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이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방바닥에 구르는 압침에 손가락이 찔렸습니다. '내가 발견해서 잘 되었지. 아이들이 다쳤으면 어쩔 뻔 했어.'하며 오히려 기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제 마음과 저기, 방바닥의 유리 파편을 줍는 아버지의 심정이 같을까요.

며칠 전에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아이와 함께 읽었습니다. 참, 별난 토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제가 아는 아버지상은 말로써 사랑을 표현하질 않습니다. 잔정 많은 제 남편조차 '사랑'이라는 단어가 쑥쓰러운지, 두 아이에게 쉽게 표현하질 못합니다. 저는 말의 신기한 힘을 믿습니다. 좋은 말은 마음을 좋게, 나쁜 말을 내뱉으면 마음도 나빠진다고. 하지만 그런 좋은 말도 일상에선 선뜻 할 기회가 없더군요.

비록 그림책의 그림과 글은 밋밋하답니다. 그림책 답게 삽화가 아닌 좀더 완성된 그림이었으면 좋겠고, 글도 좀더 다듬어졌으면 좋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부모의 내리 사랑은 너무도 큽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보이기 힘들 때, 그냥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화나서 지쳤을때, 또는 부모로서 속상할 때 그냥 아이를 안고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고 읽어주세요. 그 아이가 서른이 넘어 그제서야 부모의 내리 사랑을 깨닫는, 너무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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